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대한민국, 해법의 실마리는?[순화동필]
[저출생 문제와 해법을 말한다]①
세계적인 현상, 위기일까 축복일까
'출산 권하는 사회'에 거부감
[유혜정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박사] 우리나라 지난해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인 23만 명을 기록한 가운데, 올해 출생아 수는 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43만6000명 수준이던 출생아 수가 10년 사이 거의 반 토막이 된 것이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저출산 현상의 중심에는 결혼 적령기인 20~30대 청년들이 있다.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지난 18년(2006~2023년)간 38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청년들은 더 이상 취업 후 결혼에서 출산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생애주기 모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구감소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위기인가, 축복인가?
한국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로 인구의 장기적인 증가 또는 감소 추세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통계 지표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8년에 처음으로 1.0명을 밑돌기 시작했으며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합계출산율인 인구대체수준 2.1명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 감소는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아지면 일반적으로 합계출산율이 이전 세대에 비해 낮아진다. 특히 서구 선진국은 산업화 이후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 한국보다 일찍이 출산율이 감소했으며, 현재 OECD 회원국 중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합계출산율은 인구대체수준을 밑돌고 있다.
저출산이 이처럼 세계적인 현상이라면, 인구감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인구감소는 축복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발생하는 경쟁과 갈등이 완화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비좁은 땅덩어리를 생각한다면 인구감소가 환경적인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회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구감소는 단순히 인구의 총량이 감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청년층 비율이 감소하고 고령층 비율이 높아지는 인구구조의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그 결과 노동력 감소, 소비시장 위축, 내수시장 붕괴, 부양 부담 증가와 재정 악화, 지방대 폐교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 저출산 문제의 핵심은 유례없이 빠른 인구감소와 고령화 속도이다. 출산율이 감소하면 젊은 인구와 신생아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전체 인구에서 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에 달하면 고령화 사회, 14%에 도달하면 고령사회라 일컫는다. 유럽 최고의 출산율 국가인 프랑스는 이 전환과정에 115년이 걸렸다. 반면 한국은 18년 만에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가 됐다.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해 2018년 고령사회에 도달해 프랑스보다 97년,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보다도 6년 빠르게 고령사회가 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출생아 수는 64만 명에서 33만 명으로 감소했다. 2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출생아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인구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큰 충격을 주며 미래 사회의 회복력과 개인의 삶의 질까지 잠식한다.
또 다른 핵심은 저출산 현상의 장기화다. 합계출산율이 초저출산의 기준인 1.3명 이하로 3년 이상 지속되면 출산율이 반등하기 어렵고 인구를 회복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02년 이후 현재까지 1.3명 이하로 계속 유지되고 있고 향후 50년 내에도 이 수준을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70년 동안 초저출산이 유지되면 합계출산율이 아무리 올라도 인구수는 반등하기 어렵다. 출산할 수 있는 여성의 수 자체가 줄어들어 실제로 태어나는 아이 수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부의 노력과 한계
정부는 지난 6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인구전략기획부 신설계획을 발표하는 등 저출산에 대한 범국가적 총력 대응 체계에 돌입했다.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정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0년대 초부터 인구감소의 징후가 시작되었으나 1996년이 돼서야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였고 2000년대부터 저출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2005년 처음으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제정되어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수립되었고 현재 제4차 계획이 시행되고 있다.
제1차 기본계획(2006~2010)은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제2차 기본계획(2011~2015)은 출산·양육에 대한 국가·사회의 책임 강화를 주요 목적으로 추진됐다. 그 결과 2005년 기준 2만 8000여 개에 불과하던 전국 어린이집 수가 2016년에는 4만2000여 개소로 증가했다. 그러나 사회적 돌봄 기관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육아휴직급여 정률제 등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현상은 계속됐다.
제3차 기본계획(2016~2020)은 만혼·비혼 추세가 심화함에 따라 청년 일자리, 신혼부부 주거 지원 등 구조적인 대응을 시도하였다. 앞서 실시한 1, 2차 기본계획이 지나치게 미시적 요인에 치중하여 저출산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합계출산율은 단 한 번의 반등도 없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마지막으로 제4차 기본계획(2021~2025)은 개인을 노동력·생산력 관점으로 바라보는 ‘국가발전 전략’에서 ‘개인’의 삶의 질 제고 전략으로 기본 관점을 전환하고 ‘개인의 삶의 질 향상’,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인구변화 대응 사회 혁신’이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양성평등 육아, 일·가정 양립, 노동시장의 성평등 구현 등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강도 높은 지원이 제4차 기본계획의 의의로 볼 수 있다.
2006년부터 2024년까지 저출산 대응을 위해 네 차례에 걸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자,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예산 구성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016년 이후 출산과 돌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예산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증액된 예산 대부분은 주거 및 고용 등 결혼과 출산 결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이 간접지원은 예산집행 방식 및 대상의 특성상 현금을 지원하는 직접지원과 달리 체감하기 어려우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예산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저출산 해결을 위해 직접 지원하는 예산은 8년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GDP 대비 가족지출(Family Benefits)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6%(2019년 기준)로 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이기 때문에 출산·육아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 예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여전히 청년들에게 출산을 권하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책의 기본 관점이 ‘출산장려’에서 ‘삶의 질 제고’로 변화했으나 ‘출산지향적’인 정책과 평가방식은 유지되고 있다. 출산은 매우 사적 영역의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강요받는 순간 거부감이 따른다. 따라서 ‘출산하면 OO을 지원한다.’ 식의 보상이 아니라 ‘출산해도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국가소멸이나 공동체 해체 등과 같은 위기론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작년 6월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9세 1408명 중 82.2%가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저출산 현상과 본인과의 관련성에 대한 질문에는 57.2%만이 ‘관련되어 있다’고 응답했다. 즉, 많은 청년들이 국가와 본인의 문제를 이원화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주의 관점에서 출산을 강요하기보다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임신·출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담과 위험을 사회가 수용해야 한다.
저출생 해법, 열쇠는 기업에 있다.
합계출산율이 낮다고 해서 지난 18년간 정부의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동수당, 육아휴직 의무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배우자 출산휴가 등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다양한 출산·육아 지원 제도가 도입되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살펴봤을 때, 오늘날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정책은 해외 선진국가와 견줄 만큼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정부가 도입한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한 출생아 부모는 출생아 100명당 35명으로 OECD 평균인 74명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2022년 기준). 고용노동부에서 2022년에 실시한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로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42.6%)’,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24.2%)’,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20.4%)’ 등을 꼽았다. 따라서 정부의 제도 도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기업 안에서 정책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저출산 해결을 위해서 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사실 저출산 문제는 기업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안정적인 일자리 부족, 경력단절, 출산 후 직장 내 불평등한 처우 등 저출산 문제 원인의 중심에는 기업이 있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저출산 대응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이 인구위기 해결 주체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실제로 대표적인 가족친화기업인 포스코는 최근 ‘육아휴직’ 대신 ‘육아몰입 기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발표를 했다. 육아휴직이라는 명칭이 쉬러 간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내부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하여 육아에 온전히 집중한다는 의미의 ‘육아몰입 기간’으로 명칭을 바꾼 것이다. 기업이 스스로 육아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직원들이 부담없이 제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에게 이와 같은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원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이 기업입장에서는 지출 부담으로 여겨지며 특히 대기업에 비해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출산·육아 지원제도 확대는 근무환경의 질을 높이고 우수인력을 영입할 수 있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동시에 정부는 저출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액 공제, 입찰 시 우대, 금리 인하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지난 18년간 정부가 투입한 노력을 성과로 이어갈 수 있는 마중물이 바로 기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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