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없이 미술품 샀다간 낭패...알면 돈 되는 법률
[스페셜리스트뷰]
1조 미술시장 속 '컬렉터' 급증
미술품 구매 위한 법률적 사전지식 A to Z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필자에게는 종종 미술품 수집가들의 상담 요청이 들어오곤 한다. 이른바 ‘컬렉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자금을 대 시장을 돌아가게끔 만든다. 현재 전국적으로 열리는 아트페어 수는 50여 개가 넘고, 지난 2022년에는 한국 미술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당연하게도 컬렉터라는 타이틀을 차지한 이들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작품을 서너 점 모으는 뜨내기 수준을 벗어나 진지한 콜렉팅을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이른바 ‘을’의 지위가 돼버리곤 한다. 고가의 미술시장은 공급자 중심의 정보비대칭 시장이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일까?
여느 상품과 마찬가지로 미술품의 가격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다만 유명한 작가의 그림은 공급이 극도로 제한되기 때문에 단지 자금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소에 갤러리스트를 비롯한 미술계 인사들, 나아가 동료 컬렉터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고급정보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유명 작가의 신작 구매 기회가 과연 나에게도 올 수 있을까? 내가 갖고 싶은 작품을 소장 중인 컬렉터는 누구일까? 이 작가가 앞으로도 계속 몸값이 오를 작가일까? 등등 이런 종류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공급자, 즉 갤러리나 옥션이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컬렉터들은 언제나 목이 마른 상태다.
물론 시대가 흐른 만큼 관행도 점점 변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전통적으로 ‘고인물 시장’이기 때문에 여전히 고가 미술품 거래는 여러 사람의 친분과 인간관계, 정보 등이 복잡하게 얽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미술시장은 폐쇄적이며,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컬렉터들도 대개 폐쇄적인 거래 분위기에서 미처 계약 내용으로 조율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곤 한다.
이하에서는 여타 거래와는 다른 미술시장의 특성을 중심으로 미술품 구매를 위해 컬렉터가 미리 알아둬야 할 법률적 사전지식을 설명한다. 재력, 인맥 그리고 약간의 행운을 곁들여 마음에 쏙 드는 미술품을 손에 넣기 직전까지의 단계는 미술계의 다른 ‘선수들’ 도움을 받을 일이다.
변호사로서 필자는 구매계약 단계, 이후 소장 및 재판매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률적 이슈를 시간적 흐름에 따라 설명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접할 기회가 늘어난 ‘아트 디렉터’에 대한 설명도 추가한다.
협상력 차이로 생긴 ‘계약서 미교부’ 관행
미술시장의 전통적인 특징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여기에 더해 인기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공급이 부족한 ‘수요공급 법칙’까지 개입된다. 바로 여기서 협상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국내법은 협상력의 차이로 인한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두고 있다. 가령 임대차보호법을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민사 계약일 뿐이지만 관계 법령에서 계약 기간이나 차임 인상률의 제한 등 계약에 여러 제한을 두고 있다.
미술품 구매계약은 어떨까? 임대차보호법처럼 거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 자체가 없다. 순전히 계약자유의 원칙에 의해 돌아간다. 물론 지나치게 불공정하거나 공서 양속에 반하면 민법상 일반 원칙에 따른 제약을 받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다.
이렇게 방식도 내용도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종래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이런 관행은 최근 크게 변화됐다. 현재 대다수의 거래는 서면계약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그 서면이 얼마나 많은 합의 내용을 포함하는 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한 표준계약서가 존재하지만, 사용이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갤러리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계약서를 사용하기도 하고, 인보이스로 계약 서류에 갈음하기도 한다. 때론 영수증만 주기도 한다. 물론 변호사 입장에서는 내용이 풍부한 계약서 작성을 권한다.
계약의 내용은 자세할수록 좋다. 대상 작품의 제목, 크기, 제작연대, 그리고 도상 이미지, 금액, 대금 지급 일정이 포함돼야 한다. 만약 대금을 두 번 이상 분할해 계약금과 잔금 지급 일정으로 나눈다면 잔금 지급과 미술품의 인도는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잔금을 모두 지급하고도 미술품이 매수인에게 인도되기로 합의된 날짜에 제대로 인도되지 않으면 지체된 날 수를 기준으로 계산한 지체상금 약정을 할 수도 있다.
