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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부터 GPT·SDK까지…‘변화 DNA’ 보유한 한컴의 체질 개선 [기승전-플랫폼]

MS 독점 막은 토종 SW…1989년 컴퓨터에 한글 구현
변화 거듭하며 기업 성장…오피스에 구독·AI 등 접목
33년간 쌓은 문서 기술 역량, 모듈화해 세계 시장 진출

‘사람 모인 곳에 돈이 돈다.’ 예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시장 원칙’ 중 하나입니다. 숱한 사례와 경험으로 증명된 이 명료한 문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지금에도 유효한 듯합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스마트폰 등장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현실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갔고, 여전히 돈을 돌게하고 있죠.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거장을 의미하는 ‘플랫폼’은 ICT 시대를 마주하며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서비스가 도달하는 ‘종착역’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매력을 높여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으려는 플랫폼 기업의 생리를 ‘경제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전, 당신이 머무는 종착역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워드프로세서 ‘아래아 한글’의 서비스 초기 화면. [제공 한글과컴퓨터]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한글과컴퓨터(한컴)의 최근 경영 행보는 ‘체질 개선’으로 압축된다.

한컴은 지금의 회사를 만든 업무 솔루션 ‘한컴오피스’를 최근 플랫폼화했다. 개별 판매가 아닌 구독형 모델을 통해 사용자를 모으겠단 전략이다. 또 다양한 오피스 소프트웨어(SW)에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접목, 성능을 고도화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기술을 모듈화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해외 시장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이 같은 전력 모두 수익성 개선을 목적한다.

한컴은 1989년 4월 워드프로세서 ‘아래아 한글’(ᄒᆞᆫ글·이하 한글) 1.0버전을 출시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한컴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글로벌 빅테크와 ‘직접 경쟁’을 벌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독점적 구조에서 국내 오피스 SW 시장을 지켜냈다.

한컴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 오피스 SW 시장 점유율은 1%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MS에 이어 글로벌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선 약 30%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은 MS가 오피스 SW 시장을 독점하지 못한 매우 드문 국가다.

회사 관계자는 “변화에 대응해 성장한 기업이 한컴”이라며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AI 기술 변화에 맞춰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고, 33년간 쌓아온 문서 기술을 세계에 제공해 사업적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도 빠르게 추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글과컴퓨터 사옥 전경. [사진 한글과컴퓨터]

시작부터가 ‘변화’…시대 흐름에 맞춰 성장한 한컴의 DNA

이찬진 한컴 창업자는 컴퓨터에 1989년 4월 ‘한글’ 완전하게 구현했다. 1988년 서울대학교 컴퓨터 연구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을 다짐한 후 약 1년 만에 한글 1.0버전을 만들어냈다. 컴퓨터 등장이란 기술적 변화 속에서 한컴이 탄생한 셈이다.

당시 한글을 입력할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로 ‘보석글’이 널리 사용됐다. 한글 1.0은 보석글과 달리 한글 특성을 고스란히 구현해 냈고, 어떤 PC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무기로 성공을 거둔다.

이 때문에 한컴은 PC 보급과 함께 성장이 가능했다. PC에서 한글 작업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시장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2003년 국내에 보급된 컴퓨터 약 170만대에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깔렸다. 170만대 컴퓨터는 국내서 사용되는 컴퓨터의 약 70%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컴은 컴퓨터 환경 변화에도 대응해 왔다. MS의 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우’에 맞춰 한글 3.0을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32비트 운영체제가 보급됐음에도 기존 윈도즈용 워드프로세서는 16비트를 기반으로 했다. 한글 3.0은 32비트를 지원, 기존 프로그램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를 갖췄다.

한글에 대한 구현도 역시 대폭 향상됐다. 당시 윈도즈 환경에 맞춰 개발된 기존 워드프로세서는 완성형으로 규정된 2350자만 지원했다. 한글 3.0은 이와 달리 조합형 글자를 표현하는 등 모든 한글을 구현해 냈다. 고어는 물론 1만880자의 확장 한자와 외국어도 지원하는 유일한 워드프로세서였다.

새로운 흐름 맞춰 플랫폼 구축에 집중

한컴은 PC 보급과 윈도우 등장 등 ‘기술 변화’에 대응하며 국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화사 관계자는 “변화의 유연한 사업 운영은 한컴의 DNA”라며 “변화에 맞춰 자사 서비스를 개선한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회사는 그간 설치형으로 판매했던 한글·오피스SW를 지난해 9월 클라우드 구독형 서비스로 전면 전환했다. 구독 시장의 활성화와 세계 IT 시장의 클라우드 전환에 맞춰 이뤄진 변화다.

회사는 한컴독스의 출시를 시작으로 설치형SW 중심의 사업구조를 탈피, 클라우드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기업으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한컴독스는 유료 전환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가입자 10만명을 확보하는 등 순조롭게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

한컴독스는 사용자가 원하는 기간만큼 연·월 등 기간마다 일정 비용을 내면 PC·모바일·웹 등 다양한 환경에서 업무 SW 이용이 가능한 구독형 상품이다다. 웹 기반 문서 편집 서비스인 ‘웹한글’과 ‘웹오피스’의 경우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 없이 인터넷만 연결되면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꾸렸다. ▲문서 공동 편집 기능 ▲설문 서비스 ‘한폼’ ▲클라우드 저장 공간 등도 제공한다.

