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파두 사태’ 전말…SK하이닉스는 왜 ‘TSMC 이용권’을 나눴나
SK하이닉스가 전환해 준 TSMC 물량…반도체 불황에 파두 재고로
메타 투자 감축에 거래 잠시 끊겼지만, 양사 협업 관계 여전한 듯
매출 예측 실패 ‘빨간불’…‘AI 시대’ 개막에 파두·SK하이닉스 ‘청신호’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반도체업계는 물론 국내 주식 시장에도 큰 충격을 준 이른바 ‘파두 사태’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파두는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이다. 파두 사태의 본질은 매출 차이에 있다. 회사가 ‘기술성장기업 특례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당시 제시한 연간 매출 예측치는 1202억9400만원이다. 그러나 실제 연간 매출은 224억7090만원 그쳤다. 이에 즉각 ‘공모가 고평가’ 논란이 벌어졌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1000억원 규모의 괴리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SK하이닉스가 파두에 전환해 준 TSMC 생산 권리’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SK하이닉스 측은 “어떤 경우에도 ‘물량 수주를 보장하는’ 계약을 맺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4일 복수의 반도체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파두는 기업공개(IPO) 전 SK하이닉스로부터 TSMC 웨이퍼(반도체 원판) 물량을 전환받았다. SK하이닉스가 확보해 둔 TSMC 생산 권리를 파두에 양도했단 뜻이다. 양사가 함께 진행하는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기업) 데이터센터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공급 사업을 위한 협력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TSMC는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이다. 팹리스 업체의 반도체 품질이 TSMC 첨단 공정 사용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아 세계 굴지의 팹리스라도 ‘TSMC 예약 경쟁’을 벌이곤 한다. TSMC 역시 고객사를 가려 받기로 유명해 업계에선 ‘슈퍼 을(乙)’로 불린다. 팹리스 스타트업인 파두로선 TSMC에 대규모 생산 예약을 넣는 건 쉽지 않은 구조다.
파두가 메타 납품을 원활히 가져가기 위해선 TSMC 생산 설비 사용이 필수적이다. 증권가에선 파두의 SSD 컨트롤러는 TSMC 핀펫(FinFET) 공정을 통해 양산된 제품이라고 본다. 파두는 ‘TSMC 예약’이란 난관을 협력사인 SK하이닉스 영향력으로 풀어낸 셈이다. SK하이닉스가 파두에 전환해 준 TSMC 물량은 웨이퍼 60만장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양측이 논의한 메타 공급 물량 예측치(Forecast)는 SSD 컨트롤러 120만개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안이 매출 예상치 추산에 영향을 미쳤지만, 2023년 역대급 반도체 불황에 잡았던 물량이 실질적인 납품으로 이어지지 않아 ‘파두 사태’가 벌어진 구조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지난 4월 파두 사태와 관련해 SK하이닉스를 참고인 자격으로 압수수색한 일도 이런 사업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사경은 앞서 파두를 압수수색한 바 있다. 당시 확보한 문건과 SK하이닉스 측 자료 대조를 목적으로 진행된 압수수색인 것으로 알려졌다.
견고했던 ‘파두-SK하이닉스-메타’ 구조
파두의 주력 제품은 SSD 컨트롤러다. SSD는 다수의 낸드플래시(Nand Flash·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정보가 계속 저장되는 비휘발성 기억장치)를 병렬로 연결한 제품이다. 낸드는 값이 저렴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열에 취약하단 단점이 있다. 이를 단순히 병렬로 연결한다면 속도는 물론 내구성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시스템 반도체가 SSD 컨트롤러다. 다수의 낸드에 병렬적으로 동시 접근해 자료 처리 순서를 정하는 등 모든 기능을 제어한다. 낸드 데이터 처리 속도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취약한 내구성을 보완하는 필수 제품이라 ‘SSD 두뇌’로 불린다. SSD 경쟁력은 낸드가 아닌 컨트롤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두는 고사양이 요구되는 데이터센터용 SSD 컨트롤러를 설계할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파두 외 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은 삼성전자·마벨 정도로 드물다.
파두가 업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건 메타의 SSD 컨트롤러 관련 기술 인증을 획득했다는 점이 대외에 알려지면서다. 메타는 이후 SK하이닉스에 ‘파두 컨트롤러 탑재 데이터센터 SSD’ 공급을 요청했다. SK하이닉스가 이 요청을 수락하면서 메타 사업이 본격화됐다. SK하이닉스 낸드에 파두의 컨트롤러를 붙여 메타 데이터센터에 납품하는 계약이 이뤄진 배경이다. 파두가 컨트롤러를 SK하이닉스에 공급하고, SK하이닉스가 SSD 완제품을 만들어 메타에 제공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사업 구조가 작동하기 시작한 건 2021년 말부터다.
파두의 실적은 이에 따라 고공 성장한다. 2021년 51억5681만원에 불과했던 연간 매출은 2022년 564억151만원으로 성장했다. 이 중 77.8%에 해당하는 438억9100만원이 SSD 컨트롤러 사업에서 나왔다.
파두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건 2023년 8월 7일이다. SK하이닉스-메타로 이어지는 사업 구조 아래 성장한 파두는 상장 전 증권신고서(투자설명서)에 2023년 연간 실적 추정치로 매출 1202억9400만원과 영업이익 1억1100만원을 써냈다. 예측치 산출엔 본지가 확인한 ‘TSMC 전환 물량’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2곳의 전문 평가 기관 중 하나인 이크레더블은 파두에 AA등급(매우 높은 기술력을 가진 기업·장래 환경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준)을 매겼다. 이들은 투자설명서에 “(파두가) 2020년부터 고객사 평가 및 검증 절차를 거쳤으며, 2021년 말부터 기업용 SSD(eSSD) 컨트롤러 솔루션을 양산해 글로벌 기업(메타 등)에 공급하고 있다”고 게재했다. 이를 고려하면 상장 당시 메타 관련 매출이 발생한 건 확실하다. 이에 따라 공모가는 희망 범위 최상단인 3만1000원으로 확정됐고, 시가총액은 1조4898억원으로 평가됐다.
