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온 디바이스 AI, 개화는 아직”…이코노미스트 테크 포럼 [가봤어요]
이코노미스트 제10회 테크 포럼 개최…기업인 100여 명 참석
“온 디바이스 AI 시대 개막, 올해는 일러…2년 내 변곡점 올 것”
“초개인화 AI 비서 구현할 핵심 기술…상호작용 방식 합의해야”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인공지능(AI)이 기기로 들어온다면 결국 인간과 상호작용해야 한다. 이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본격적인 확산이 이뤄지리라고 본다.”(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AI에 다양한 감지 기술이 덧붙여져 기기가 본격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게 되면 초개인화 비서 등장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영화 ‘그녀’(Her)에 나온 사만다나 ‘아이언맨’의 자비스도 꿈이 아니다.”(김지현 SK경영경제연구소 부사장)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26일 서울특별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조찬 강연회 형태로 개최한 ‘제10회 테크 포럼’에 연사로 오른 두 전문가는 최근 전개되고 있는 AI 기술 변화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이들은 “온전한 의미의 온 디바이스 AI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면서도 “기술 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어 이르면 2년 안에, 늦어도 5년 내 일상에서 큰 변화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온 디바이스 AI 시대가 온다
이코노미스트가 올해도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맥을 짚었다. 이코노미스트 테크 포럼은 10년 전 ICT 분야 이슈를 공유하는 작은 모임에서 시작한 행사다. 기술 변화와 경제적 인사이트를 듣고자 하는 업계 요구에 따라 규모를 점차 키워 지금은 ‘ICT 변화를 가장 먼저 담는’ 포럼으로 자리 잡았다.
2023년까지 ICT 시장의 최대 화두가 ‘생성형 AI’(Generative AI)였다면, 2024년 초 가장 뜨거운 주제로 부상한 기술로는 단연 ‘온 디바이스 AI’(On-Device AI)가 꼽힌다. 서버 연결 없이 기기 자체적으로 AI 기능을 수행하는 기술이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생성형 AI 기술을 기반으로 마련된 다양한 편의 서비스가 기기에 탑재되면서 새로운 시장도 열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1월 세계 첫 AI 스마트폰으로 내놓은 ‘갤럭시 S24 시리즈’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코노미스트는 뚜렷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런 기술 변화를 분석·진단하기 위해 올해 포럼의 주제를 ‘온 디바이스 AI 시대가 온다’로 설정했다.
연사로는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과학기술 전문서점 ‘책과얽힘’ 대표) ▲김지현 SK경영경제연구소 부사장을 초청했다. 이들은 ICT 업계 변화를 오랜 시간 지켜보며 자신의 언어로 기술하는 전문가로 통한다.
현장은 두 전문가가 바라본 ‘온 디바이스 AI’ 시대의 단면을 듣기 위한 열기로 가득했다. 국내 주요 기업 임직원 100여 명이 테크 포럼 현장을 찾아 이들의 인사이트에 귀를 기울였다. 온 디바이스 AI 확산에 따른 변화를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전자·플랫폼·통신·게임 분야부터 유통·금융·자동차·제조 등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영역까지. 다양한 기업 관계자들이 이번 테크 포럼을 통해 AI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어갔다.
곽혜은 이코노미스트 발행인은 이번 테크 포럼 주제에 맞춘 ‘특별한 개회사’로 이들을 맞이했다. 그는 “온 디바이스 AI는 최근 많은 기업이 주목하는 기술”이라며 “이번 포럼이 새로운 영감과 통찰력을 얻을 기회의 장이 될 것”이란 말로 행사의 막을 올렸다.
곽 발행인은 한참 개회사를 진행하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네이버가 개발한 생성형 AI 플랫폼 ‘클로바X’에 몇 가지 조건을 넣어 생성한 인사말인데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AI가 우리 삶에 벌써 다양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며 “AI 기술 변화가 빠르게 전개되는 분위기에 개최한 이번 포럼이 새로운 기회를 발굴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초개인화 AI 구현, 선결 조건은?
