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만원 벌던 미술 문외한, ‘도슨트계 아이돌’ 되다[이코노 인터뷰]
정우철 도슨트, ‘꾸준함’이 만들어낸 결실
전시 작품·작가 등 흡입력 있는 해설로 인기
도슨트 활동 외 방송 출연 및 책 출판 등 미술 대중화 앞장
[이코노미스트 이혜리 기자] 정우철 도슨트(Docent)는 현재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그는 ‘베르나르 뷔페’ 전을 시작으로 ‘툴루즈 로트렉’·‘호안 미로’ 전으로 이름을 알리고, EBS 지식 교양 프로그램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지난해에는 국민 MC 유재석이 진행하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며 도슨트라는 직업에 대한 엄청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정 도슨트는 작품 분석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미술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을 예술 작품에 녹이는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입문 5년 만에 스타 도슨트로 자리매김했다. ‘미술관의 피리부는 남자’, ‘도슨트계의 아이돌’ 등의 수식어가 요즘 그의 위상을 말해준다. 이는 7년째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은 성실함, 그리고 자신의 일에 매사 지치지 않은 열정으로 임한 덕분이다.
그는 왜 도슨트가 됐을까
정 도슨트는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이후 그는 대학 시절 인턴으로 일했던 영상 회사에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무작정 퇴사를 결정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영상 외의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던 그 무렵, 회사에서의 승진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사회적 신분이 사라지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도 많이 했다. 정 도슨트는 스스로에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나’, ‘뭘 할 때 가장 행복한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 나름 회사 에이스였어요. 당시 목표는 교육 영상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거였죠. 20대 내내 영상 일을 하다 보니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졌어요. 회사에 내 인생을 묻을수 없단 생각에 무모한 결정을 했죠. 그때 저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미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떠올렸죠. 그러다 전시 스태프 일을 하게 됐고, 우연히 ‘도슨트’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가르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도세르’에서 유래한 도슨트(Docent)는 지식을 갖춘 전문안내인을 의미한다. 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관람객에게 작품 및 작가, 각 시대 미술의 흐름 등을 짚어준다. 쉽게 말해 미술 분야에서 일종의 관광 가이드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미술 비전공자인 정 도슨트는 이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누구보다 미술 작품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었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갔다.
“백수 시절, 전시회에서 다른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데 정말 대충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요즘에야 도슨트가 각광받고 있지만, 당시엔 자원봉사 개념이 많았어요. 네이버에 작가를 검색해서 나오는 정보를 A4 용지에 뽑아와 관객들을 보지도 않고 읽는 수준이었죠. ‘내가 저거보단 잘하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미술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도슨트 스태프에 지원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적성에 딱 맞았어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너무 재밌었죠. 6개월간 함께했던 도슨트는 저 포함 4명이었는데 끝날 때가 되니 저 혼자 남게됐죠. 돌이켜보니 운도 따라줬던 것 같아요.”
다만 도슨트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보수를 못받는 건 다반사고 쉬는 시간 없이 일하는 등 처우는 열악했다. 그럼에도 정 도슨트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3년간 무보수로 일하며 묵묵히 도슨트의 길을 걸었다.
“말이 도슨트지 전시장 스태프 월급을 받았어요. 고작해야 한 달에 100만원 수준이었죠. 저를 이제야 알게 된 사람들은 ‘쟤 처음부터 잘 됐잖아’라고 이야기하던데, 정말 오해에요. 오죽하면 도슨트를 직업으로 선택할 때 포기한 게 있어요. 결혼이었죠. 서른 살까지 월 100만원을 받았는데, 어떻게 연애를 했겠어요.(웃음) 그럼에도 일이 너무 재미있어 다른 걸 못 하겠더라고요. 그만큼 열심히 했어요. 만약 그때로 돌아가면 이런 결정을 다시는 못할 것 같아요.”
