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는 국가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 기술 패권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코노 인터뷰]
[반도체 살아야 한국 경제 산다] ③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 기업 기회 찾아야
이공계 인력 양성해야 시스템반도체 분야 발전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저는 이 자리에 면접을 보러 온 게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이 자리를 나가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겁니다. 저는 결혼을 했고, 처음으로 아이를 낳았고, 앞으로 육아가 걱정됩니다. 하지만 저의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승진의 걸림돌이라면 제가 이 회사를 먼저 버리겠습니다.”
상업고등학교 출신의 연구보조원이 회사 내에서 대학 졸업자 처우를 받는 승진 시험에서 필기는 매번 붙었는데,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다. 회사 입장에서도 그럴만했다. 당시 고졸 출신의 여사원은 대부분 3년 이상을 버티지 못했고, 결혼하면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처럼 결혼하고 출산 하루 전까지 일하는 고졸 사원은 없었다. 심지어 대졸자 대상인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매번 신청해 회사는 그에게 “자격이 안된다”고 했고, 그는 회사를 설득해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는 악바리 근성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갔지만, 대졸 사원 대접을 받는 승진 문턱에서 번번이 물을 먹었다. 그가 택한 것은 ‘자신이 죽는 것’이다. “회사의 정책이나 불합리한 점이 있으면 내가 죽겠다고 다짐하고 그 불합리에 대해 저항을 한다”면서 “내가 죽겠다는 각오가 됐을 때 그 저항의 힘이 생긴다”며 웃었다. 그의 말대로 승진 면접에서 ‘내가 회사를 먼저 버리겠다’라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선례를 만들었다. 고졸 출신의 반도체 엔지니어 보조사원이 처음으로 대졸자 대우를 받는 직급으로 승진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회사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삼성전자 역사에서 상업고등학교 출신의 보조사무원으로 입사해 28년 만에 샐러리맨의 꽃이라 불리는 임원에 승진해 고졸 신화를 남겼다. 지금은 반도체와 혁신기술 전문 국회의원이자 한국의희망이라는 초미니 정당의 대표가 됐다. 주인공은 양향자 대표다. “삼성에 있을 때는 뼛속까지 삼성맨인 줄 알았다”며 “지금은 국회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있어 뼛속까지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반도체 엔지니어 보조사무원에서 반도체 전문 국회의원 되다
양 대표를 본지 신년 기획 인터뷰이로 선정한 것은 2024년 한국 경제가 살기 위한 조건인 반도체 산업이 살아남는 방법을 듣기 위해서다. 21대 국회 300명 의원 중 반도체 전문가는 그가 유일하다. 국회에서 그만큼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한 입법 활동과 강연 등의 외부 활동을 하는 의원은 드물다. 심지어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만든 ‘반도체특위위원장’ 자리를 야당 의원인 그에게 맡아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2023년 6월 창당한 한국의희망 정책자료집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정책은 ‘과학기술 퍼스트무버 대한민국’이다. ‘과학기술이 곧 산업이고, 경제이고, 안보인 시대다’라고 선포했다.
Q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가 한국의 미래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가 뭔가.
“이제는 기술 패권 시대다. 그 중심에 반도체가 있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데이터 통신·모빌리티· 로봇·드론·커머스·뱅킹 등 일상에 필요한 기술에 모두 필요하다. 일반 사람들은 반도체의 중요성을 잘 모르지만, 나는 반도체를 전기라고 말하고 싶다. 정전이 되어봐야 전기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반도체 패권을 빼앗기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게 된다.”
Q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나 되나.
“2022년 기준 한국 전체 수출의 19% 정도가 반도체 수출이 차지하고 있다. 2022년 국내 반도체 총수출액은 1292억 달러로 이중 메모리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수출액의 57.46%(738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유일하게 글로벌 밸류 체인(Global Value Chain) 공급망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반도체, 특히 메모리 반도체 덕분이다. 1983년 삼성전자가 도쿄 선언을 시작으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 1993년에 1등으로 올라섰다. 30년 넘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패권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석유가 나오는 나라가 패권 국가였지만, 지금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국가가 패권 국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방문한 국가가 한국이고, 가장 먼저 간 곳이 삼성전자 평택 공장이다.”