위 약정은 갤러리가 컬렉터에게 그림을 인도할 모든 준비가 됐는데 컬렉터가 잔금 지급일자에 지급하지 않을 경우 갤러리가 지체상금 청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또 판매자와 구매자 중 한쪽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도 있다. 이때 계약 파기로 발생한 손해액을 일일이 증명하기 어려운데, 이를 대비해 계약금을 몰수하는 등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놓을 수도 있다.
계약서뿐만 아니라 작품진위확인서도 중요
미술품 구매 후, 차분한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다 위작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위감정이 의뢰된 작품 중 위작으로 판명된 경우가 25% 내외라고 한다. 쉬쉬하고 감정에 맡기지 않은 경우까지 고려하면 위작 유통은 생각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위작의 경우는 대개 계약서에 ‘위작으로 판명된 경우에는 작품과 대금을 서로 반환한다’는 계약 조항을 넣고 이 조항에 의해 갤러리와 컬렉터 간 조용한 합의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환에 의한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소송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고가의 작품은 계약 단계에서 적어도 감정기관 2곳의 감정서를 확인하기를 권한다. 감정기관들도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매단계에서 컬렉터가 ‘을’이 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구매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소유권과 저작권, 제대로 알아야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우리가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계약’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구매단계에서 계약이 아닌, 국내법이 정해놓은 규율로 인해 미리 고려해야만 하는 이슈도 있다. 바로 저작권 문제다.
컬렉터는 미술품의 ‘소유권’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소유권은 ‘저작권’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이우환 화백의 ‘다이알로그’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이미지를 핸드폰 케이스로 만든다거나 섬유에 인쇄해 스카프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 복제 권리는 저작권자인 작가가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미술품 이미지를 이용해 수익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미리 저작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논해야 한다.
이는 작가 또는 갤러리 측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이를 활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판매한 작품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용해 컬렉터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대체불가능토큰(NFT)화 하거나 판화를 대량으로 찍어버린다면 ‘유니크 피스’인 원화를 구매한 컬렉터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면 분쟁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구매 후 일정 기간 되팔기 금지…왜?
미술품 구매계약에서는 다른 매매계약에 잘 없는 특별한 내용이 삽입되기도 한다. 바로 리세일(Resale) 금지조항이다. 그림을 구매해간 뒤 몇 년(주로 3~5년) 동안은 되팔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왜 이런 제약을 가할까?
이는 공급이나 대중의 선호에 따라 미술품 가격이 매우 쉽게 변동될 수 있다는 특징에서 비롯한다. 2주에 한 개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작품은 최대치로 계산해도 1년에 26점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3년 내 이 작품을 구매한 사람 중 각 해에 4~5명이 그림을 단기간에 시장에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 특정 시점에서는 평소보다 공급량이 160~170% 넘어서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공급자들이 결코 원치 않는 결과다.
또한 이런 제약이 가해지는 것은 작품이 그 예술적 가치를 음미하고 향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단지 단기차익만을 노린 매매 대상으로 전락하길 원치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정 기간의 리세일 금지 조항을 삽입하기도 한다. 다만 아직까지 시장에서 보편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구조물’이 본사 앞에 있어야 하는 이유
저작인격권은 저작재산권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저작재산권은 재산적인 이용가치를 의미한다. 이와 달리 저작인격권은 ▲작품을 공표할지 말지(공표권) ▲작가의 이름이나 예명을 적당한 방식으로 표기해야 한다든지(성명표시권) ▲작품은 작가가 만든 형태를 본질적으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동일성유지권)는 작가의 인격적인 이익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 중 특히 동일성유지권은 작품의 소장 중 설치미술의 위치를 옮기거나 작품의 모양을 변형해야 할 때 문제될 수 있다.
서울 강남 포스코 본사 앞에는 ‘꽃이 피는 구조물, 아마벨’이라는 작품이 있다. 비행기의 잔해를 가져와 작가가 직접 현재 위치에서 제작했다. 고철덩어리로 만든 이 작품의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는 민원이 거세지자 포스코 측에서는 작품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시도했다.