“MBTI는 INFP, 극 내향형…나의 무기는 스토리텔링”
도슨트는 작품 설명을 하며 관객들을 자신에게 집중시켜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정작 정 도슨트는 내향적 성향의 소유자다. 성격유형지표(MBTI)는 INFP이지만 주변에서 모두 그를 E(외향적)로 여긴다고 한다. 여러 방송에서 전문가다운 입담을 뽐낸 그지만 처음엔 관객들과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제 MBTI는 이 직업과는 맞지 않아요. 저는 I가 92% 나오는 극 내향형 인간이에요. 사람들 앞에 서면 너무 떨어서 고생도 많이 했어요. 사실 지금도 완벽하게 극복하진 못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9년 전시예요. 손을 너무 떨어서 물을 못 마실 정도였죠. 그래서 한동안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먹었어요. 사람들은 원래 제가 말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아요. 처음에는 그 약이 없으면 방송을 못 했어요.”
정 도슨트는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는 ‘비전공자’다. 그는 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했다. 미술에 문외한인 일반 관객들의 눈높이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궁금하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작가의 인생과 메시지에 집중했다.
“화가 인생을 해설하는 것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가장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에 갓 입문한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죠. 그림 표현, 기법은 관객 입장에서 재미없어요. 그림 속에 작가의 인생이 있고, 그 작가의 인생을 말해야 집중도가 올라가거든요. 화가가 남긴 메시지나 증언을 해설 중간에 들려주면서 흥미를 높이죠. 이 화가의 메시지를 잘 전달해야 하는 책임감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질투의 대상 되기도…미술 대중화 앞장서고파”
2019년 정 도슨트가 맡게 된 ‘베르나르 뷔페’ 전시 해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툴루즈 로트렉, 알폰스 무하,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등의 전시 해설을 맡으며 스타 도슨트로 자리매김했다.
정 도슨트의 등장 이후 최근 미술에 대한 대중 관심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제 관람객들은 전시회 선택 시 도슨트가 누구인지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전시가 끝나고 도슨트 기획사 대표님이 ‘도슨트가 전시를 살리는 건 처음 봤다’고 말씀하셨어요. 이후 도슨트의 방향이 바뀌었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도슨트도 많아졌죠. 전시회장에서 도슨트를 먼저 찾는 사람들도 늘었어요. 나름대로 미술 대중화에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도 생겼어요.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관람객들이 정 도슨트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인사를 건내는 풍경은 그가 참여한 전시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또 정 도슨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의 일정을 파악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팬카페도 생겼을 정도다. 반면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혼자 나름대로 도슨트의 처우 개선을 위해 싸우고 있어요. 앞서가는 사람이 처우를 높여야 하잖아요. 지금도 저를 미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보통 미술계에서 질투의 대상은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이죠. 제가 잘 돼서 본인이 안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별개의 영역이에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을 때 또 다른 영역이 생기고, 뜰 수 있는 거거든요. 앞서가는 사람으로서 이런 시기와 질투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정 도슨트가 출연했던 EBS 클래스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 극장’은 이 프로그램 자체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미린이’(미술+어린이)들에게 그림 감상의 재미를 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작품 큐레이팅을 전면으로 내세운 방송 프로그램인 MBN ‘헬로아트’ 시즌 1(3월 16일 종영)에 출연해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연예인 큐레이터가 나와 작품을 설명하고, 이를 평가하는 전문가 패널로 출연했어요. 최대한 전문가 입장에서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죠. 중학생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하니까요. 신진 작가를 소개하고, 그의 신념을 들려주는 동시에 오락적인 면도 가져가는 프로그램이에요. 저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됐어요. 미술계 유명인들과 함께 패널로 출연하면서 도슨트의 위상을 높이게 된 거죠.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순기능이 많아요.”
정 도슨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결코 쉽지 않았다며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전했다.
