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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매개로 세계는 공동운명체 [최배근 이게 경제다]

'인플레=화폐적 현상'이란 고정관념 벗어나야
중·러 배제한 美 주도 공급망 구축, 탈세계화 후폭풍
러·우크라 전쟁 길어질수록 인플레·자산시장 방어 어려워

 
 
 
6월 18일 오후(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중심인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 앞 광장의 조형물 보호 방호벽에 세계인에게 도움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사람들은 여전히 인플레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풀린 천문학적인 통화량과 연결시킨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자산(부채) 규모는 약 3조6000억 달러가 증가했고, 미국의 총통화량(M2)은 금리 인상 전까지 약 4조1000억 달러가 증가했다. 통화량 중 약 86%가 실물경기에 연결됐다. 그런데 인플레는 발생하지 않았다.  
 
팬데믹 직후 연준의 자산(부채) 규모는 약 4조5000억 달러가 증가했고, 같은 기간 미국의 총통화량(M2)은 약 6조3000억 달러가 증가했다. 그리고 풀린 돈의 약 21%만이 실물경기에 흘러갔다. 같은 기간 미국의 주식과 주택 가치는 각각 19조5000억 달러와 9조8000억 달러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2.9%에 불과했던 반면, 주식과 주택 가치 인플레율은 각각 57.4%와 29.2%에 달했다. 풀린 돈 대부분은 자산 인플레에 기여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 목표치 2%를 달성하려면 금리를 4~7%까지 올려야만 한다고 하고, 그동안 양적완화로 새로 찍어낸 돈을 올해에만 5225억 달러를 회수(QT)하겠다고 한다.  
 
참고로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QE)로 푼 돈 중 팬데믹 직전까지 회수된 돈은 2000억 달러도 되지 않는다. 공격적인 긴축이 시행되고 연준이 강한 의지를 피력하니 그동안 돈이 유입된 자산가격의 조정이 진행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나스닥 기준으로) 주가는 약 28% 하락했을 뿐이고, 부동산 가격의 조정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시장의 심리는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연준조차 사실상의 침체 도래를 예고하면서 장기 시장금리와 유가 등이 (일시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주가도 (일시적인?) 반등을 보이는 것이다.  
 

팬데믹 직후 풀린 돈 21%만 실물경기에 연결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팬데믹 직후 2년간 총통화량은 약 700조원이 증가했다. 국민 1인당 거의 1350만원에 달하는 규모다. 보통의 국민 대부분은 결코 체감할 수 없는 돈이었고, 심지어 다수의 국민은 오히려 자기를 거쳐간 돈은 줄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통화량 중 실물경제로 연결된 규모는 20%도 되지 않은 반면, 기업 가치는 930조원 이상이 증가했고 주택 가치는 최소 1500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GDP 디플레이터는 3.4%에 불과했던 반면, 주식과 주택 가치 인플레율은 각각 약 54%와 30%에 달한다. 풀린 돈이 인플레의 원인이라면 그 돈이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가 지출을 늘려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지난주 칼럼에서 말했듯이) 화폐유통속도가 0.6 밑으로 떨어질 정도로 돈이 돌지 않고, 실제로 대부분 서민은 그렇게 풀린 돈을 구경도 하지 못했는데 무슨 지출이 늘어 물가가 올랐다는 말인가? 인플레는 화폐적 현상이라는 고정관념이 제대로 된 원인 진단을 방해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진단도 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코스피 기준으로) 주식 가치는 약 27% 하락했고, 부동산 가격 조정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크라이나 충격, 무역적자와 환율 충격, 그리고 (곧 도래할) 낮은 식량자급률 충격 등에 따른 익스포저들이 추가될 뿐이다. 이러한 익스포저들은 연준의 긴축 속도에 따라 악화 속도가 결정될 것이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 등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 탈세계화가 미국(과 세계)의 이익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점이다. 70년대 대인플레이션의 처방 과정에서 ‘고금리→달러 강세→무역수지 적자 심화’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미국을 세계의 투자수도로 건설”하겠다는, 즉 월가 이해를 미국 경제의 중심에 두겠다는 1985년 ‘레이건 선언’이고, 일본과 독일 등에 강요한 화폐가치 절상(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은 이 연장선이었다. 핵우산과 달러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그런데 세계화와 금융화가 본격화된 90년대 말부터, 특히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세계 경제에 편입된 2002년부터 미국의 무역적자는 급증한다. 그러나 미국 및 월가는 해외에서 벌어들인 (본원)소득과 더불어 미국 내 유입된 달러에 취해 이 문제를 외면한 값비싼 비용이 금융위기였다. 즉 외국인의 미국 내 포트폴리오 투자가 GDP 대비 2002년 약 40%에서 2008년에는 70%를 넘을 정도로 해외에서 미국으로 대규모 달러 투자금이 유입되었고, 동시에 GDP 대비 (본원)소득수지도 같은 기간 동안 0.2%에서 0.8%까지 증가한다.  
 

신흥국 등이 미국 달러·채권 상당액 보유  

그런데 월가의 잔치는 공짜가 아니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의 미국 채권 투자액이 GDP 대비 27%에서 50%로 증가했는데, 이것이 연준이 2003년 하반기부터 2년간 금리를 인상했음에도 시장금리가 상승하지 않고, 2005~2006년에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던 배경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해외 유출 달러를 자국 통화정책 독립성 훼손의 요인으로 규정하고, (자기보험 차원의) 신흥국의 경상수지 흑자 및 외환 축적을 억압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기준 14조8000억 달러와 13조8000억 달러의 미국 주식과 채권을 외국인이 보유하는 현실이다. 좋든 싫든 신흥국들은 월가를 매개로 미국과 공동운명체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사력과 달러라는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했던 힘을 동시에 동원했음에도 승리하지 못한 첫 번째 사례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이는 패권 시대(일극 세계)의 종언을 의미한다. 실제로 중·러를 배제한 미국 주도의 새로운 공급망(생태계) 구축은 (많은 나라가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가능하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이 자연과 인간의 공존 실패에 따른 생태계 와해형 충격(shock)이고, 이 재앙을 겪으며 우리는 연대에 기초한 ‘모두의 자유‘가 해법임을 자각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악마화하는 전략은 (또 하나의 생태계 와해형 충격이라는 점에서) 인류 세계에 재앙이다. 탈세계화란 인위적인 생태계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세계는 늪으로 빠져들고, 미국은 인플레 및 자산시장 방어에 실패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달러의 신뢰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세계가 월가를 매개로 공동운명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쟁을 종식시켜야만 한다. 이런 결단이 없는 한 자산가격 붕괴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현재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유튜브 채널 ‘최배근TV’를 비롯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KBS ‘최경영의 경제쇼’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 중이며, 한겨레21, 경향신문 등에 고정 칼럼을 연재했다. 주요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이게 경제다] 등이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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