이때 이전에 반대하는 작가와 작가의 의견에 동조하는 미술계가 주장하고 나선 것이 바로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이다. 이 작품은 철강기업이라는 포스코의 상징물로서 작품이 있어야 할 장소인 포스코 본사 앞에서 작가가 직접 만들었다. 해당 장소가 바로 작품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의미다. 이는 ‘장소특정예술’이라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장소라는 맥락이 작품을 읽어내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슈로 작품은 더 유명해졌다. 결국 이 문제는 주변의 조경을 다듬고 작품에 조명을 비춰 음산한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방식으로 해결됐다.
작품의 ‘상업적 활용’ 가능할까
돈을 주고 그림을 사온 순간부터는 모든 걸 소유주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일단 원화의 소유권자는 원본을 전시할 수 있다. 법률적으로는 ‘전시권을 갖는다’고 표현한다. 다만 일정한 제약이 있다.
길, 공원, 건축물 외벽, 기타 공개된 장소에는 전시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출입 제한이 있는 실내에서만 가능한 셈이다. 이때 전시 소개 책자 정도는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단순 소개의 목적을 넘어서는 화보나 화집, 포스터를 제작하려면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하다.
온라인 전시 소개에 작품을 복제·전송하는 것이 과연 허용되는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저작권법 문언상으로는 마치 인쇄물만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 판례는 작가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온라인상의 홍보를 위한 복제와 전송도 허용하고 있다. 실무적으로도 온라인 전시 소개를 문제 삼는 작가(저작권자)는 보지 못했다.
이렇게 원본 소유자의 권리는 제한적이다. 예외적으로 ‘전시권’이라는 저작권 중 일부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전시하는 것을 넘어서 상업적인 활용을 하고자 할 때 생긴다. 이때는 저작권자의 추가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언뜻 생각했을 때 이해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돈을 주고 샀으니 어떻게 활용을 하든 내 마음일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니…. 이것이 바로 저작권과 소유권이 서로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리세일 금지조항 위반하면 소송당할까
그림을 절대 팔지 않는 컬렉터가 있는 반면, 다른 작품을 더 사기 위해 보유한 작품을 처분하는 사람도 많다. 이때 급전이 필요해 3년 내로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작품을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계약 위반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게 될까?
결론적으로 현실에서 소송으로 특정 금액을 배상해 내는 일은 어려울 것 같다. 약속한 때보다 빨리 미술품을 재판매해서 작가나 갤러리가 입게 되는 손해액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확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리세일금지약정을 위배할 경우 ‘그림 가격의 몇 퍼센트를 손해배상으로 지급한다’는 식으로 미리 배상액을 정해놓는다면 계약 위반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조건을 받아들이고 합의할 것인지는 결국 교섭력과 계약을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 등에 의해 좌우된다.
미술품, 구매 후 세금 얼마나 낼까
미술품에는 취·등록세, 재산세 등 이른바 보유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상속세나 증여세는 미술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미술품은 동산(動産)이라 눈에 띄지 않게 숨겨둘 수 있고 거래 과정이 등기부등본에 공시되는 것도 아니어서 은닉하기 쉽다. 상속이나 증여에 부정 이용되는 사례가 많은 이유다.
미술품에 대한 세금은 소득세에서 발생한다. 작가와 갤러리에 대한 세금 이야기는 제외하고, 미술품을 구매하는 컬렉터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양도소득세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자.
내국인 작가의 작품에 한정해 설명하자면, 판매한 미술작품의 가격이 6000만원 이상이며 동시에 작가가 이미 작고한 때에만 세금을 부과한다. 따라서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1억원에 구매해 5억원에 판매하면 양도소득세는 발생하지 않는다. 생존작가의 경우 금액에 상관없이 과세하지 않는 것은 국내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인 고려다.
반면 작고한 작가의 작품은 어떨까? 고(故) 김창렬 화백의 ‘물방울 시리즈’를 2000년대 초반에 3000만원에 사서 최근 1억원에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6000만원 이상의 거래이면서 작고한 화백의 작품은 과세 대상이다.
이때 세율은 지방소득세까지 합쳐서 총 22%다. 이때 1억원 작품은 90%가 필요경비로 인정돼 공제된다. 판매가 1억원에서 10%가 남아 총 1000만원에 대해서만 세금이 부과된다.