“요즘은 너무 한탕 시대인 것 같아요. 비트코인, 주식에 빠진 걸 보면 그만큼 사는 것이 힘들단 뜻이죠. 하지만 한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해 성공하는 것과 우연히 한탕으로 성공하는 인생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원하는, 잘하는 분야를 찾아서 전문가가 돼 인정받는 것이 삶의 목표와 신념이 생기고 올바른 성공이라 생각해요. 꼰대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꾸준히 실력을 키워 인정받는 것이 최고인 것 같아요. 묵묵히 자기 분야를 파면 기회는 오기 마련이에요. 저도 길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었지만, 꾸준히 한 길만 파다 보니 길이 됐어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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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도슨트는 작품 분석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미술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을 예술 작품에 녹이는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입문 5년 만에 스타 도슨트로 자리매김했다. ‘미술관의 피리부는 남자’, ‘도슨트계의 아이돌’ 등의 수식어가 요즘 그의 위상을 말해준다. 이는 7년째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은 성실함, 그리고 자신의 일에 매사 지치지 않은 열정으로 임한 덕분이다.
그는 왜 도슨트가 됐을까
정 도슨트는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이후 그는 대학 시절 인턴으로 일했던 영상 회사에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무작정 퇴사를 결정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영상 외의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던 그 무렵, 회사에서의 승진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사회적 신분이 사라지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도 많이 했다. 정 도슨트는 스스로에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나’, ‘뭘 할 때 가장 행복한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 나름 회사 에이스였어요. 당시 목표는 교육 영상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거였죠. 20대 내내 영상 일을 하다 보니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졌어요. 회사에 내 인생을 묻을수 없단 생각에 무모한 결정을 했죠. 그때 저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미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떠올렸죠. 그러다 전시 스태프 일을 하게 됐고, 우연히 ‘도슨트’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가르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도세르’에서 유래한 도슨트(Docent)는 지식을 갖춘 전문안내인을 의미한다. 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관람객에게 작품 및 작가, 각 시대 미술의 흐름 등을 짚어준다. 쉽게 말해 미술 분야에서 일종의 관광 가이드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미술 비전공자인 정 도슨트는 이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누구보다 미술 작품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었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갔다.
“백수 시절, 전시회에서 다른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데 정말 대충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요즘에야 도슨트가 각광받고 있지만, 당시엔 자원봉사 개념이 많았어요. 네이버에 작가를 검색해서 나오는 정보를 A4 용지에 뽑아와 관객들을 보지도 않고 읽는 수준이었죠. ‘내가 저거보단 잘하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미술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도슨트 스태프에 지원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적성에 딱 맞았어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너무 재밌었죠. 6개월간 함께했던 도슨트는 저 포함 4명이었는데 끝날 때가 되니 저 혼자 남게됐죠. 돌이켜보니 운도 따라줬던 것 같아요.”
다만 도슨트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보수를 못받는 건 다반사고 쉬는 시간 없이 일하는 등 처우는 열악했다. 그럼에도 정 도슨트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3년간 무보수로 일하며 묵묵히 도슨트의 길을 걸었다.
“말이 도슨트지 전시장 스태프 월급을 받았어요. 고작해야 한 달에 100만원 수준이었죠. 저를 이제야 알게 된 사람들은 ‘쟤 처음부터 잘 됐잖아’라고 이야기하던데, 정말 오해에요. 오죽하면 도슨트를 직업으로 선택할 때 포기한 게 있어요. 결혼이었죠. 서른 살까지 월 100만원을 받았는데, 어떻게 연애를 했겠어요.(웃음) 그럼에도 일이 너무 재미있어 다른 걸 못 하겠더라고요. 그만큼 열심히 했어요. 만약 그때로 돌아가면 이런 결정을 다시는 못할 것 같아요.”
“MBTI는 INFP, 극 내향형…나의 무기는 스토리텔링”
도슨트는 작품 설명을 하며 관객들을 자신에게 집중시켜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정작 정 도슨트는 내향적 성향의 소유자다. 성격유형지표(MBTI)는 INFP이지만 주변에서 모두 그를 E(외향적)로 여긴다고 한다. 여러 방송에서 전문가다운 입담을 뽐낸 그지만 처음엔 관객들과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제 MBTI는 이 직업과는 맞지 않아요. 저는 I가 92% 나오는 극 내향형 인간이에요. 사람들 앞에 서면 너무 떨어서 고생도 많이 했어요. 사실 지금도 완벽하게 극복하진 못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9년 전시예요. 손을 너무 떨어서 물을 못 마실 정도였죠. 그래서 한동안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 먹었어요. 사람들은 원래 제가 말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아요. 처음에는 그 약이 없으면 방송을 못 했어요.”
