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주택공급 정책…윤 정부 잇는 밑그림 될까
[주택공급 새판짜기③]
정부·서울시, 민간·공공주도 주택공급 등 부동산정책 보폭 맞추기
오 시장, 정책성과 따라 차기 대선 등판 시 평가 달라질 수도
정부가 내년부터 오는 2027년까지 서울(50만가구)을 포함해 주택 총 270만가구를 공급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한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주택공급 정책도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지난 16일 민간 주도 주택 공급을 골자로 한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에는 역세권 등에서 주거·상업·산업 등 다양한 기능이 복합된 창의적 개발이 활성화 수 있도록 ‘민간 도심복합사업’을 신규 도입하는 안이 담겼다. 올 12월께 '도심복합개발법'을 제정하고 내년 상반기 중 공모에 착수할 계획이다.
고밀 복합개발 추진 등...규제 풀고 공급 확대
지정되면 민간이 첨단산업 중심의 고밀 복합개발을 추진할 수 있도록 용적률 상향 적용 등의 인센티브를 준다. 특히 입지요건에 따라 업무·문화·숙박·산업시설 등 다양한 기능을 복합 개발할 수 있도록 필요시 '도시혁신계획구역'(가칭)으로 지정해 특례를 주는 방안도 검토한다. 도시혁신계획구역은 용도·용적률·건폐율 등 기존 도시계획의 규제를 받지 않는 특례 구역으로, 국토부는 다음달 안에 이를 포함한 '도시계획 개편 종합방안'을 별도로 발표할 계획이다.
오세훈 시장 역시 용도·용적률 제한 없이 고밀 복합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용산정비창 부지와 세운재정비총진지구가 대표적인 적용 대상이 될 전망이다. 오 시장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서울판 ‘화이트사이트’ 적용을 포함한 '도심 복합개발 특례법' 제정을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각종 규제를 면제하는 특례법이 제정되면 기존의 법적 상한 용적률 1500%를 뛰어넘는 창의적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을 전망이다.
화이트사이트는 땅 용도를 구분하지 않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싱가포르의 개발 방식 중 하나다. 오 시장은 지난 7월 30일 이를 적용해 싱가포르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마리나 원(Marina One)'을 찾아 “낙후한 서울 도심의 경쟁력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리려면 싱가포르와 같이 용도지역의 한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복합개발이 절실하다”며 “용산이나 세운지구에 적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화이트사이트는 지난 3월 서울시가 ‘2040 도시기본계획안’에서 제시한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과 유사하다. 비욘드 조닝은 용도 외에 높이·용적률 완화와 학교 조성 등 관련 법상 특례까지 인정하는 더욱 폭넓은 개념이다. 시는 주거·상업·공원 등으로 땅의 용도를 구분하지 않고 어떤 용도를 넣을지 자유롭게 정하게 해 유연한 개발을 유도하는 도심 복합개발을 구상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주택공급 발표 안에는 대표적인 ‘오세훈표 주택공급 정책’ 중의 하나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을 전국으로 확장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토교통부는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향후 5년간 22만가구 규모의 재건축, 재개발 사업지를 발굴할 방침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각종 심의를 통합해 사업 기간을 단축하는 신통기획 방식으로 10만가구의 정비구역을 새로 지정한다.