첫 연사로 나선 김 부사장은 ‘챗GPT부터 온 디바이스 AI까지’란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온 디바이스 AI가 주목받는 이유는 서버 기반의 초대형 AI 서비스보다 비용·속도·보안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AI가 개인화된 기기에 탑재되면 나만을 위한 비서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피규어AI(Figure AI)와 오픈AI가 협업해 개발한 로봇 ‘피규어 01’을 예로 들며 “기기에 다양한 감지 기능이 결합되면서 본격적으로 물리 세계를 인식하는 임바디드 AI(Embodied AI, 시각·언어·행동모델 기반 신체를 가진 AI)가 등장할 정도로 기술이 빠르게 성숙하고 있다.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마련되고 있고, 이는 기기에 탑재된 AI가 여러 방식으로 개인을 학습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언어를 구사하는 수준을 넘어 물리적 세계와 개인을 이해하는 AI가 등장하고 있단 설명이다.
김 부사장은 최근 AI 변화 양상에 대해선 “스마트폰 등장 후 나타난 굴곡과 유사하다”고 봤다. 그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0년대부터 소프트웨어(SW)는 하드웨어(HW)를 대체했다. 멜론 앱이 MP3를 대신한 식”이라며 “AI는 현재 주류가 된 SW를 먹어 치울 기술”이라고 분석했다. 포토샵·캠타시아·엑셀 등 PC 기반 SW부터 지도·은행·검색·메시지 등 모바일 앱 모두 ‘사용 방식’을 익혀야 한다. AI는 대화를 통해 SW를 가동할 수 있어 사용법을 익히지 않아도 되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리라는 견해다.
그는 “물론 온 디바이스 AI 시대는 올해엔 시기상조”라고 했다. 다만 “지금의 발전 속도에 비춰 볼 때 내년이나 내후년엔 분명 큰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대표 역시 온 디바이스 AI 시대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점에 공감을 나타냈다. 그는 ‘온 디바이스 AI를 위한 기술’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며 “소형 기기에 AI가 온전히 장착되더라도 ‘서버 기반 서비스’만큼 성능이 구현돼야 소비자가 만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기기에 탑재된 AI가 챗GPT만큼의 편의성을 제공하지 못해 본격적인 확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단 분석이다.
그는 온 디바이스 AI 구현 조건으론 ▲반도체 칩의 고도화 ▲소형 모델의 최적화를 꼽고 “아직 고객이 원하는 반도체 성능과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또 “기기에 탑재된 AI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며 “과거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안경이 나왔을 때 사진 촬영 등의 이슈로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사회적 용납이 가능한 사용 방식을 갖춘 기기가 나와야 확산이 이뤄질 것”이라고 봤다.
한 대표는 다만 ▲휴메인 AI 핀 ▲갤럭시 S24 시리즈 ▲AI 노트북 등에 적용된 기술을 설명하며 “온 디바이스 AI는 개인 정보 보안 측면에서 대단히 강점이 있고, 초개인화·접근성·지속적 학습에서도 유리해 잠재력이 큰 기술”이라고 짚었다. 최근 기술 동향에 대해선 “AI는 대형언어모델(LLM)에서 거대멀티모달모델(LMM)로, 최근에는 대규모행동모델(LAM)로 발전하고 있다”며 “LLM이 운영체제(OS)로 들어와야 본격적인 기술 성숙이 이뤄질 수 있는데, 이런 변화는 2년 이내에 찾아오리라고 생각한다. 온 디바이스 AI 시대의 개화도 이 시점부터 이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1세대 AI 연구자’로 불리는 한 대표는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80년대 카이스트에서 AI를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종합기술원·삼보컴퓨터·삼성전자를 거쳐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전략 대표와 일본 법인장을 역임했다. 카이스트와 세종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2011년부터 테크프론티어 대표로 기술 변화의 핵심을 전달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1995년부터 연구가이자 저술가·강연자로 활약한 ‘IT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커리어다음·코리아리크루트·소프트뱅크유웨이 등 인터넷 벤처기업에서 일했다. 2005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사를 역임했다. 2020년 1월부터 SK경영경제연구소 부사장에 올라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업 모델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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