Q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패권 분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위기라는 분석이 많이 나오는데.
“미국은 혁신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압도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제재하고 있지만, 중국의 무기는 바로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다. 중국이 대만을 차지하면 미국은 위험하다. 미국 입장에서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솔루션은 삼성전자 밖에 없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7 대 1로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뿐이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를 하려면 한국의 파운드리 분야 육성을 환영할 수밖에 없다.
위기는 곧 기회다. 한국은 미중 갈등 속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Q 2023년 한국 반도체 산업이 큰 부진을 겪었고, 한국 경제가 많이 어려웠다.
“지난해 반도체 산업의 불황 원인은 ‘재고와의 전쟁’ 때문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글로벌 경제가 침체하고, 대형 데이터 센터가 축소됐다. 전자상거래 침체 등으로 반도체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메모리반도체나 시스템반도체 구분 없이 반도체 산업계 전반이 침체기를 겪은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업황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세계 반도체 매출이 증가세로 돌아섰고, 2024년 올해 세계 반도체 매출은 13.1%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인공지능(AI)나 자율주행차, 전자제품 등의 고도화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산업 혹한기에도 반도체 기술개발(R&D)에 2022년 대비 2.2%를 늘려 설비투자를 오히려 강화했는데, 이 결단이 마중물이 되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다.”
미·중·일 반도체 지원법 마련해 글로벌 기업 유치 경쟁
양 대표의 말대로 반도체 산업은 ‘치킨게임’의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25년 만에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1위인 삼성전자가 감산에 돌입한 것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격차 확대를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치킨게임이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 기업 사이의 합종연횡이 시작됐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NAND Flash Memory) 세계 2위인 키옥시아와 4위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논의가 시작됐다. 중국의 추격도 무섭다.
눈여겨볼 국가는 일본이다. 한때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2012년 디램 기업 엘피다 메모리가 파산한 이후 글로벌 경쟁 대열에서 이탈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계기로 TSMC 공장을 일본 규슈에 유치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일본 공장에 TSMC는 약 9조원을 투자했다.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 램리서치는 구마모토에 기술 지원 거점을 마련했고, 글로벌 노광 장비 기업인 네덜란드의 ASML도 홋카이도기술 지원 거점을 확장했다. 반도체 관련 국내외 기업이 규슈를 중심으로 몰려들었고, 이를 통해 고용창출 효과가 커지고 있다. 일본이 TSMC 공장 유치로 얻을 효과는 약 6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반도체 강국 탈환에 사활을 거는 일본이 TSMC 유치에 성공한 이유는 22조8000억원이 넘는 지원예산 덕분이다. 첨단 반도체 생산공장 유치에 4조2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 공장을 유치할 수 있었다. 또한 핵심 첨단 기술 개발에 4조7000억원, 반도체 시설 보조금 5조8000억원, 미일 차세대 반도체 연구센터에 3조3000억원 등 일본은 반도체 기반 역량을 근거로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양 대표는 “장기적인 투자가 집중되면 일본은 한국에 위협적인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비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일본과 중국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미국과 대만, 중국 등이 강력한 반도체산업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240억 달러 규모로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를 하고 있고, 반도체 보조금으로 520억 달러를 지원한다. 대만도 R&D 세액공제율을 높이고, 반도체 설비를 구매하면 5% 추가 공제에 나선다. 중국은 반도체 기업에 최대 10년 동안 소득세를 면제하고 있다.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해 각 국가들이 대규모 반도체 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양 대표는 이런 글로벌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규제를 없애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성과도 있다. 2022년 8월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해 2023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가 된 것이다. 일명 ‘K-칩스법’으로 미국의 ‘반도체칩과 과학법’인 일명 칩스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Q 반도체특별법을 대표 발의하고 국회 통과까지 했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조세제한특레법 개정안’에 반도체특별법이 포함되어 있는데, 2022년 8월 대표발의를 한 것인데 반도체 시설 준공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규제를 줄이고 세제혜택을 줘서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반도체 설비 투자 세액공제율은 기존에 대기업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였는데 이를 대기업 25%로 미국 수준으로 높였다. 