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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셀러 등극한 ‘재야의 명저’…‘세이노의 가르침’ 펴낸 출판사도 덩달아 주목

침체한 서점가에 모처럼 분 열풍 ‘세이노 신드롬’…100만 부 돌파
수익 노리지 않은 접근이 저자 마음 돌린 비결…해외 수익도 기부
“세이노의 가르침 펴내며 배운 점 많아…다양한 목소리 전할 것”

서울 강남에 위치한 펜슬프리즘 사무실에 배치된 책 ‘세이노의 가르침’과 자전거 모형. [사진 정두용 기자] [사진 정두용 기자]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책 ‘세이노의 가르침’이 국내 출판 시장을 강타했다. 도서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는 교보문고·예스24 모두에서 ‘2023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3월 2일 출간됐음에도 인기는 올해 상반기까지도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7월 61쇄 누적 101만5000부까지 선주문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책 ‘세이노의 가르침’ 앞에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밀리언셀러’가 자리한다. 출간된 지 17개월도 안 돼 이룬 성과다. 출판업계에선 ‘침체한 시장에 모처럼 분 열풍’이란 말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는 ‘세이노’(Say No·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라)란 필명을 쓰는 1955년생 자산가다. 출판사는 출간 전 조선일보와 함께 저자의 순자산이 최소 1000억 원대임을 검증했다.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사기로 재산을 날린 뒤 돌아가시면서 친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지독한 생활고가 이어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고 한다. 막대한 자산은 이런 과정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저자는 책 ‘세이노의 가르침’을 통해 자산을 쌓는 과정에서 깨달은 바를 직설적이면서 강한 어조로 전달한다. 밀리언셀러 등극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며 얻은 저자의 삶에 대한 지혜’에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였다는 점을 방증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조금의 수익도 올리지 않았다. 심지어 ‘세이노의 가르침’ 전자책을 다양한 채널에서 무상으로 내려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도 100만 부 돌파란 성과를 써냈다.

‘세이노의 가르침’ 해외에서도 출간

책의 인기가 지속되면서 출판사를 향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는 양상이다. 대외에 좀처럼 나서지를 않는 익명의 작가가 쓴 책이 밀리언셀러에 등극하자 ‘출판 과정’ 역시 재조명받고 있다.

저자가 대외에 본인의 생각을 글로 전하기 시작한 건 2000년부터다. 거래 증권사에서 적지 않은 자금을 운용하던 시기, 다양한 언론사와 연을 맺었던 게 계기가 됐다. ‘이코노미스트’를 포함해 다수의 매체는 세이노의 생각을 연재했고, 그의 글을 기다리는 팬덤이 생겨났다. 팬들은 그의 글을 정리해 ‘공동 제본집’ 파일을 만들어 무상으로 배포했다. 이 제본집에는 ‘세이노의 가르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를 저마다 인쇄해 읽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재야의 명저’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식 출간본은 세이노가 대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꼬박 22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세이노가 책 서문에 적었듯, 그는 50개가 넘는 출판사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대부분 그의 글을 통해 수익을 올리기 위한 접근이었기 때문이다. 세이노는 “가르치는 데 돈을 받지 않는 게 철칙”이란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펜슬프리즘은 50개가 넘는 출판사 중 수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세이노에게 출간을 제안한 유일한 곳이었다고 한다. 차보현 펜슬프리즘 대표는 ‘제본에 필요한 가격 수준으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뜻을 담아 세이노에게 단가분석표를 보냈다. 736쪽 분량의 책임에도 7200원이란 가격표가 붙은 이유다. 펜슬프리즘은 연필(웹소설)·데이원(일반 서적)·어느날갑자기(소설)란 브랜드를 운영하는 출판사다. 책 ‘세이노의 가르침’은 데이원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정식 출간된 책은 제본서와 ▲세이노가 직접 편집 과정에 참여했다는 점 ▲과거에 쓴 글을 주로 엮긴 했지만 저자의 최근 생각이 덧붙었다는 점 ▲전반적인 구성과 글의 배치 등이 다르다. 글을 엮고 새로 쓰는 편집에만 2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재야의 명저’는 100만 부가 팔린 ‘명저’가 됐다. 책 ‘세이노의 가르침’은 국내 인기에 힘입어 현재 대만·러시아·베트남·프랑스 출판사를 통한 현지 출간이 확정된 상태다. 저자와 데이원은 해외 출간에 따른 수익 모두를 기부하기로 했다.
책 ‘세이노의 가르침’ 밀리언 셀러 기념 에디션 표지. [제공 데이원]

제2의 세이노 발굴 중

차 대표는 “초판 1쇄 3000부를 기준으로 산정했을 때 한 권을 팔면 100원이 남거나, 100원이 손해가 될 수도 있던 상황”이라고 출간 당시를 회상했다. ‘세이노의 생각’이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길 바랐던 마음으로 손해를 감수하겠단 결단이 밀리언셀러를 만든 셈이다.

펜슬프리즘과 세이노의 만남은 ‘알음알음 유명했던’ 저자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인사에 등극하는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차 대표는 “세이노와 출간을 위해 함께 작업했던 시간은 물론 출간 이후의 모든 과정을 통해 회사와 내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책 ‘세이노의 가르침’을 통해 직접적인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 경험을 통해 회사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설명이다. ‘밀리언셀러를 만든 브랜드’란 무형적 가치 역시 고스란히 펜슬프리즘의 자산이 됐다.

실제로 펜슬프리즘은 책 ‘세이노의 가르침’ 출간 후 사업 영역을 기존 웹소설·일반 서적에서 최근 일반 소설로 확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2023년 11월 ‘어느날갑자기’란 소설 전문 임프린트(Imprint·출판사 내 독립된 브랜드)를 출범하고, 영미권 스릴러 소설 ‘오프라인’과 ‘디앱’을 펴냈다. 비행기 승무원 출신 작가 T. J. 뉴먼의 소설 ‘폴링’에 이어 ‘지구에 떨어진 남자’와 ‘모킹버드’로 유명한 고(故) 월터 테비스의 전집을 국내에 소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펜슬프리즘이 최근 신아현 작가를 주목했다. 25년째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일하며 느낀 바를 에세이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로 잔잔하게 풀어냈다. 저자는 사회복지 공무원의 공통된 호(號)가 “이년아, 저년아”에서 유래한 ‘연아’라고 말한다. 데이원이 발굴한 신 작가의 첫 에세이는 오는 21일 출간된다. 펜슬프리즘은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되는 제1회 북앤콘텐츠페어에 참가, 신 작가와의 출간 기념 북토크 행사와 사인회를 마련했다.

차 대표는 “세이노의 가르침을 펴내며 ‘치열하게 사는 삶의 가치’를 배웠다”며 “국내 신인 작가부터 해외 유명 저자까지 국내 출판 시장에 ‘보다 나은 글’을 소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아현 작가의 에세이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 표지. [제공 데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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