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대한민국…아이 낳을 이유와 출산 승진제 [임무송의 시사논평]
저출산 실태 심각...2017년 이후 5년 연속 최저치
외국인 가사도우미·혼인증여세 공제 등 정책 제시
“출산 정책 효과 위해 기업, 정책의 파트너로 활용”
[임무송 인하대 초빙교수·일자리연대 운영위원장] “셋째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특별승진”, 인천의 한 공공기관이 출산과 승진을 연동시킨 이른바 ‘출산 승진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하면서 한동안 논란이 일었다.
민간기업인 한미글로벌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제도임에도 저출산 실태가 워낙 심각하고 발상 자체가 센세이셔널(sensational)하다 보니 뉴스가 된 것 같다. 내용 자체만 보면 업무와 무관한 출산을 승진 조건으로 삼는 것도 불합리하지만 하나 낳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둘째는 인사 가점, 셋째는 승진이라니 전형적인 포퓰리즘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을 들을만 하다.
아이를 승진의 수단으로 보는 생명윤리의 몰각이자, 또 다른 차별이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출산 자체가 직장인, 특히 여성에게 엄청난 결심과 희생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의미 있는 시그널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찬반양론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오늘날 이 땅에서 아이를 낳지 않은 실태와 그 이유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물론 통계로 본 인구 위기는 심각하고 다급하다. 2017년 이후 5년 연속 최저치를 경신하며 2022년 0.78명을 기록한 합계출산율의 추락은 멈출 기미가 없다. 2020년 사망자(31만명)가 출생아(27만명)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 감소한 ‘인구 데드크로스’ 이후 그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통계청의 ‘인구동향’과 ‘장래인구추계(2020~2070)’에 따르면 총인구는 2020년 518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 추세로 돌아서 2040년 5019만 명, 2070년 3766만 명으로 감소하고 중위연령은 43.7세에서 54.6세, 62.2세로 증가한다. 연령계층별 인구구성비는 0~14세는 2020년 12.2%에서 2040년 8.8%, 2070년 7.5%로 감소하고, 65세 이상은 15.7%에서 34.4%, 46.4%로 증가한다. 노년부양비(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하는 고령인구 비율)는 2020년 21.8%에서 2040년 60.5%, 2070년 100.6%에 이를 전망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혼인증여세 공제 확대 등도 위기의식의 발로에서 제시되는 정책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출생률 제고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효과적인 대책을 찾으려면 때로는 질문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도록 도울 방책은 무엇인가”
정부,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출산율 끝없이 추락
지금까지는 경제적 어려움과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저출산의 원인으로 진단하고 대책도 금전지원과 근로양육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보건복지부가 소개하는 출산비 등 임신·출산지원책 30종과 보육비 등 영·유아지원책 44종의 대부분이 이러한 범주에 해당한다. 한동안 논란이 됐던 출산 시 부채탕감 방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막대한 돈을 집어넣어도 출산율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약 332조 원을 저출산에 쏟아부었고, 지난해에만 51조원이 214개 사업에 투입되었다. 물론 백화점식 대책에 거품이 끼어 있고, 저출산 예산 자체가 부풀려져 직접 관계없는 사업 비중이 절반 이상 차지하는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과연 돈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가령 1명당 1억원씩 50조원을 지급하면 50만명의 아기가 우리에게 올까.
임신과 출산 등 생명의 신비 과정을 돈과 물질적 가치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생신고 되지 않은 ‘그림자 아기’ 사건에서도 보듯이 임신과 출산을 고민하는 이들은 저마다 처지가 다르고 애로사항도 복잡다기하다. 도움의 손길은 여전히 멀고, 준비되지 않은 출산은 그 자체가 공포인 현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출생통보제 입법이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은 다행이지만, 정치적 셈법으로 선정적인 해법 찾기 경쟁이 벌어지면 문제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우리는 왜 아이를 갖는가?’의 저자 크리스틴 오버롤은 출산의 이유가 아이와 부모의 삶을 크게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성과 아이들의 행복을 고려하고, 여성의 자율권을 존중하고, 아이나 엄마를 다른 목적의 성취를 위한 도구로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세 가지를 도덕적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이 사회가 출산의 이유로 내놓은 여러 가지 주장들은 거의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 못한다. 출산 문제는 여성과 아기의 자유와 권리를 배제하고는 논의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생명윤리학자나 인구윤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출산의 이유들을 보면 여자와 아기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고 질타한다. 그럼에도 아이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망설이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놓치지 마라!”라고 조언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곧 하나의 아이를 창조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재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원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출산의 이유를 살피는 섬세함이 요구된다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창업 이후 27년째 파격적인 출산 복지 제도를 시행하는 한미글로벌 김종훈 회장의 말처럼 “출산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선 기업을 정책의 파트너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대기업들은 다태아 배우자 출산휴가, 난임치료 유급휴가, 2년간 육아휴직, 재택근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사 특성을 고려한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없다면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이다. 제도 자체의 설계와 운용이 어려운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사각지대에 대한 실효적 대책은 결국 정부와 사회의 몫이다. 육아휴직 이용실태를 보면 대기업, 공공부문에 집중되어 오히려 양극화가 커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최근 영아살해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에서 출산과 양육에 대한 편견이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만 부각되고 남성이나 사회의 책임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 낳고 키우기가 이토록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도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는 격언이 실천되려면 선정적인 아이디어에 앞서 생명의 존귀함과 삶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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