즉, 1000만원의 22%인 220만원이 최종 세금이다. 7000만원의 양도차익이 발생했는데 세금이 220만원이라면, 실제 실효세율은 3.3%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작품가액이 1억원을 넘으면 필요경비로 80%를 공제하지만 이마저도 보유기간이 10년을 넘어가면 90%를 적용한다. 컬렉터 입장에서는 강력한 절세효과가 있는 셈이다.
아트 디렉터-아트 컨설턴트의 등장
최근 대중매체를 통해 자신을 아트 디렉터 또는 아트 컨설턴트라 소개하는 이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들의 일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긴 어렵다. 공급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종합적인 일을 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최근의 아트 디렉터들은 작가를 소개하고, 공동구매나 타임세일 등의 타이틀을 달아 마치 쇼호스트처럼 원화나 판화의 판매를 중개한다. 작품 해설 모임 등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활동은 특정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부터 자기 자신의 구매 수수료를 취하기 위한 목적까지 다양한 동기로 이뤄진다. 사람을 많이 모으면 유리한 비즈니스여서 인플루언서인 경우도 많다.
앞서 판매를 중개한다고 표현했지만, 이는 법률적인 의미의 중개는 아니다. 미술품 판매 중개는 특별한 자격 요건이 필요 없으며, 중개인으로서의 법률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다.
부동산 거래와 비교해보자.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기 위해서는 ‘공인중개사법’상 적법한 공인중개사 자격이 필요하다. 나아가 위법은 개업공인중개사가 사무소를 등록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손해배상책임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중개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의뢰인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하지만 미술품 거래에는 이와 같은 제도적 안전장치가 없다. 어지간한 부동산 가격을 뛰어넘는 고가의 미술품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말이다. 미술품 거래 사고의 경우 그 책임은 매수인 또는 매도인이 오롯이 지는 경우가 많다. 아트 디렉터 등 구매를 유도한 이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법률적 책임을 묻기 위한 요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이들은 시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작품과 콜렉터와의 거리를 좁히는 긍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거래 사고의 책임을 지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술품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은 때론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를 맞이하는 그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거기에 금전적으로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면 금상첨화다.
미술시장은 고전적으로 이너서클에서 가장 양질의 정보가 나온다. 합리적인 예산 내에서 공을 들이고 신중히 알아보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변호사들이 늘 하는 말이지만, 사건이 터진 후 수습하는 것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미술품 구매 역시 다르지 않다. 돌다리도 두드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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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작품을 서너 점 모으는 뜨내기 수준을 벗어나 진지한 콜렉팅을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이른바 ‘을’의 지위가 돼버리곤 한다. 고가의 미술시장은 공급자 중심의 정보비대칭 시장이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일까?
여느 상품과 마찬가지로 미술품의 가격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다만 유명한 작가의 그림은 공급이 극도로 제한되기 때문에 단지 자금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소에 갤러리스트를 비롯한 미술계 인사들, 나아가 동료 컬렉터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고급정보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유명 작가의 신작 구매 기회가 과연 나에게도 올 수 있을까? 내가 갖고 싶은 작품을 소장 중인 컬렉터는 누구일까? 이 작가가 앞으로도 계속 몸값이 오를 작가일까? 등등 이런 종류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공급자, 즉 갤러리나 옥션이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컬렉터들은 언제나 목이 마른 상태다.
물론 시대가 흐른 만큼 관행도 점점 변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전통적으로 ‘고인물 시장’이기 때문에 여전히 고가 미술품 거래는 여러 사람의 친분과 인간관계, 정보 등이 복잡하게 얽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미술시장은 폐쇄적이며,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컬렉터들도 대개 폐쇄적인 거래 분위기에서 미처 계약 내용으로 조율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곤 한다.
이하에서는 여타 거래와는 다른 미술시장의 특성을 중심으로 미술품 구매를 위해 컬렉터가 미리 알아둬야 할 법률적 사전지식을 설명한다. 재력, 인맥 그리고 약간의 행운을 곁들여 마음에 쏙 드는 미술품을 손에 넣기 직전까지의 단계는 미술계의 다른 ‘선수들’ 도움을 받을 일이다.
변호사로서 필자는 구매계약 단계, 이후 소장 및 재판매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률적 이슈를 시간적 흐름에 따라 설명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접할 기회가 늘어난 ‘아트 디렉터’에 대한 설명도 추가한다.
