오징어게임 성공 뒤 구슬픈 플랫폼 제국주의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한국 콘텐트 '오징어게임' 전 세계 1위 차지하지만
드라마 관련 굿즈 사업 등 이어지는 IP 비즈니스는 해외로
글로벌 OTT 제국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한 토종 OTT 힘 키워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써 내려 가는 기록들이 놀랍다. 드라마가 공개된 지 4일 만에 넷플릭스 순위로 한국에서 1위를 차지하더니, ‘발리우드’(인도 영화산업의 중심지 뭄바이의 닉네임) 식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인도에서조차 1위를 함으로써 넷플릭스가 공식 진출한 83개국 모든 나라에서 1위를 기록했다.
세계인들에게는 ‘듣보잡’이었던 한국의 ‘오징어게임’이라는 말이 ‘Squid Game’이란 영어식 표현으로 일종의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넷플릭스의 주가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으니 그동안 다소 부진했던 세계최대의 OTT서비스 업체를 한국 드라마가 부활시킨 셈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달고나’ 소품, 양은 도시락 등 우리도 구하기 힘든 다양한 소품들이 미국의 아마존은 물론 전 세계의 전자상거래 몰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하니 이 드라마가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에 이어 또다시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세계적인 문화로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BTS의 한국노래가 빌보드차트 1위를 밥 먹듯 하고,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휩쓸고, 한국 이민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미나리’의 조연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는 시대에 ‘오징어 게임’을 통해 우리 드라마까지 온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의 전성시대를 실감한다.
문화콘텐트의 거대한 후방효과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만든 산업의 전방효과가 미국 산업의 글로벌화를 확산하는 후방효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전 세계인들의 미국에 대해 동경과 선호로 이어진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과거 우리도 드라마 ‘대장금’의 대성공으로 인한 한류의 영향력이 한식의 글로벌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또 당시 동남아에서 LG전자가 주연배우인 이영애를 자사 광고에 출연시켜 이 지역 가전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1위로 끌어올린 것은 물론, 브랜드 선호도를 제고시킨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2014년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과 동남아에서 한류의 새 바람을 일으킬 때 주인공 김수현, 전지현의 중국광고 출연, 여행업, 모바일 게임까지 파생상품의 영역을 확대했고, 중국여행사들은 한국에서의 치맥 파티를 여행상품으로 만들어 한국에 ‘치맥’을 먹으러 오는 해외 관광객으로 촬영지가 인산인해를 이룬 것 또한 유명한 일화다. 이 당시 블룸버그는 그 경제효과가 1조 원에 이른다고 평가 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2016년 한국의 수출은 13%가 감소했지만, 화장품 수출은 22%가 성장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는데 주요 이유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열풍이었다.
하지만 과거 한류드라마 열풍과 오징어게임의 열풍은 좀 다르다. 넷플릭스라는 OTT의 등장이 콘텐트 확산과 산업의 후방효과라는 측면에서 차원을 확 바꿔 놓았다. 우선 드라마의 확산 속도와 그 커버리지에서 차이가 크다. 과거의 드라마는 현지의 공중파나 케이블을 통해 공개 되다 보니 그 확산 속도가 느리고, 인기를 얻었던 지역도 한국드라마의 수용성이 높은 중국과 동남아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 중심이었다.
반면 오징어게임은 플랫폼을 통해 동시에 전 세계에 공개되고 공개 28일 만에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은 물론 일본 남미, 심지어 한국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인도에서조차,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내에서 이긴 하지만,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단순히 시청 측면에서의 효과뿐 아니라 관련 산업의 후방효과도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만드는 경제 파급효과는 5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2016년 진출 이후 7700억원의 콘텐트 투자를 했는데 이로 인해 1만6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국내 콘텐트 창작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글로벌 OTT의 하청공장화하는콘텐트 산업
문화 콘텐트 산업의 핵심적 자산은 소위 IP(Intellectual Property)라고 불리는 지적 재산권이다. 디즈니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창작물에 대한 IP가 있고, 세계적인 만화제작 업체인 ‘마블코믹스’를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인수한 것도 IP의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디즈니는 이 IP를 이용, 어벤저스 시리즈 영화로 더 큰 돈을 벌었다.
