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 ‘생성형 AI’ 거센 공격에 방어 나선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담금질’
[생성형 AI, 판을 흔들다]①
구글, 파라미터 5300억개 장착한 바드 공개…“한국어 지원”
‘발등에 불’ 네이버, 차세대 초대규모 AI 모델 출격 임박
검색은 물론 커머스·금융·법률서 차별화…특화 서비스로 ‘승부’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전쟁터란 비유가 나온다. 긴장감을 넘어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마저 감돈다. 일부는 현재 상황을 열강이 이 땅의 주권을 짓밟았던 구한말 시기에 빗대기도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패권 경쟁 최전선에 있는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 네이버에 대한 얘기다.
네이버의 위기감은 2022년 11월 챗GPT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생성형 AI가 네이버 핵심 서비스인 검색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세계 빅테크의 국내 진출도 거세지고 있다. 차세대 서비스를 들고 한국을 찾은 ‘IT 공룡’이 많아지자, 네이버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네이버가 구축한 ‘한국 최대 플랫폼 기업’이란 지위가 흔들린다면, 국내 IT 생태계가 외산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단 우려다.
구글 필두로 세계 빅테크 ‘한국으로’
구글은 지난 5월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바드’를 공개하면서 영어 다음의 지원 서비스로 한글·일본어를 선정했다. 약 1억명이 사용하는 일본어(13위) 서비스를 구글이 강조하고 나선 점은 시장성 측면에서 비교적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글은 얘기가 다르다. 언어학 비영리단체 에스놀로그에 따르면 한국어 사용인구는 8170만명에 그친다. 순위는 23위, 비율로 따져도 1% 안팎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11억명이 사용하는 중국어(2위)나 6억명의 힌디어(3위)를 제치고 한글 서비스를 최우선에 둔 이유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의 높은 첨단 기술 수용성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적합한 언어 등을 ‘한글 서비스’ 마련의 배경으로 꼽았다. 영어와 체계가 완전히 다른 한글 서비스를 ‘새로운 도전’이라며 기술적 진보를 이룰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시장에선 세계 검색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구글이 점령하지 못한 유일한 시장인 점을 이유로 꼽는다. 네이버가 포털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은 구글 입장에서 진출이 제한된 중국·러시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시장 확대가 가능한 국가다. 이 밖에도 ▲미국과 13시간 나는 시차 때문에 ‘데이터 학습’을 24시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K-콘텐츠의 세계적 열풍 등이 진출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챗GPT로 세계 생성형 AI 경쟁의 포문을 연 미국 기업 오픈AI도 한국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챗GPT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앱)은 이미 국내에 출시된 상태다. 미국 다음의 출시 국가로 한국을 선정했을 만큼 시장 중요성을 높게 여기는 모습이다. 오픈AI 공동 창업자 그렉 브록만 회장은 지난 6월 중소벤처기업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어 서비스의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도 했다. 대규모 투자로 오픈AI와 밀접한 관계를 구축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운영하는 검색 엔진 빙(Bing)도 챗GPT를 장착하고 국내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하이퍼클로바X 8월 24일 출격
네이버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구글이 바드의 ‘한국어 서비스’를 공식화하자, 이를 지켜본 주요 경영진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네이버는 급변하는 시장에 손을 놓고 있진 않았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차세대 초대규모(Hyper Scale)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HyperCLOVA X)의 8월 24일 출격이다. 하이퍼클로바X는 2021년 5월 내놓은 ‘하이퍼클로바’를 개선한 모델로, 네이버의 다양한 AI 서비스를 구동하는 역할을 한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에 대한 내부 임직원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막바지 담금질을 진행하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는 잘 그린 그림에 비유되곤 한다. 하이퍼클로바X는 생성형 AI 서비스를 그리는 데 필요한 도화지나 물감과 같다. 유려한 문장·정확한 정보 제공·이미지 도출·프로그램 코딩·업무 프로그램 자동화 등 생성형 AI의 대표적인 기능 모두 초대규모 모델을 기반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생성형 AI의 대표 격인 챗GPT 역시 GPT-4란 초대규모 AI 모델을 통해 구현됐다. 바드 역시 구글의 초거대언어모델 팜2(PaLM2)를 기반으로 한다.