협상력 차이로 생긴 ‘계약서 미교부’ 관행
미술시장의 전통적인 특징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여기에 더해 인기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공급이 부족한 ‘수요공급 법칙’까지 개입된다. 바로 여기서 협상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국내법은 협상력의 차이로 인한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두고 있다. 가령 임대차보호법을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민사 계약일 뿐이지만 관계 법령에서 계약 기간이나 차임 인상률의 제한 등 계약에 여러 제한을 두고 있다.
미술품 구매계약은 어떨까? 임대차보호법처럼 거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 자체가 없다. 순전히 계약자유의 원칙에 의해 돌아간다. 물론 지나치게 불공정하거나 공서 양속에 반하면 민법상 일반 원칙에 따른 제약을 받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다.
이렇게 방식도 내용도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종래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이런 관행은 최근 크게 변화됐다. 현재 대다수의 거래는 서면계약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그 서면이 얼마나 많은 합의 내용을 포함하는 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한 표준계약서가 존재하지만, 사용이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갤러리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계약서를 사용하기도 하고, 인보이스로 계약 서류에 갈음하기도 한다. 때론 영수증만 주기도 한다. 물론 변호사 입장에서는 내용이 풍부한 계약서 작성을 권한다.
계약의 내용은 자세할수록 좋다. 대상 작품의 제목, 크기, 제작연대, 그리고 도상 이미지, 금액, 대금 지급 일정이 포함돼야 한다. 만약 대금을 두 번 이상 분할해 계약금과 잔금 지급 일정으로 나눈다면 잔금 지급과 미술품의 인도는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잔금을 모두 지급하고도 미술품이 매수인에게 인도되기로 합의된 날짜에 제대로 인도되지 않으면 지체된 날 수를 기준으로 계산한 지체상금 약정을 할 수도 있다.
위 약정은 갤러리가 컬렉터에게 그림을 인도할 모든 준비가 됐는데 컬렉터가 잔금 지급일자에 지급하지 않을 경우 갤러리가 지체상금 청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또 판매자와 구매자 중 한쪽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도 있다. 이때 계약 파기로 발생한 손해액을 일일이 증명하기 어려운데, 이를 대비해 계약금을 몰수하는 등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놓을 수도 있다.
계약서뿐만 아니라 작품진위확인서도 중요
미술품 구매 후, 차분한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다 위작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위감정이 의뢰된 작품 중 위작으로 판명된 경우가 25% 내외라고 한다. 쉬쉬하고 감정에 맡기지 않은 경우까지 고려하면 위작 유통은 생각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위작의 경우는 대개 계약서에 ‘위작으로 판명된 경우에는 작품과 대금을 서로 반환한다’는 계약 조항을 넣고 이 조항에 의해 갤러리와 컬렉터 간 조용한 합의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환에 의한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소송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고가의 작품은 계약 단계에서 적어도 감정기관 2곳의 감정서를 확인하기를 권한다. 감정기관들도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매단계에서 컬렉터가 ‘을’이 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구매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소유권과 저작권, 제대로 알아야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우리가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계약’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구매단계에서 계약이 아닌, 국내법이 정해놓은 규율로 인해 미리 고려해야만 하는 이슈도 있다. 바로 저작권 문제다.
컬렉터는 미술품의 ‘소유권’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소유권은 ‘저작권’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이우환 화백의 ‘다이알로그’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이미지를 핸드폰 케이스로 만든다거나 섬유에 인쇄해 스카프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 복제 권리는 저작권자인 작가가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미술품 이미지를 이용해 수익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미리 저작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논해야 한다.
이는 작가 또는 갤러리 측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이를 활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판매한 작품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용해 컬렉터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대체불가능토큰(NFT)화 하거나 판화를 대량으로 찍어버린다면 ‘유니크 피스’인 원화를 구매한 컬렉터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면 분쟁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구매 후 일정 기간 되팔기 금지…왜?
미술품 구매계약에서는 다른 매매계약에 잘 없는 특별한 내용이 삽입되기도 한다. 바로 리세일(Resale) 금지조항이다. 그림을 구매해간 뒤 몇 년(주로 3~5년) 동안은 되팔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왜 이런 제약을 가할까?
