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석 원장 “3고 현상 후폭풍 몰아친다… L자형 장기침체 막기 위해 상반기 재정지출 집중해야” [이코노 인터뷰]
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장
상반기 압박 피크…물가안정보다는 불황극복에 정책운용 초점
인플레이션 불평등 심화…저소득 취약계층 위한 정책대응 절실
[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 “올해 상반기중 3고 현상(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침체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L’자 형의 장기침체를 막기 위해선 이 기간 재정지출을 집중해 경기하락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최근 서울 종로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경기흐름과 관련 “올 상반기가 압박의 피크”라며 “국내물가가 추세적인 하락세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물가 안정’보다는 ‘불황 극복’에 정책운용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물가 상황에서 경기가 나빠지면 인플레이션 불평등(inflation inequality)이 심화된다”며 “저소득 취약계층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 대응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허 원장과의 일문일답.
-경기흐름이 본격적인 하강국면에 진입한 것 같습니다.
작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로 10분기만에 역성장했지요. 향후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지수는 2021년 6월 고점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작년 10월 이후 하락세로 반전됐어요. 지난해 코로나 사태 이후 리오프닝 효과로 대면서비스를 중심으로 민간소비는 회복됐지만 4분기부터는 고금리 여파로 소비 투자 모두 성장세가 약화되고 있어요. 최근 주요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2%대에서 1%대로 하향 조정하는 추세에요. IMF는 작년 10월 전망치(2.0%)에서 0.3%포인트 내린 1.7%를 제시했어요. 한국은행(1.7%)이나 KDI(1.8%)는 물론 정부도 1.6%로 전망했어요. 잠재성장률이 2% 내외 수준임을 고려할 때, 1%대의 성장률은 침체 국면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상저하고의 경기흐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상반기엔 3고 현상의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어요.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구요. 상반기보다는 하반기에 다소 경기가 개선되는 ‘상저하고’의 불황추세가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고물가 억제를 위해 전세계적인 통화 긴축정책이 지난해 하반기 공격적으로 시행됐잖아요. 실물경제에 대한 기준금리 인상 효과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고 볼때 통화정책의 파급효과는 올 상반기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국은 통화 긴축의 속도 조절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금리인상 사이클이 종료될 하반기에는 국내외 경제 모두 반등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국내외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3고 현상은 올해도 지속되겠지요.
전미경제학회(AEA)연차총회에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진단에 공감하고 있어요.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 저물가시대는 막을 내리고 구조적 변화로 고물가 고금리 고부채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미중 갈등에 따른 군사비지출 확대,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등으로 재정지출이 확대되면 정부부채가 늘어날수밖에 없고 고금리 고물가현상은 고착화될 것이라는 얘기예요. 국내도 작년보다는 올해 다소 완화되겠지만 기조는 계속 될 것 같아요.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예정돼 있고 한국은행도 물가 오름세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내면서 정책전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시장에서는 통화정책의 연내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높습니다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통화정책의 전환에 대해 통화당국과 시장간 동상이몽 (同床異夢)이 진행 중인 것 같아요. 시장에서는 물가상승률 둔화 추세가 뚜렷히 나타나고 노동시장의 모멘텀도 약해지면서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반면 미 연준(Fed)은 노동시장이 여전히 견고하며 그에 따른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높다는 점에서 이런 낙관론을 경계하며 매파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국내도 마찬가지예요. 전반적으로 통화정책의 전환을 설득할만한 경제지표는 아직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어요. 통화정책 완화에 대한 기대감은 통화당국의 명확한 입장표명을 확인한 후 가져가도 늦지 않습니다.
-지나친 낙관론도 지나친 비관론도 모두 문제겠지요.
과도한 낙관론은 시장참가자들의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심리’를 작동시킵니다. 강세시장에서 시장 참가자가 소외될 것이라고 느끼는 두려움이지요. 그러면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게 마련입니다. 비관적 전망은 더욱 문제지요. 비관적 전망이 확산되면 일종의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처럼 경제위기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은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크게 위축시켜 실제 경제펀더멘탈보다 더 큰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도 이런 자기실현적 비관론에 의해 현실화됐다고 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해요. 최근에는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입장이 극단적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어떤 관점이든 시장에 과잉반응을 일으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합니다. 극단적 전망을 경계하고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불확실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역량이 더욱 필요하겠군요.
초불확실성의 국면에서는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정책지원을 통해 경제주체들이 불확실성의 함정(uncertainty trap)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가뜩이나 생산활동이 저하된 상태에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소비와 투자는 더욱 위축되거나 지연되겠지요. 일단 물가안정보다는 불황 극복을 우선 순위로 설정해야 합니다. 하반기중 물가가 통제 범위에 들어온다면 재정정책의 운용 폭을 더욱 넓힐 수 있습니다.
- 침체기엔 재정지출의 효율성이 더욱 크지요.
경기 확장기보다는 경기 침체기에 재정승수(fiscal multiplier)가 3배 이상 크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침체기엔 생산자원의 여유(slack)가 더 많기 때문에 재정지출의 효과가 더욱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이런 면에서 일단 국내경제가 급격히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반기에 재정지출을 집중해 경기하락을 최대한 방어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L’자형의 장기침체를 막아야 되요. 다행히 정부가 최근 상반기 재정집행률을 역대 최고 수준인 6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어요. 정책 전달체계가 잘 작동해 정책운용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취약계층입니다.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나빠지면 소외계층의 생활고는 심화되겠지요. 먼저 인플레이션 불평등이 발생합니다. 실물자산을 많이 보유한 부유층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실물자산의 가치상승으로 상대적으로 타격이 크지 않아요. 반면 실물자산을 적게 보유하고 있는 저소득층은 고물가로 명목임금만 줄어듭니다.저소득층은 소비에서 생활필수품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구매력도 크게 하락하지요. 공공요금 등 생활요금이 급등하면 이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예요. 여기에 경기침체는 일자리감소에 따른 고용불안을 의미합니다. 취약계층의 일자리부터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높아요. 결국 침체기엔 취약계층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 지원이 절실합니다. 일자리 지원사업 확대, 대출상환 유예 등 미시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허 원장은.…
△1956년 서울 출생 △덕수상고 △연세대 경영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미국 밴더빌트대학원 경제학 석사, 홍익대 세무학 박사 △공인회계사 △행정고시 22회 △ 재경부 국제금융국 외화자금과장 △재경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4△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 △(현)현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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