이렇게 세액공제율을 높인 것은 일본이 TSMC를 유치한 것처럼 글로벌 기업의 한국 투자를 유인하고, 대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K-칩스법 때문에 시설투자액이 56조원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특화단지 조성 단계에서 국가가 지원하고 인허가를 간소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Q 반도체특별법으로 대기업만 혜택을 입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지금까지 반도체 관련 법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이 워낙 우위에 있었고, 그런 법이 없어도 기업들이 잘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 우선주위로 돌아서면서 한국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 한국 정부도 그런 법안을 만들어 대응을 해줘야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부나 국회에 없었다. 양향자라는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법이다. 산업계에서 ‘기적의 법’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과거 법 하나 만들려면 정치적인 싸움이 되곤 했지만, 전문가가 여야를 떠나서 기술이 한국의 미래라는 것을 설득하니까 이런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기업 특혜를 우려하는 이들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반도체 산업은 수많은 중견중소기업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노동의 가치도 이제는 기술로 넘어갔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묶여 있는 정치는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
K-칩스법 시즌 2 준비…인프라 지원이 중심
양 대표가 반도체특별법을 대표발의한 이유는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 정세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이 각종 세제 지원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양 대표는 “조세 특례다 뭐다, 인프라 다 깔아준다, 보조금 준다 등으로 미국 테일서 시에는 삼성 도로가 깔릴 정도다. 그만큼 각국이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 한국이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라며 “한국 기업의 엑소더스(대규모 탈출)가 이어질 것이다. 시장이 해외에 있고, 지원도 받을 수 있는데 공장을 해외에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K-칩스법의 핵심은 세제 지원이다. 반도체 관련 R&D나 시설 등의 투자에 대해 세제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2022년 8월 발의 후 2023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때까지 많은 진통을 겪었다고 한다. 세제 지원의 폭을 두고 8%로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면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게 된 것. 양 대표는 여야가 합의한 반쪽짜리 법에 대해 “차리라 법을 통과시키지 마라”라고 할 정도. 다행히도 정부가 양 대표가 발의한 반도체특별법에 힘을 실어주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양 대표는 “K-칩스법 시즌 1이 끝났고, 이제는 두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이라며 “이 법에서 부족했던 것을 보완해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준비한 K-칩스법 시즌2의 주요 내용은 ▲첨단산업 특화단지 인프라 국가 직접 조성 ▲첨단산업 특화단지 조성·운영 지원 확대 ▲첨단산업 특화단지 인프라 관할 지자체 교부금 우선 배분 ▲첨단산업 특화단지 용적률 향상 등의 인프라 지원을 골자로 하고 있다.
양 대표가 한국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부흥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력 양성이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의대 쏠림’ 현상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이공계 대신 의대로 밀려드는 것에 대해 “부모들이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떤 부모가 자식을 대량 해고 사태가 있는 산업으로 보내겠나”라며 “내가 ‘히든 히어로스’ 책을 낸 이유는 혁신 기술을 만드는 이들을 영웅으로 대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항공우주연구원에 입사하면 연봉이 9000만원이지만, 의사가 되어서 개원을 하면 3억원을 받는다. 한국 사회가 이런 엔지니어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줘야 의대 쏠림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공계 전문 인력이 많아져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약점인 시스템반도체 분야도 살아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오래전부터 시스템반도체에 도전했지만 인력이 부족했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웠던 것”이라며 “TSMC가 파운드리 분야를 선점한 것은 30년이라는 시간과 인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양 대표는 ‘기술 패권’을 강조했다. 국제 정세는 이제 정치가 아닌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1월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에 동료 의원 10여 명과 함께 간다고 한다. 기술 혁신의 현장을 의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과학기술에는 이념이 없고, 정치의 본령은 이제 과학 기술에 있다. 나는 우리 정치가 이뤄야 할 시대정신을 과학기술 패권국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의원 1인 정당 생활이 어렵지 않나?”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다.
“소망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그럴 여유가 없다. 과학기술 패권국가라는 희망이 있는데 어려움이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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