이는 공급이나 대중의 선호에 따라 미술품 가격이 매우 쉽게 변동될 수 있다는 특징에서 비롯한다. 2주에 한 개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작품은 최대치로 계산해도 1년에 26점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3년 내 이 작품을 구매한 사람 중 각 해에 4~5명이 그림을 단기간에 시장에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 특정 시점에서는 평소보다 공급량이 160~170% 넘어서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공급자들이 결코 원치 않는 결과다.
또한 이런 제약이 가해지는 것은 작품이 그 예술적 가치를 음미하고 향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단지 단기차익만을 노린 매매 대상으로 전락하길 원치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정 기간의 리세일 금지 조항을 삽입하기도 한다. 다만 아직까지 시장에서 보편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구조물’이 본사 앞에 있어야 하는 이유
저작인격권은 저작재산권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저작재산권은 재산적인 이용가치를 의미한다. 이와 달리 저작인격권은 ▲작품을 공표할지 말지(공표권) ▲작가의 이름이나 예명을 적당한 방식으로 표기해야 한다든지(성명표시권) ▲작품은 작가가 만든 형태를 본질적으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동일성유지권)는 작가의 인격적인 이익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 중 특히 동일성유지권은 작품의 소장 중 설치미술의 위치를 옮기거나 작품의 모양을 변형해야 할 때 문제될 수 있다.
서울 강남 포스코 본사 앞에는 ‘꽃이 피는 구조물, 아마벨’이라는 작품이 있다. 비행기의 잔해를 가져와 작가가 직접 현재 위치에서 제작했다. 고철덩어리로 만든 이 작품의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는 민원이 거세지자 포스코 측에서는 작품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시도했다.
이때 이전에 반대하는 작가와 작가의 의견에 동조하는 미술계가 주장하고 나선 것이 바로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이다. 이 작품은 철강기업이라는 포스코의 상징물로서 작품이 있어야 할 장소인 포스코 본사 앞에서 작가가 직접 만들었다. 해당 장소가 바로 작품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의미다. 이는 ‘장소특정예술’이라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장소라는 맥락이 작품을 읽어내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슈로 작품은 더 유명해졌다. 결국 이 문제는 주변의 조경을 다듬고 작품에 조명을 비춰 음산한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방식으로 해결됐다.
작품의 ‘상업적 활용’ 가능할까
돈을 주고 그림을 사온 순간부터는 모든 걸 소유주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일단 원화의 소유권자는 원본을 전시할 수 있다. 법률적으로는 ‘전시권을 갖는다’고 표현한다. 다만 일정한 제약이 있다.
길, 공원, 건축물 외벽, 기타 공개된 장소에는 전시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출입 제한이 있는 실내에서만 가능한 셈이다. 이때 전시 소개 책자 정도는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단순 소개의 목적을 넘어서는 화보나 화집, 포스터를 제작하려면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하다.
온라인 전시 소개에 작품을 복제·전송하는 것이 과연 허용되는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저작권법 문언상으로는 마치 인쇄물만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 판례는 작가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온라인상의 홍보를 위한 복제와 전송도 허용하고 있다. 실무적으로도 온라인 전시 소개를 문제 삼는 작가(저작권자)는 보지 못했다.
이렇게 원본 소유자의 권리는 제한적이다. 예외적으로 ‘전시권’이라는 저작권 중 일부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전시하는 것을 넘어서 상업적인 활용을 하고자 할 때 생긴다. 이때는 저작권자의 추가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언뜻 생각했을 때 이해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돈을 주고 샀으니 어떻게 활용을 하든 내 마음일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니…. 이것이 바로 저작권과 소유권이 서로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리세일 금지조항 위반하면 소송당할까
그림을 절대 팔지 않는 컬렉터가 있는 반면, 다른 작품을 더 사기 위해 보유한 작품을 처분하는 사람도 많다. 이때 급전이 필요해 3년 내로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작품을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계약 위반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게 될까?
결론적으로 현실에서 소송으로 특정 금액을 배상해 내는 일은 어려울 것 같다. 약속한 때보다 빨리 미술품을 재판매해서 작가나 갤러리가 입게 되는 손해액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확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리세일금지약정을 위배할 경우 ‘그림 가격의 몇 퍼센트를 손해배상으로 지급한다’는 식으로 미리 배상액을 정해놓는다면 계약 위반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조건을 받아들이고 합의할 것인지는 결국 교섭력과 계약을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 등에 의해 좌우된다.
