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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에 밀리고 쿠플에 치인 티빙-웨이브…‘합병 논의’ 속사정은?

[한국 OTT의 위기]②
논의 시작된 ‘토종 OTT 강자’의 결합…손익 계산에 바쁜 기업들
주주 구성 복잡성 해결·기업 결합 심사 통과·역할 분배 ‘과제 산적’
CJ ENM 태도 변화에 시장 해석 다양…지상파 3사 ‘각자도생’ 경계?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이 형성된 후 끊임없이 ‘설’(說·소문)로만 제기된 사안이 구체화할 조짐을 보인다. CJ ENM 자회사 ‘티빙’과 SK스퀘어 계열사 ‘콘텐츠웨이브’(웨이브 운영사·이하 웨이브)의 합병 논의가 궤도에 올랐다. CJ ENM과 SK스퀘어는 티빙-웨이브 합병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 방안 논의를 위해 지난해 12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국내 OTT 시장의 지각변동이 가시화되면서 관련 기업별로 손익 계산에 대한 고민도 한층 깊어지는 모양새다.

티빙과 웨이브는 시장에서 ‘토종 OTT 강자’로 불려 왔다. 글로벌 OTT의 국내 진출에도 가입자를 끌어모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티빙이 521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웨이브는 이 기간 404만명으로 집계됐다. 외산 플랫폼의 진격에도 ‘나름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업 규모를 구축했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국내 콘텐츠 제작비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현재 이용자 규모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 평가다. 실제로 두 기업은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흑자를 올리지 못했다. 적자 폭이 줄기는커녕 되레 지속해 늘고 있다. 티빙의 연간 영업손실 규모는 ▲2021년 762억원 ▲2022년 1192억원으로 점차 증가했다. 2023년 3분기 누적으로는 1177억원을 기록했다. 웨이브 역시 ▲2021년 558억원 ▲2022년 1217억원의 연간 적자를 봤다. 2023년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797억원이다.

시장 상황도 녹록잖다. 국내 OTT 산업은 이미 ‘레드오션’(Red Ocean·경쟁이 치열해 성공을 낙관하기 힘든 시장)으로 전환됐다.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벽은 여전히 견고하고, 최근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신흥 강자로 떠오른 ‘쿠팡플레이’의 존재도 부담이다. 쿠팡플레이의 MAU는 2022년 12월 395만명에서 2023년 12월 665만명으로 늘었다. 1년 사이 무려 270만명이 순증한 셈이다.

쿠팡은 월 4990원 유료 구독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 가입자를 대상으로 쿠팡플레이는 물론 쿠팡이츠(배달앱)·로켓배송 등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혜택을 강점으로 현재 1100만명 수준의 가입자를 끌어모으며 국내 1위 구독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손익분기점(BEP) 달성이 절실한 티빙·웨이브 입장에서 ‘대체재’ 쿠팡플레이의 진격은 현상 유지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양사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합병을 티빙과 웨이브의 거의 유일한 ‘생존 전략’으로 여기는 시각도 있다. 넷플릭스를 턱밑으로 좇을 수 있는 토종 OTT 플랫폼을 구축해야만 사업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단 분석이다. 티빙과 웨이브의 MAU 단순 합산치는 925만명이다. 합병을 이룬다면 두 플랫폼을 함께 사용 중인 가입자 수는 제외되겠지만, MAU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단숨에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등극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업계에선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플랫폼 MAU를 약 750만~850만명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용자 규모의 증대뿐 아니라 콘텐츠 수급 채널도 단숨에 확대된다는 점도 합병의 매력점으로 꼽힌다.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기본 조건을 충족할 수 있으리란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규모의 경제’ 필요하지만…주주 복잡성 ‘걸림돌’

넷플릭스는 국내 OTT 운영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기업이다. 넷플릭스 한국법인(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의 2022년 기준 연간 매출은 7733억원, 연간 영업이익은 143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12월 기준 넷플릭스의 국내 MAU는 1164만명이다. 해외에서 유의미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 않은 티빙·웨이브가 토종 OTT로서 적자 행보를 끊어내려면, 합병을 이뤄 넷플릭스 수준의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는 분석이 지속해 제기됐던 이유다.