그런데 한국의 제작사가 오징어게임의 세계적 신드롬이 아무리 일어도 IP 권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재주는 곰이 피우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번다’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약이 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기분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넷플릭스가 모든 저작권을 가지는 구조 때문이라고 한다. 자본적으로 취약한 한국의 제작사는 제작비의 10~20% 정도의 적정 수익만을 남기고 작품의 모든 권리를 넘기는데, ‘쓴 만큼’ 받고 흥행의 성패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점 때문에 이런 계약이 이뤄진다고 한다.
어떤 제약도 두지 않고 오직 작품의 대중적 확장성만 가지고 판단하는 넷플릭스의 투자방식 때문에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던 오징어게임이 성공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우리 콘텐트가 세계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그 경쟁력을 인정받게 된 것을 헐뜯자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한국 콘텐트 경쟁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영원히 우리는 미국 플랫폼의 하청공장이 되고, 하나의 콘텐트가 성공하면 파생적으로 스핀오프, 해외리메이크, 게임, 영화 등과 같은 다양한 비즈니스 규모를 폭발적으로 키우는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 소스로 다양한 창작 장르는 물론 산업에 활용하는 문화 비즈니스모델) )같은 부가가치가 발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OSMU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해리포터’는 1997년에 처음 영국에서 소설로 나와 2016년까지 20년 동안 영화, 게임, 관광, 서비스, 제조업까지 산업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유명하다.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해리포터 시리즈가 책으로 완결된 2007년까지 창출한 경제 효과는 308조원에 이른다.
당시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액 전체가 230조원 정도였으니 문화 콘텐트 하나가 반도체 산업보다 더 큰 부가 가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수준의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한국 콘텐트 산업 현실은 이대로 라면 ‘해리포터’식의 부가가치를 만들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더구나 올 11월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IP를 보유한 최대 미디어 기업인 디즈니의 OTT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한다. 벌써 500억원의 자본을 투자해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하고 있다. 곧이어 HBO맥스, 애플TV,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같은 미국의 다른 OTT플랫폼들이 한국진출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로 인해 한국 콘텐트 제작사들의 몸값은 올라가고 있지만 한국시장의 미국 글로벌 OTT 하청공장화는 더욱 가속화될 모양새다.
토종 OTT의 글로벌화만이 살길
오징어게임 같은 국내 콘텐트의 세계적 경쟁력이 해리포터와 같은 산업 전반에 걸친 폭발적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위해 무엇이 개선 되어야 할까. 결국 자본과 콘텐트가 OTT산업 경쟁력의 열쇠로 보인다. 한국 콘텐트 경쟁력은 여러 군데서 확인된다.
아직 넷플릭스가 정식으로 시장 진출을 하지 못한 중국을 뺀 아시아 최대 시장인 일본에서 넷플릭스 상위콘텐트는 대부분이 한국 콘텐트다. 동남아 역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오징어게임’ ‘D·P’ 등의 성공은 글로벌 자본과 유통력이 뒷받침되자 한국 콘텐트가 미국은 물론 선진국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결국 양질의 콘텐트가 만들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위해서는 한국 OTT 브랜드의 자본 확충이 열쇠라고 많은 전문가는 말한다. 투자자본의 규모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시장의 규모가 전제되어야 하고, 결국 국내 시장의 규모만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글로벌 OTT 브랜드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OTT 산업 상황은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일찌감치 자본력을 바탕으로 OTT 시장을 선점한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경쟁에 돌입했다. CJ와 JTBC가 합작한 ‘티빙’과 지상파 3사와 SKT가 합작한 ‘웨이브’는 일차적인 합종연횡을 이뤄냈지만, 여전히 글로벌 플랫폼과의 경쟁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국내 시장 지키기에도 역부족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만드는 플랫폼 제국주의로부터 한국을 지켜낸 네이버, 카카오가 OTT산업에도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 허태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허태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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