라이선스는 5대 PC까지 지원한다. 윈도우용 한글은 물론 한워드·한셀·한쇼 등 한컴오피스와 macOS용 한글 설치도 가능하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도 문서 뷰어 및 편집 기능 역시 제공한다.

구독모델은 이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게임 ▲배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성이 증명된 사업 방식이다. SW의 구독형 모델은 대부분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해 소비자 입장에선 시간·장소의 제약에서 벗어나 편리하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회사 입장에서도 매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서비스 안정화 등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클라우드 기반 구독형 서비스 ‘한컴독스’ 설명 이미지. [제공 한글과컴퓨터]

구독 기반 한컴독스, GPT 입고 편리성↑

한컴은 구독형 모델 도입 1년도 안 돼 새로운 변화에 나섰다. ‘답변하는 인공지능(AI)’ 챗GPT(ChatGPT) 열풍에 맞춰 생성형 기술의 접목을 선언했다. 파트너 기업으론 네이버클라우드를 택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챗GPT 대비 한글 데이터를 6500배 더 많이 학습한 초대규모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HyperCLOVA X)를 구축하고 있다. 하이퍼클로바X는 7월 출시를 목표로 한다. 양사 모두 한글과 특화된 서비스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 창출이 이뤄지리라고 기대했다.

양사는 한컴독스에 하이퍼클로바X 탑재하는 데부터 협업을 시작했다. 하이퍼클로바X의 학습 데이터 97%는 한국어다. 네이버 뉴스와 블로그 등의 데이터를 통한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이 가능하다. 또한 한국 사회의 법·제도·문화적 맥락까지 이해해 소통하는 능력을 갖춘 형태로 출시된다.

양사는 이 같은 하이퍼클로바X의 장점을 기반으로 한컴이 보유한 오피스 SW 기능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목표 시장은 공공 분야다. 학교·연구기관·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한컴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이기도 하다. 공공 분야에서 나오는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오피스 SW의 기능을 꾸리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한 ‘한컴독스 AI’(가칭)는 연내 출시를 목표로 한다. 한컴 측은 “30년 이상 축적된 생산성 소프트웨어 개발 및 운용 노하우를 살려 효율적인 적용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며 “문서 작성은 물론 요약·편집·번역·시각화 등 다양한 AI 기능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컴독스 AI엔 생성형 AI 외에도 자체 개발한 ▲광학문자판독(OCR) AI 기술 ▲문서 비교 기술 등이 접목된다. 또 투자를 타진 중인 대만 SaaS 기업 케이단(KDAN Mobile)의 PDF AI 솔루션 등도 한컴독스 AI에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에 단순 보고 및 정보 공유에 그쳤던 문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문서 내에서 고객이 원하는 정보와 데이터를 원하는 형식으로 쉽게 받을 수 있도록 구현할 방침”이라며 “한컴의 메타버스 협업 플랫폼 ‘코워킹’에서 화상 회의에 필요한 화자 인식·회의록 작성·요약 등의 기능에 생성형 AI 기술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글과컴퓨터 로고(왼쪽)와 네이버클라우드 로고. [제공 각 사]

글로벌 시장 진출 핵심 키워드는 ‘모듈화’

한컴은 오피스 SW 고도화와 함께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 전략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기술을 모듈화해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전략이다.

회사는 해당 전략을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이동통신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을 통해 본격화했다. 워드프로세서·스프레드시트·프레젠테이션 등 한컴오피스를 구축하며 쌓은 다양한 기술을 ▲오피스 SDK ▲계산엔진 SDK ▲OCR SDK ▲챗봇 SDK 등으로 세분화·모듈화해 제공하는 식으로 기업 간 거래(B2B) 매출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한컴은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콘텐츠 제작 ▲비즈니스 프로세스 관리(BPM) 등 고객사의 다양한 사업 분야에 맞춰 한컴 기술을 연동하는 솔루션은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컴은 SDK 전략의 확장을 위해 삼성SDS·원오원 등과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및 해외 고객사들이 자사 서비스에 더 쉽고 빠르게 한컴의 문서 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상품 매력을 높였다”며 “제품 아닌 기술 파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글과컴퓨터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지난 3월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에 마련한 전시 부스 조감도. [제공 한글과컴퓨터]

회사 구조의 변화도 진행 중이다. 한컴은 지난해 한컴MDS를 포함한 12개 계열사 지분을 매각했다. 회사가 이를 통해 확보한 현금성 자산은 1200억원 규모다. 이 같은 유동성을 기반으로 성장 잠재력을 가진 해외 SaaS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을 추진,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에 빠르게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해외 클라우드 시장 진출과 관련해 회사는 지난해 싱가포르에 ‘한컴얼라이언스’를 세우기도 했다. 연내로 글로벌 SaaS 전문기업인 케이단 모바일의 지분을 인수, 최대 주주로 등극할 계획이다. 2009년에 대만에서 설립된 케이단 모바일은 ▲모바일 PDF 솔루션 ▲전자서명솔루션 ▲모바일 애니메이션 솔루션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매출 및 고객의 80%가 북미와 유럽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한컴은 케이단 모바일 인수를 마무리하면, SDK 전략 등 한컴의 글로벌 진출 사업이 가속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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