정 도슨트는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는 ‘비전공자’다. 그는 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했다. 미술에 문외한인 일반 관객들의 눈높이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궁금하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작가의 인생과 메시지에 집중했다.
“화가 인생을 해설하는 것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가장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에 갓 입문한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죠. 그림 표현, 기법은 관객 입장에서 재미없어요. 그림 속에 작가의 인생이 있고, 그 작가의 인생을 말해야 집중도가 올라가거든요. 화가가 남긴 메시지나 증언을 해설 중간에 들려주면서 흥미를 높이죠. 이 화가의 메시지를 잘 전달해야 하는 책임감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질투의 대상 되기도…미술 대중화 앞장서고파”
2019년 정 도슨트가 맡게 된 ‘베르나르 뷔페’ 전시 해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툴루즈 로트렉, 알폰스 무하,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등의 전시 해설을 맡으며 스타 도슨트로 자리매김했다.
정 도슨트의 등장 이후 최근 미술에 대한 대중 관심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제 관람객들은 전시회 선택 시 도슨트가 누구인지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전시가 끝나고 도슨트 기획사 대표님이 ‘도슨트가 전시를 살리는 건 처음 봤다’고 말씀하셨어요. 이후 도슨트의 방향이 바뀌었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도슨트도 많아졌죠. 전시회장에서 도슨트를 먼저 찾는 사람들도 늘었어요. 나름대로 미술 대중화에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도 생겼어요.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관람객들이 정 도슨트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인사를 건내는 풍경은 그가 참여한 전시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또 정 도슨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의 일정을 파악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팬카페도 생겼을 정도다. 반면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혼자 나름대로 도슨트의 처우 개선을 위해 싸우고 있어요. 앞서가는 사람이 처우를 높여야 하잖아요. 지금도 저를 미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보통 미술계에서 질투의 대상은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이죠. 제가 잘 돼서 본인이 안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별개의 영역이에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을 때 또 다른 영역이 생기고, 뜰 수 있는 거거든요. 앞서가는 사람으로서 이런 시기와 질투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정 도슨트가 출연했던 EBS 클래스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 극장’은 이 프로그램 자체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미린이’(미술+어린이)들에게 그림 감상의 재미를 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작품 큐레이팅을 전면으로 내세운 방송 프로그램인 MBN ‘헬로아트’ 시즌 1(3월 16일 종영)에 출연해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연예인 큐레이터가 나와 작품을 설명하고, 이를 평가하는 전문가 패널로 출연했어요. 최대한 전문가 입장에서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죠. 중학생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하니까요. 신진 작가를 소개하고, 그의 신념을 들려주는 동시에 오락적인 면도 가져가는 프로그램이에요. 저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됐어요. 미술계 유명인들과 함께 패널로 출연하면서 도슨트의 위상을 높이게 된 거죠.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순기능이 많아요.”
정 도슨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결코 쉽지 않았다며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전했다.
“요즘은 너무 한탕 시대인 것 같아요. 비트코인, 주식에 빠진 걸 보면 그만큼 사는 것이 힘들단 뜻이죠. 하지만 한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해 성공하는 것과 우연히 한탕으로 성공하는 인생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원하는, 잘하는 분야를 찾아서 전문가가 돼 인정받는 것이 삶의 목표와 신념이 생기고 올바른 성공이라 생각해요. 꼰대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꾸준히 실력을 키워 인정받는 것이 최고인 것 같아요. 묵묵히 자기 분야를 파면 기회는 오기 마련이에요. 저도 길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었지만, 꾸준히 한 길만 파다 보니 길이 됐어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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