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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갈 곳 없는’ 전기차...선박도 지하주차장도 ‘문전 박대’

서울시·충남도 전기차 90% 충전 제한 도입 계획
‘전기차량 해상운송 안전대책’ 권고에 선적 난항
전기차 포비아 확산...민·관 대응책 마련 안간힘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이 진행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전기차에 족쇄가 채워졌다.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가 화근이다. 이 화재로 차량 140여 대가 피해를 입었다. 차량뿐만 아니라 주민 103명이 대피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지하에 설치된 수도관과 각종 설비도 녹았다. 인적, 물적 피해가 막대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와 충청남도는 전기차의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출입을 막는 등 ‘과충전 방지 대책’을 추진했다. 일부 선박회사도 최근 전기차 선적을 중단하는 공지글을 게시했다. ‘전기차 포비아’(공포증) 확산으로 발생한 불편은 고스란히 차주들의 몫이 됐다.

12일 충남도에 따르면 최근 인천 지하주차장, 금산 공영주차타워 등에서 연이어 전기차 관련 화재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도내 사고 예방을 위한 전기차 충전시설 안전 점검에 나선다. 점검 대상은 도내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및 주차타워에 설치·운영 중인 전기차 충전시설 2862기다.

주요 점검 내용은 ▲지하주차장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 ▲대피시설·전기실 등 위험 요소 이격거리 ▲안전시설 설치 기준 등이다. 도는 이달 말까지 점검한 후 관계기관 및 전문가 회의를 통해 개선·보완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문제는 90% 이하 ‘충전 제한 기준’이다. 도는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개정’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90% 이하 충전 제한 기준을 마련하고 지상화 권고를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과도한 충전된 차량 출입을 제한함으로써 전기차 화재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공동주택 관리규약’은 다수가 거주하는 공동주택의 주거생활의 질서유지 및 입주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공동주택 입주자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기본규칙이다.

시·도지사는 ‘공동주택 관리규약’의 표준이 되는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마련하고 있다. 준칙이 개정 및 배포되면 입주자대표회의는 해당 준칙을 참고하여 자기 단지에 알맞도록 ‘공동주택 관리규약’을 정하게 된다.

앞서 서울시도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개정’을 통해 지하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에 한해 출입하도록 권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는 현시점에서 충전제한이 전기차 화재 예방에 유의미한 방법이라 보고 있다. 시는 9월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할 계획이다. 

 90%라는 기준을 두고 전기차 차주들의 불만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배터리 화재 문제는 차량 및 배터리 제조사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90%라는 기준을 세워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한 전기차 운전자는 “이번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주들에 대한 마녀사냥이 격화되고 있다”며 “애당초 전기차를 제작할 당시 내구성능·안전마진(전기차 제조사에서 출고 때부터 배터리 내구성능 향상 등을 위해 충전 일부 구간을 남겨두는 구간)을 두고 만들었을 텐데, 이제 와서 90%라는 충전 기준을 설정해 전기차주에게 모든 피해를 떠넘기는 행태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전기차 운전자는 “90% 제한 후 똑같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다음은 80%로 제한할 셈이냐”며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내연차의 공인연비(연료 1L로 주행 가능한 거리)와 같은 개념인데 내연차도 화재가 발생할 경우 기름 80%만 넣으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충전율을 제한하는 것이 전기차 화재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일부 논란이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화재 예방 및 내구성능·안전 증가에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과도한 충전 방지를 시작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하여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선적 일시중단과 관련한 에이치해운의 공지사항 [사진 에이치해운 홈페이지 캡처]
전기차 옥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선박회사들은 최근 전기차 선적을 중단하는 공지글을 올렸다. 해양수산부에서 권고한 ‘전기차량 해상운송 안전대책’에 의거해 전기차 선적을 제한한 것이다.

울진 후포항~울릉 사동항을 운항하는 에이치해운 울릉썬플라워크루즈호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전기차 선적 일시 중단한다. 에이치해운에 따르면 전기차는 선적이 되지 않지만, 하이브리드, 수소 차량은 선적이 가능하다.

육지~제주도를 운항하는 일부 선박회사의 경우 차량 배터리 충전율 50% 초과 시 선적을 금지한다. 또, 전기차량은 출항 1시간 30분 전 반드시 도착해야 한다. 이후 차량 안정화 및 이상 징후 점검 후 선적이 이뤄진다. 차량 외관상 충돌 흔적이 있을 경우 선적이 제한될 수 있다.

해수부 권고에 따르면 전기차 적재시 차량 배터리 충전율이 50%를 초과할 경우 선적이 금지된다. 또 여객선으로 전기차를 운송하는 도중에는 배터리 충전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밖에도 사고 이력이 있는 전기차는 선적을 제한하도록 하고, 내년까지 연안 여객선들에 전용 소화 장비를 단계적으로 보급한다. 위 내용 모두 권고 사안이다. 사실상 강제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선박회사들은 해수부의 권고를 따르는 실정이다. 

이번 전기차 선적 제한과 관련 에이치해운은 공지를 통해 “최근 전기차 화재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어 폐사에서는 전기차 화재 매뉴얼 및 소화 설비를 갖추고 있으나 화재 발생 시 완벽한 진압 장비가 존재치 않아 완벽한 진압장비를 갖출 때 까지 전기차 선적을 일시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해 불에 타 버린 차량들 [사진 연합뉴스]
매물 쌓이는 전기차...대책 강구하는 민·관

연이은 전기차 철퇴에 중고 매물은 급증하는 추세다. 12일 직영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K Car)에 따르면 지난 1일 이후 일주일 동안 ‘내차 팔기 홈 서비스’에 등록된 전기차 접수량은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 기간 대비 184% 늘었다.

엔카닷컴의 ‘2024년 8월 자동차 시세’에 따르면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의 중고차 가격은 전월 대비 각각 1.97%, 1.11% 하락했다. 테슬라 모델3와 모델Y은 각각 2.61%, 3.36%의 하락세를 띠었다. 매물로 나온 모델Y의 경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산 모델이다 보니 가격이 하락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기차가 중고시장에 대거 쌓이자 완성차 업계에서도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9일 국내 자동차 기업 중 처음으로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같은 그룹인 기아차도 조만간 유사한 방식으로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정부도 이날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등이 모여 전기차 화재 관련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번 회의는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지차 포비아’가 확산되자 이에 관련된 대책 마련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화재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과충전을 막을 방안이 논의됐다. 단기적으로는 충전율 및 충전시간 제한, 중장기적으로는 과충전을 방지할 장치 부착 확대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화재 관련 세부 대책은 다음달 초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탈탄소 흐름에 따라 전기차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핵심 과제”라며 “전기차 화재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재발을 막기 위해 민, 관 모두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임은 맞지만 이번 대형 화재로 인한 전기차 포비아로 전기차 수요 둔화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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