민간·공공주도 주택공급 보폭 맞출까
이밖에 정부는 택지가 부족한 도심에서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소규모 주택사업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현재 단일 공동주택 단지에서만 추진가능한 소규모 재건축을 연접 복수단지 통합 방식으로도 허용해 개발 밀도를 높이고, 소규모 정비에 대한 금융·세제지원 및 절차 간소화도 추진한다. 오 시장이 추진하는 주택정책에도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을 활용하는 것이 있다.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노후 저층 주거지를 하나로 묶어 개발하는 모아주택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번 주택공급 발표 안에서 각종 규제의 완화와 민간 공급 확대를 내세웠고, 오 시장의 대표적인 주택정책들도 민간의 힘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에서 결이 비슷해 보인다. 오 시장은 신통기획 외에도 저이용 민간토지를 활용해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상생주택 등을 추진 중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 하는 주택공급 정책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추진하고 있는 주택공급 정책들이 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힘들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오 시장의 경우 용산 개발을 비롯해 신통기획 등의 주택 정책이 건설기간과 인허가 등을 감안하면 실제 주택공급이나 성과를 보이기까지 꽤 시일이 걸릴 수 있다. 예컨대 신통기획 등의 재개발·재건축 정책이 과도한 공공기여와 임대주택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에 사업을 철회하는 곳이 생겨나는 점도 풀어야 하는 과제다. 또한 정부나 서울시 모두 추진하는 개발 정책으로 인해 주택 가격이 들썩이면 가뜩이나 집값상승에 예민한 부동산시장에서 정책적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더해 원희룡 장관이 이끄는 국토교통부의 민간주도 주택공급과 오 시장이 구상하는 공공주도의 주택공급 계획이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오 시장이 민간 주도의 주택공급 정책만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향후 서울시는 공공주도의 주택 공급에도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오 시장은 지난달 30일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과 함께 캄풍 애드미럴티와 풍골 에코타운 등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공공주택단지를 방문했다. 오 시장은 종일 현장을 돌아보며 세대공존형, 도심형, 에너지 절감형 등 다양한 유형의 '오세훈표 고품질 임대주택' 공급 계획을 밝혔다.
오 시장은 특히 싱가포르주택개발청(HDB)의 'PLH'(Prime Location Housing) 정책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PLH는 도심 등 접근성이 좋은 곳에 고품질의 직주근접 아파트를 공공주택으로 저렴하게 공급해 중·저임금 근로자가 살 수 있게 하는 주택공급 프로젝트다. 오 시장은 “저소득 근로자를 위해 도심 내 과감하게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PLH 모델은 서울시의 정책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형 고품질 임대주택도 자산이 부족한 신혼부부, 청년, 사회초년생 등이 직주근접 고품질 아파트에 살 수 있도록 도시 외곽이 아닌 도심·역세권에 집중 공급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서울시, 큰 틀에서 같은 공감대로 협력 모색
최근 반지하 정책을 두고도 오 시장과 원 장관이 엇갈린 신선으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오 시장은 “아예 반지하를 주거공간으로 쓸 수 없게끔 정부와 논의해 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원 장관은 오 시장의 계획에 대해 “반지하를 없애면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속도조절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후 서울시와 국토부는 반지하 신축 인허가와 관련해 최근 불거진 정책 공조 엇박자 논란을 일축했다. 서울시는 “시와 국토부 모두 재해취약주택을 근본적으로 해소해 나갈 필요가 있고, 재해취약주택 신축을 억제해 나가야 된다는 것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갖고 있다”며 “서울시가 제시한 방안을 포함해 공공·민간임대 확대, 재해취약주택 해소를 위한 정비사업, 주거상향 이동 지원 등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연말까지 함께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오 시장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은 다소 엇갈린 안이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규제완화 기조로 내세운 주택공급 정책의 한축을 맡은 서울시가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윤 정부와 오 시장의 주택공급정책이 함께 나아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현재 윤석열 정부가 집권 여당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서울시 간에 협력 체계를 구축하면서 보조를 맞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외부 환경들이 갖춰지지 않게 되면 공급 목표를 달성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용산 개발 등 서울시가 펼치는 부동산 정책을 기틀 삼아 오 시장이 대권주자로 나섰을 때 힘이 실릴지 여부는 정책의 성과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서 공동대표는 “오세훈 시장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본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시장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대선의 꿈을 꿀 수 있는 위치”라며 “서울시장으로서 잘 이끌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은형 대한건설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위치에서 오세훈 시장이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한 것이 최선”이라며 “성과가 좋다면 그 위의 길은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wave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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