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과 분당의 집값 격차는 왜 벌어졌을까[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수도권 두 도시 이야기] ②
일산, 살기 좋지만 교통 측면서 불리
1기 신도시 재건축, 집보다는 도시 기능에 집중해야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일산과 분당에 살아본 경험이 있다면 한결같이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정말 살기는 좋아요.” 필자도 50평생 서울살이를 접고 일산에 둥지를 틀었는데 이 말이 틀리지 않았다.
특히 30년 전 신도시 개발로 조성된 시가지는 더 살기 좋다. 아파트 밖은 공원길로 연결된다. 격자형 도로망과 도보권에 초·중·고가 모두 위치해 있다. 인근에 병원도 많고, 소규모 쇼핑센터부터 대형 쇼핑몰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도시에서는 사라지고 있는 사우나도 많다. 젊은이들의 표현인 스세권(스타벅스가 5~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지역)도 여러개 있다.
일산과 분당, 공통점과 차이점
특히 일산은 근거리에서 재배되는 신선한 농작물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가와지볍씨로 유명한 고양쌀은 밥맛이 일품이다. 전국에서 생활체육이 가장 활발한 지역도 일산이 포함된 고양시다. 홀트나 경진학교 등 장애인 관련 교육시설이나 복지시설도 다른 도시에 비해 잘 갖춰져 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일산을 벗어나 이동하는 데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든다. 여기서 비용은 시간을 포함한다. 현대인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일산에서 광화문까지 자가용으로 이동하려면 최소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강남이나 수도권 남부로 가려면 족히 2시간은 잡아야 한다. 서울에서 천안이 KTX로 1시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비효율적이고 긴 시간이다.
다양한 광역교통망이 갖춰져 있지만 비효율적이고 가성비가 낮다. 배차간격이 길거나 노선이 빙빙 도는 편이어서, 자주 환승해야 해 불편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다 갖췄지만 모든 면에서 조금씩 부족하다. 그래서일까. 일산과 분당의 집값 차이는 우리가 체감하는 삶의 질보다 훨씬 크다.
아파트 매매가격 통계가 본격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도 이후 분당과 일산의 집값 추이를 살펴봤다. 2000년 기준, 분당과 일산의 평당 아파트 가격은 154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일산이 분당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이 격차는 점차 벌어졌고 2017년부터 가팔라졌다. 2017년 일산의 평당 아파트 가격은 분당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2019년 3기 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이 차이는 더 벌어졌다.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면서 이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김현미 장관이 불출마한 것은 아마 이러한 지역 민심을 부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2년 전부터 1기 신도시 재건축 움직임이 일면서 그 격차는 다소 좁혀졌지만 2022년 현재 일산의 집값은 여전히 분당의 반토막 수준(48.4%)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도시는 욕구충족을 넘어선 ‘기회의 사다리’ 필요
도시와 집값의 수준을 살펴보면 ‘살기 좋은 도시와 집값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참으로 모순적인 이 상황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도시에서의 삶은 기본적인 욕구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 시절, 농촌에서 도시로 수많은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서울로, 대도시로 몰려든 이유가 쾌적하게 살기 위해서였을까? 온수로 목욕을 하고 싶어서, 보일러가 있는 집이 필요해서? 아니다. 그들이 대도시로 몰려든 건 기회를 얻기 위해서,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 취직할 기회, 더 많은 돈을 벌 기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기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의 사다리를 찾아서 어떤 이는 짐가방만 들고 홀홀 단신으로, 어떤 이는 소 팔고 논 판 돈을 들고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분당의 집값이 일산보다 비싼 이유는 강남권과 가깝고, 또 혁신의 일자리가 새로 들어선 판교가 인근에 위치한다는 장점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강남, 판교의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사다리가 핵심이다.
높은 교육열로 대학진학율은 높아졌지만 이제 대학만 졸업해서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예전에는 서울만 오면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많지 않다.
예전에는 암에 걸리면 대부분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암에 걸리면 곧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조기발견률도 높고, 새로운 신약 등장과 함께 치료방법도 날로 고도화되면서 완치율도 높아졌다. 그러나 주변 암환자들을 보면 암을 극복하는데 여전히 많은 비용이 든다. 재발율이 높고, 전이되는 경우가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기본적인 욕구만 충족해서는 안되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좀 더 고도화되고, 성숙한 제도와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은 여전히 치열하게 추격만 했던 개발도상국 수준이다. 아직도 질보다 양이 중요하고 방향보다 속도를 중시한다.
이제 수도권 1기 신도시는 재건축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재건축을 빨리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집만 고치는 재건축으로는 안된다. 도시의 본분인 기회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역동적인 변화와 역전이 가능한 기회의 사다리가 회복돼야 한다.
그동안 잠만 자는 베드타운으로서의 신도시 수명은 이제 다했다. 서울의 집값을 잡겠다고 경기도에 계속 신도시를 짓는 선택을 필자가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중요하다. 재건축은 집이 아닌 도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지금은 분당이 일산보다 조금 낫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도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분당과 일산의 지금의 격차는 1라운드에 불과하다. 앞으로 펼쳐질 1기 신도시 재건축의 방향과 내용으로 이 두도시의 운명은 또 다른 전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가 바로 도시의 매력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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