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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조건부 면허제’ 도입...고령 운수업자 ‘23.6%’는 어쩌나

[고령자 면허 논란]①
잇따른 고령 운전자 가해 교통사고 발생
“조건부 면허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인도에 설치된 분리대가 완전히 파괴되어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15명의 사상자를 낳은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와 3명의 부상자를 야기한 ‘국립중앙의료원 택시 돌진’ 사고 당시 운전자들은 모두 만 65세 이상 고령으로 확인됐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근 잇따라 발생한 고령 운전자 가해 교통사고로 ‘조건부 면허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7월 8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청사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신체 인지 능력의 현저한 저하로 사고 위험이 높은 고위험 운전자를 대상으로 나이 불문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개발(R&D)을 올해 시한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논란이 됐던 건 단순히 연령·숫자로 제한해서 차별을 두는 것처럼 비친 부분”이라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여러 차례 말씀드렸고, 말 그대로 나이와 상관없이 고위험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현재 연구 용역이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건부 면허 도입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20일 정부는 ‘2024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을 통해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건부 면허제는 운전자의 운전 능력에 따라 운전 허용 범위를 차등 적용하는 제도다. 65세 이상 ‘고령자 운전자’의 능력에 따라 야간·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였다.

당시 반발도 있었다. 고령자의 ‘이동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걱정이 주를 이뤘다. 정부 발표 이후 이틀 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가피하게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할 때는 최소한도 내에서, 정교해야 하고,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며 “고연령 시민들에 대한 운전면허 제한 같은 이슈도 마찬가지”라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논란이 일자 경찰청은 참고 자료를 통해 “조건부 운전면허는 이동권을 보장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라며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 조건부 면허제 논란은 일단락됐다.
 
한동안 잠잠하던 ‘조건부 면허제’는 최근 들어 다시 불붙었다. 연이어 발생한 고령 운전자 가해 교통사고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청역 인근 역주행 교통사고’와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택시 돌진’ 사고가 대표적이다.

지난 7월 1일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68세 A 씨가 몰던 승용차가 약 200m 역주행하다 인도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보행자 9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당했다. 13명의 사상자를 낳은 셈이다. A 씨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3일에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서 손님이 하차한 후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유턴하던 운전자 B(70) 씨는 이 과정에서 보행자 3명과 차량 4대를 치었다. 이 사고로 1명은 중상을, 2명은 경상을 입었다. B 씨도 ‘차량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령 운전자 사고는 통계상으로도 증가세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3만9614건으로 집계됐다.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고치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다. 전년 17.6% 대비 2.4% 올랐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이번 사고 발생 원인이 ‘급발진’이 아닌 ‘운전자의 과실 등’으로 결론 날 경우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은 더욱 탄력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고령 운전자 가해 교통사고로 조건부 면허제도 도입에 대한 여론이 다시금 형성됐다”며 “아직 명확한 사고 원인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도 도입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큰데, 급발진이 아닌 운전 미숙이 사고 원인으로 밝혀질 경우 조건부 면허 도입은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줄지어 늘어서 있는 택시들 [사진 연합뉴스]

65세 이상 고령 생계형 운전자 반발도


본격적인 조건부 면허제도 도입에 앞서 버스·택시 운수 종사자 등 고령 ‘생계형 운전자’의 반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운수종사자 79만5000여 명 중 23.6%(18만7000여 명)는 65세 이상 고령자였다. 2019년 17.3%였던 고령자 비율은 매년 1∼2%포인트씩 증가하고 있다.

운수업종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전국 택시 기사 23만 5976명 중 만 65세 이상의 고령 택시기사 비율은 10만7371명(45%)에 달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기준 개인택시 기사의 평균 연령은 64.6세다. 65세 이상 택시 기사의 비중은 전체의 50.3%에 달한다. 

서울 소재 한 법인 택시 회사 관계자는 “젊은 택시 기사를 고용하고 싶어도 지원자들은 대다수 고령 운전자”라며 “젊은 택시 기사들이 하나, 둘 배달 기사로 떠나는 상황인데, 고령 운전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고령 운전자 의존도는 화물차·버스 등과 같은 사업용 차량 업계에서도 높게 나타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65세 이상 화물 운수종사자(용달·일반·개별)는 3만463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화물 운수종사자 수는 5만 7215명이다. 5년 만에 65% 증가한 셈이다.

개인 용달 화물 업체를 운영하는 67세 최 씨는 “가해 운전자가 고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령 운전자 전체에 대한 조건부 면허 제도 도입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단순히 나이로 재단하는 조건부 면허제는 운수업 종사자 대다수가 고령인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도”라고 비판했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운전 제한’이 아닌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장효석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을 통해 자동비상제동장치(AEBS) 장착 차량 구매를 유도하고, 추돌사고 예방을 위해 관련 운전 능력이 저하된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AEBS 장착 차량에 한해 운전을 허용하는 조건부 면허 발급 제도 도입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조건부 면허 제도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며 “고령자 취업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조건부 면허제도 도입이 일으킬 수 있는 파장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제한에 초점을 두기보다,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보조장치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금 제공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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