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허물고 살림 합치는' 유통기업들…‘달콤한 동거’ 시작
[‘빅블러 시대’…유통家 문턱을 넘다]①‘두 집 살림 청산’, 왜?
롯데제과·롯데푸드, 합병 법인 ‘롯데제과㈜’ 공식 출범
동원산업·동원엔터 합병 추진, ‘통합 GS리테일’도 등장
4차 산업혁명·포스트코로나 대응해 ‘경계 허물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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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틀 벗어난 변화 필요”…1위 자리 굳힌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계열사 합병 사례로는 롯데제과가 있다. 지난 6일 롯데제과는 자사와 롯데푸드의 합병 법인인 ‘롯데제과㈜’를 공식 출범했다. 통합된 법인은 자산 3조9000억원, 연매출 3조7000억원에 이르는 식품업계 2위 규모의 기업이다. 법인 통합으로 롯데제과㈜는 빙과시장 점유율 약 45.2%를 차지하게 돼 경쟁사인 해태와 빙그레의 합산 점유율(40.2%)을 넘어 업계 1위 자리로 올라서게 됐다.
오랜 기간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롯데제과와 롯데푸드가 합쳐지는 가장 큰 배경으로는 업계 2위인 빙그레가 4위였던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한 점이 꼽힌다.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 점유율은 줄곧 ‘롯데제과-빙그레-롯데푸드-해태’ 순으로 이어져 왔지만 지난 2020년 빙그레가 해태제과의 아이스크림 사업 부문 ‘해태아이스크림’을 1400억원에 인수하면서 곧바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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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그룹 내에서 다양하게 운영되던 계열사들을 묶어 수익구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빙그레가 업계 1위 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그룹 내부의 의견 충돌로 미뤄왔던 통합작업을 진행해 효율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 측에서 롯데푸드는 지난 1978년 삼강산업을 인수해 설립한 곳으로 합병하는데 의견 충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그럼에도 더 이상은 지켜볼 수 없단 판단에 뒤늦게 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합병 위해 오너일가 지분율 희생한 동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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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그룹은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 작업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당초 불공정 합병비율 논란으로 소액주주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주주들의 요구대로 합병비율을 변경하면서 합병을 계획대로 추진 중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동원산업 지분 48.43%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됐던 동원엔터프라이즈 최대주주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은 지분율이 43.15%로 낮아졌다. 이를 감내하고서라도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싶었던 그룹의 의지를 보여주는 결정이었다고 업계는 평가한다.
동원그룹이 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선 가장 큰 이유는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동원그룹의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산업을 비롯해 5개 자회사를 지배하고 있고, 동원산업이 중간 지배회사 역할을 하며 스타키스트와 동원로엑스 등 21개 종속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지주회사 위해 또 지주회사가 있는 옥상옥 구조다 보니 경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동원그룹이 지주 회사 체제를 오랫동안 가져가다 보니 동원산업과 지주사가 겹치는 업무가 많아 중복되는 업무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계열사 합병이었다”고 설명했다.
GS리테일도 지난해 7월 GS홈쇼핑을 흡수 합병하며 ‘통합 GS리테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이 합병으로 신세계 이마트와 롯데쇼핑에 이어 국내 3위 유통기업으로 발돋움했다고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통합 GS리테일은 합병을 통해 온·오프라인에 더해 방송까지 합쳐진 융합 커머스 플랫폼으로 도약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합병법인의 핵심 전략은 ‘디지털’이다.
디지털화 가속화로 산업간 경계 사라져…합병은 신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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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앞다퉈 합병을 추진하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속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더해져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생산자-소비자, 소기업-대기업, 온·오프라인, 제품 서비스 간 경계 융화를 중심으로 산업·업종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빠르게 바뀌는 환경 속에 전통 대기업들은 기업 합병을 통한 경영 효율성 강화 등 나름의 생존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복잡한 지배구조를 개선해 의사결정 구조를 간결하게 하고 기업 가치를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목적으로 합병을 추진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소비를 했을 땐 업종별 업태 간 영역이 명확히 구분됐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코로나19라는 큰 변수가 등장하면서 전통적 사업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설회사가 햄버거 사업에 뛰어드는 등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브랜드를 인식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빅블러 현상에 대한 대응으로 서로 다른 계열사를 합병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끼리 합종연횡해서 제3의 기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각 기업마다 갖고 있던 핵심역량을 잃을 수 있어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면서 “기업 간의 합병이라는 일종의 전략기법을 유행처럼 인식하지 않고 기업의 핵심 사업과의 연계성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합병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채영 기자 chaeyo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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