생성형 AI 경쟁의 주요 요소로 이 때문에 ▲초대규모 AI 성능 ▲특화 서비스 편의성 등이 꼽힌다. 초대규모 AI 성능은 통상 매개변수(파라미터) 수로 가늠한다. 파라미터 수가 많을수록 복잡한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 챗GPT 초기 모델에 사용된 GPT-3.5의 파라미터 수는 1750억개, 구글 바드에 사용된 팜2는 5300억개다. 하이퍼클로바X 파라미터 수는 2년 전 내놓은 하이퍼클로바의 2040억개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IT업계에선 하이퍼클로바X의 파라미터 수를 두고 ‘세계 정상급은 아니지만, 경쟁력은 충분한’ 수준으로 평가한다. IT업계 관계자는 “AI 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는 빅테크와 견줄 순 없지만, 파라미터 2040억개로도 시중에 나온 대다수의 생성형 AI 기능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원을 잘 활용한다면 매력적인 기능의 구현이 가능하단 설명이다.
실제로 네이버는 AI 모델의 규모 경쟁보다 ‘특화 서비스’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가 챗GPT 보다 한국어 데이터를 6500배 더 많이 학습, 국내 시장에 적합한 서비스 마련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챗GPT나 바드에 국내 맛집을 물어보면,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지만 정확도는 떨어진다. 학습 데이터가 영어에 집중돼 있어 현실에 없는 식당을 안내하는 식이다.
네이버 플랫폼 내 쌓인 방대한 한국어 데이터를 학습한 하이퍼클로바X는 국내 정보 정확도 측면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커머스·금융·법률·교육 등 전문 분야에 특화된 신규 서비스를 마련할 계획이다.
회사는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마련되는 대표적 AI 기능으로 검색 서비스 ‘큐:’(Cue:)를 꼽았다. 9월 베타(시험) 서비스를 시작하는 큐:는 검색에 특화된 생성형 AI 서비스다. 신뢰도 있는 최신 정보를 활용해 답변을 생성한다. 입체적인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기능이 차별화 지점으로 꼽힌다. 네이버 측은 “그간 쌓은 양질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새로운 검색 경험을 제공할 서비스”라며 “복합적인 의도가 포함된 긴 질의를 이해하고, 검색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이 큐:의 핵심 기능”이라고 전했다.
네이버는 자사 플랫폼에서 활동 중인 창작자·중소상공인(SME) 등 파트너를 위한 도구에도 하이퍼클로바X를 적용할 방침이다. 콘텐츠 제작 툴 ‘스마트에디터’에 하이퍼클로바X를 결합, 새로운 버전의 글쓰기 도구를 오는 9월 일부 블로그 창작자를 대상으로 제공한다.
오는 10월부터는 본격적인 기업간거래(B2B) 시장 확장에 나선다. 네이버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 중인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AI 도구 ‘클로바 스튜디오’에 하이퍼클로바X 모델을 탑재한다. 기업 고객들은 자체 데이터를 하이퍼클로바X에 결합해 자체적인 생산성 향상 도구를 구축하거나 맞춤형 AI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
네이버는 이와 함께 대화형 에이전트 ‘클로바X’(CLOVA X)도 내놓는다. 클로바X는 입력하는 질문에 답변을 생성해 제공하는 것을 넘어, 창작과 요약을 비롯한 글쓰기 능력을 갖췄다. 또 생성형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보안 기능을 제공하는 ‘하이퍼클로바X를 위한 뉴로클라우드’도 10월 중 선보일 계획이다. 서버 인프라를 고객사의 데이터센터 내부에 직접 설치하는 기업 맞춤형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다.
네이버 관계자는 “생성형 AI 기술을 입은 다양한 신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며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이 거세지만, 한국 시장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마련해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네이버와 함께 국내 양대 플랫폼으로 꼽히는 카카오 역시 2021년 11월 선보인 코(Ko)-GPT란 초대규모 AI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개선한 차세대 모델을 코-GPT 2.0이란 이름으로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네이버와 달리 아직 공개 일정을 확정하진 못했다.
카카오는 코-GPT 2.0이 마련되면, 이를 기반으로 ▲카카오톡 기반의 AI 챗봇 ▲AI 아티스트 ‘칼로’(Karlo)의 고도화 ▲헬스케어 AI 판독 서비스 ▲신약 개발 플랫폼 접목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칼로는 카카오 AI 개발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이 제작한 이미지 생성 AI다. 회사는 최근 학습량을 기존 대비 2배 이상 늘린 칼로 2.0을 공개하고, 무료 생성 가능 이미지 수를 월 500장에서 60만장으로 확대했다. 칼로 2.0 모델은 사용자의 명령어를 보다 잘 이해하고, 높은 해상도의 그림을 3초 만에 생성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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