이 같은 시장의 논리대로라면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상을 뜯어보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두 기업 주주 구성의 복잡성이 대표적이다. 티빙과 웨이브를 차치하더라도 무려 8개 기업이 합병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다.

티빙의 1대 주주는 지분 48.85%를 보유한 CJ ENM이다. 재무적 투자자(FI)로 지분을 보유 중인 JCGI의 ‘미디어그로쓰캐피탈제1호’(13.54%)를 제외하더라도 ▲KT스튜디오지니(13.54%) ▲SLL(옛 JTBC스튜디오·12.75%) ▲네이버(10.66%)가 합병 결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웨이브의 경우 40.5%(SK스퀘어아메리카 포함 수치)의 지분을 들고 있는 SK스퀘어가 최대 주주에 올라 있고, 지상파 3사(KBS·MBC·SBS) 각각 19.8%를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이들 기업이 단순히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합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CJ ENM·SLL·KT스튜디오지니는 티빙에, 지상파 3사는 웨이브에 콘텐츠를 주로 공급하며 별도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한다면 지분 조정은 물론 각 기업의 역할 분배까지 ‘진통 요소’가 곳곳이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OTT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결부돼 있어 단순히 ‘거대 토종 OTT 출범’이란 담론만으로 합병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미온적’ CJ ENM, SK스퀘어 러브콜에 응답한 까닭

그간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시장에서 ‘SK스퀘어의 바람’으로 여겨져 왔다. SK스퀘어(당시 SKT)가 2019년 미래에셋벤처투자와 SKS프라이빗에쿼티를 대상으로 전환사채(CB) 2000억원을 발행할 때 ‘5년 이내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2024년 11월까지 상장이 불발된다면, 투자 원금에 연 복리 3.8%를 더해 돌려줘야 한다. 웨이브는 상장 조건으로 내세운 ‘유료 가입자 500만명, 매출 5000억원’은 물론 BEP도 현재 못 맞추고 있다.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상환 규모는 웨이브의 생존을 좌우할 정도로 부담이 될 수 있단 평가도 나온다.

SK스퀘어가 이 같은 웨이브의 상황을 타개할 방안으로 ‘티빙 합병’을 주목하고 있단 신호는 2023년 초부터 시장에서 지속해 관측됐다. 그러나 CJ ENM은 티빙-웨이브 합병에 미온적 태도를 유지해 왔다. ‘경쟁사’ 웨이브가 CB 상환으로 유동성이 악화하고 이에 따라 경쟁력을 상실한다면 시장 주도권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그래서 이번 SK스퀘어와 MOU를 체결한 CJ ENM의 입장 전환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선 CB 상환에 비교적 이목을 집중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웨이브가 지상파 3사와 맺은 계약이 오는 9월 만료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며 “지상파 3사를 붙들어 둘 요인이 없다면 웨이브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악의 경우 웨이브를 이탈한 콘텐츠 기업들이 각자의 OTT 플랫폼을 꾸릴 수 있다. 이는 티빙 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일 것”이라며 “이를 피하기 위한 목적에서 논의를 시작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물론 시즌 합병·요금 인상 등 ‘티빙 자구책’에도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현 시장 상황도 합병 논의의 물꼬를 튼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양사가 맺은 MOU 내용이 대외에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았다. 다만 합병 기업의 1대 주주로 CJ ENM이, SK스퀘어가 2대 주주로 오르는 큰 방향성만 현재 논의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CJ ENM 관계자는 “MOU가 이제 막 체결된 상태라 구체적 진행 내용을 대외에 공개하긴 어렵다”며 “합병을 포함한 다양한 시너지 창출 방안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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