미술품, 구매 후 세금 얼마나 낼까
미술품에는 취·등록세, 재산세 등 이른바 보유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상속세나 증여세는 미술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미술품은 동산(動産)이라 눈에 띄지 않게 숨겨둘 수 있고 거래 과정이 등기부등본에 공시되는 것도 아니어서 은닉하기 쉽다. 상속이나 증여에 부정 이용되는 사례가 많은 이유다.
미술품에 대한 세금은 소득세에서 발생한다. 작가와 갤러리에 대한 세금 이야기는 제외하고, 미술품을 구매하는 컬렉터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양도소득세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자.
내국인 작가의 작품에 한정해 설명하자면, 판매한 미술작품의 가격이 6000만원 이상이며 동시에 작가가 이미 작고한 때에만 세금을 부과한다. 따라서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1억원에 구매해 5억원에 판매하면 양도소득세는 발생하지 않는다. 생존작가의 경우 금액에 상관없이 과세하지 않는 것은 국내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인 고려다.
반면 작고한 작가의 작품은 어떨까? 고(故) 김창렬 화백의 ‘물방울 시리즈’를 2000년대 초반에 3000만원에 사서 최근 1억원에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6000만원 이상의 거래이면서 작고한 화백의 작품은 과세 대상이다.
이때 세율은 지방소득세까지 합쳐서 총 22%다. 이때 1억원 작품은 90%가 필요경비로 인정돼 공제된다. 판매가 1억원에서 10%가 남아 총 1000만원에 대해서만 세금이 부과된다.
즉, 1000만원의 22%인 220만원이 최종 세금이다. 7000만원의 양도차익이 발생했는데 세금이 220만원이라면, 실제 실효세율은 3.3%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작품가액이 1억원을 넘으면 필요경비로 80%를 공제하지만 이마저도 보유기간이 10년을 넘어가면 90%를 적용한다. 컬렉터 입장에서는 강력한 절세효과가 있는 셈이다.
아트 디렉터-아트 컨설턴트의 등장
최근 대중매체를 통해 자신을 아트 디렉터 또는 아트 컨설턴트라 소개하는 이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들의 일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긴 어렵다. 공급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종합적인 일을 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최근의 아트 디렉터들은 작가를 소개하고, 공동구매나 타임세일 등의 타이틀을 달아 마치 쇼호스트처럼 원화나 판화의 판매를 중개한다. 작품 해설 모임 등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활동은 특정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부터 자기 자신의 구매 수수료를 취하기 위한 목적까지 다양한 동기로 이뤄진다. 사람을 많이 모으면 유리한 비즈니스여서 인플루언서인 경우도 많다.
앞서 판매를 중개한다고 표현했지만, 이는 법률적인 의미의 중개는 아니다. 미술품 판매 중개는 특별한 자격 요건이 필요 없으며, 중개인으로서의 법률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다.
부동산 거래와 비교해보자.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기 위해서는 ‘공인중개사법’상 적법한 공인중개사 자격이 필요하다. 나아가 위법은 개업공인중개사가 사무소를 등록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손해배상책임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중개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의뢰인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하지만 미술품 거래에는 이와 같은 제도적 안전장치가 없다. 어지간한 부동산 가격을 뛰어넘는 고가의 미술품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말이다. 미술품 거래 사고의 경우 그 책임은 매수인 또는 매도인이 오롯이 지는 경우가 많다. 아트 디렉터 등 구매를 유도한 이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법률적 책임을 묻기 위한 요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이들은 시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작품과 콜렉터와의 거리를 좁히는 긍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거래 사고의 책임을 지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술품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은 때론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를 맞이하는 그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거기에 금전적으로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면 금상첨화다.
미술시장은 고전적으로 이너서클에서 가장 양질의 정보가 나온다. 합리적인 예산 내에서 공을 들이고 신중히 알아보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변호사들이 늘 하는 말이지만, 사건이 터진 후 수습하는 것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미술품 구매 역시 다르지 않다. 돌다리도 두드려 볼 일이다.
백세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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