끊긴 거래…위기의 파두
문제는 2023년 11월 9일 상장 당시 공개되지 않았던 2분기 실적과 3분기 실적이 함께 공시되면서 나타났다. 2분기 매출은 5900만원, 영업손실 152억7500만원으로 집계됐다. 3분기 역시 매출은 3억2081만원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148억2135만원으로 나타났다. 상장 당시 제시한 예측치와 사뭇 다른 실적을 올리면서 주가는 급락했다. 기업가치 1조5000억원으로 상장한 기업이 낸 실적과는 어울리지 않아서다. 실적 발표 직전 3만4000원 대였던 주가는 1만7000원 선까지 주저앉았다. 당시 충격은 여전히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두는 지난 3일 1만768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에 따라 시가총액도 8675억원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결국 파두는 2023년 연간 기준 매출 224억7090만원, 영업손실 585억6943만원을 기록했다. 파두는 지난해 3분기 사업보고서를 통해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2021년·2022년 및 2023년 1분기까지 낸드(Nand) A사(SK하이닉스로 추정)의 매출 비중은 각각 73.1%, 78.2%, 64.2%를 차지하고 있다”며 “예상을 뛰어넘은 낸드 및 SSD 시장의 침체와 데이터센터들의 내부 상황이 맞물려 2023년 3분기에는 낸드 A사에 대한 컨트롤러 매출이 전무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종 고객인 하이퍼스케일러 데이터센터(메타로 추정)들이 낸드 사에 발주를 중단한 것이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재무제표상 SSD 컨트롤러 관련 매출은 2023년 2분기부터 끊겼다. SK하이닉스와의 거래가 상장 전후에 중단됐다는 방증이다.
AI 시대…반등 ‘신호탄’
파두의 SSD 컨트롤러 관련 매출 발생은 2023년 4분기부터 재개됐다. 이에 따라 2024년 1분기 매출은 23억3185만원, 영업손실은 162억2868만원을 각각 기록했다. 여전히 부진한 실적이지만 ‘역대급 반도체 불황’을 겪었던 2023년과 비교하면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
이에 따라 파두의 SK하이닉스 관련 매출도 점차 개선될 수 있단 기대가 나온다. 메타가 인공지능(AI) 역량을 강화하고 있어 멈췄던 데이터센터 증설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로선 함께 호흡을 맞춰 글로벌 고객사 수주를 따낸 경험이 있는 파두를 굳이 배척할 요인이 적기도 하다.
다만 ‘TSMC 전환 물량’에 따라 발생한 재고는 양사 관계에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메타는 2022년 말부터 점차 데이터센터 증설 관련 투자를 줄였다. 당시 덴마크에 추가 설립을 예정했던 데이터센터 3개 중 2개를 취소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파두가 SK하이닉스로부터 전환받은 TSMC 생산 물량이 재고로 쌓일 수밖에 없던 상황인 셈이다. 실제로 파두의 올해 1분기 별도 기준 재고자산 취득원가는 392억원으로 전년 말 243억원 대비 61.3% 급증했다. 파두는 이에 해당 재고를 SK하이닉스가 해결해달라는 의사를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게 이 사안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해당 물량을 당장 받아줄 요인은 크지 않다. TSMC 생산 권한 전환이 수주를 보증한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양사의 필요에 따라 이뤄진 협업이라 수주 의무는 없다는 게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메타 발주가 끊기면서 일정 부분 재고를 쌓아둔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재고를 고려하면, 파두 물량을 무리하면서까지 받을 상황이 아니란 말도 나오고 있다. 메타 발주가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위험 부담에 나설 이유가 없단 분석이다. 또 양측이 협업 과정에서 메타의 SSD 수요 감축 논의를 충분히 할 수 있는 구조였던 점도 SK하이닉스에 ‘도의적 책임론’을 제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물론 업계 일각에선 SK하이닉스가 파두에 웨이퍼를 전환해 준 게 관행상 ‘수주를 전제’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TSMC의 리드티임(물품을 발주해 생산하고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이 6개월 정도임을 고려하면 책임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시각이다.
양사의 협업 관계는 여전히 유효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올해 1월 범용인공지능(AGI) 개발 계획을 공개하며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칩 35만개를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힌 점은 양사에 긍정적 신호로 여겨진다. 메타가 다시금 AI 영역에 투자를 집행하면, AI 학습 데이터 보관에 필수적인 데이터센터용 SSD 수요가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존 공급한 컨트롤러의 후속 차세대 컨트롤러도 현재 메타를 고객으로 한 프로젝트가 파두와 SK하이닉스 간에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개로 글로벌 빅테크 사이에서 AI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파두의 신규 고객사 발굴에도 속도가 붙고 있는 모습이다. 회사는 최근 공시를 통해 중국 SSD 전문업체와 지난 5월 24일 1405만 달러(191억7122만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반적인 시장 상황도 좋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기업용 SSD 매출은 전 분기보다 62.9% 늘어난 37억5810만 달러(약 5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트렌드포스 측은 “AI 서버 기반 고용량 수요가 증가했다”며 “올해 2분기 기업용 SSD 계약 가격도 20% 이상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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