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네되’ 삼 작가가 본 ‘네이버웹툰 생태계’…“숨 한번 돌릴 만화 그리고파” [이코노 인터뷰]
네이버웹툰 ‘등용문’ 거쳐 정식 데뷔…연재 4년간 ‘인기작’ 유지
“해외 수익, 국내 1/3 정도…월요일 밤 기다린단 독자 말 설레”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대한민국은 웹툰 종주국이다. 한국은 출판물을 통해 가로로 읽던 만화를 2000년대 초반 세로형으로 바꿔 온라인에서 유통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엔 ‘웹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네이버웹툰은 이 시장 자체를 만든 기업이란 평가를 받는다. 2005년 12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뒤 웹툰 특유의 확장성에 기반해 사업 외연을 꾸준히 세계로 넓혀 왔다. 회사는 2014년부터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했고, 현재는 이 분야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웹툰이란 단어도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진출 전략에 따라 세계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네이버웹툰이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나스닥 상장에 상장한 곳은 네이버 자회사이자, 네이버웹툰 모회사인 미국 법인 웹툰엔터테인먼트(WEBTOON Entertainment)다. 네이버가 웹툰이란 서비스를 내놓은 지 약 20년 만의 일이다. 네이버웹툰은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20년간 창작자·독자와 함께 만든 ‘웹툰 생태계’의 저력을 강조했다. 회사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창작자에게 지급한 금액은 28억 달러(약 3조8900억원) 이상이다. 지난해 말 기준 창작자 전체의 연간 평균 수익은 4만8000 달러(약 6667만원)이고, 상위 100명의 연간 평균치는 100만 달러(약 14억원)로 집계됐다. 이를 통해 수급된 양질의 콘텐츠는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억7000만명이란 성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85%가 해외에서 접속한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 네이버웹툰 글로벌 플랫폼에서 활약하는 창작자 수는 2400만명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진출한 곳은 150개국에 달한다. 네이버웹툰은 늘 성장 비결로 창작자와 함께하는 ‘상생’을 꼽아왔다.
이 상생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래서 네이버웹툰의 미국 상장에 맞춰 웹툰 생태계 확장과 함께 성장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삼 작가는 네이버웹툰의 대표적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최강자전에서 16강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2018년(청희록·16강)과 2019년(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16강) 최강자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정식 연재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세계를 좋아하는 팬덤이 생겨났다. 네이버웹툰 아마추어 연재 플랫폼 ‘도전만화’에서 2019년 8월 웹툰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이하 하네되)를 올리기 시작했다. 최강자전을 통해 팬덤이 형성됐던 터라 ‘하네되’는 6개월 만에 정식 연재작에 이름을 올렸다.
‘하네되’는 현재 영어·일본어·중국어·태국어·인도네시아어·스페인어·프랑스어·독일어로 번역돼 세계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삼 작가는 지난 6월 태국 정부 주최한 행사에 네이버웹툰과 함께 참여, 사인회를 진행하는 등 현지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했다.
‘하네되’는 인기작의 상징인 단행본 출간은 물론 스토리형 게임으로도 재탄생했다. ‘하네되’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획상품(MD)도 제작됐다. “중학교 때부터 만화를 그려왔다”는 삼 작가는 네이버웹툰 생태계에서 데뷔란 꿈을 이루고 회사와 함께 성장했다. 스스로를 “3세대 작가”라고 정의한 그는 “웹툰이 시장에 등장한 1세대부터 독자로서 함께했다”고 말한다. 삼 작가의 성장 과정을 통해 ‘상생’을 강조하는 네이버웹툰 생태계의 단면을 엿봤다. 다음은 삼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
Q. ‘네이버웹툰 생태계’로 불리는 환경에서 데뷔하고 4년째 작품을 연재 중이다. 그간의 시간은 어떠했나.
A. 치열했다. 수많은 단상을 하나의 단어로 정리하자면 그렇다. 최강자전 때는 더 높은 순위에 들기 위해, 도전만화 연재 과정에선 담당자의 눈에 들기 위해, 연재 중에는 독자를 만족시킬 만한 만화를 그리기 위해 매일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연재를 시작한 뒤 4년간 한 주도 느슨하게 만화를 대한 적 없다는 자부심이 있다.
Q. 스스로 몇 세대 웹툰 작가라고 생각하나.
A. 따지자면 3세대 정도 아닐까 한다. 현재 웹툰 콘텐츠가 4세대라고 한다면, 웹툰이 시장에 등장한 1세대부터 독자로서 함께했다. 좋은 만화를 읽고 감동하곤 했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 미술부로 활동하고, 고등학교에서도 만화를 그렸던 이유다. ‘치즈 인 더 트랩’의 순끼 작가님과 ‘공부하기 좋은 날’의 황준호 작가님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어린 시절 우상과 같은 시대에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건 참 뜻깊은 일이다.
Q. 최근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네이버웹툰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A. 웹툰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도약’을 본 것 같았다. 더 많은 독자와 닿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 같아 기쁜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 시장에서 웹툰을 어떻게 확장할지 많은 분이 골몰한 게 느껴져 감격스럽기도 했다. 스스로 ‘해이할 수 없다’ ‘더 넓은 시장으로 확장할, 확고한 독창성을 가진 IP를 구축해야겠다’고 결심했다.
Q. 시장이 커진다는 건 작품 수의 확대를 의미하고, 이는 때로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A. 웹툰 시장은 좋은 작품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다. 하나의 IP가 백 작품보다 나은 경쟁력을 갖출 수도 있다. 다만 최근에는 ‘반짝인기’를 기대하는 작품이 쏟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웹툰제작사(CP)에서도 투자한 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양식에 대한 지루함은 독자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상업성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상업성은 생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다만 말하고 싶은 건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성을 함께 녹여내야 한다’는 점이다. 소위 ‘덕질’할 맛 나는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길 바란다.
Q. 네이버웹툰의 해외 진출과 시장 확대에 따라 독자층도 넓어지고 있다. 인기를 실감하나.
A. 사실 웹툰 작가는 인기를 실감할 일이 잘 없다. 유명 작가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컴퓨터를 끄는 순간 고요해지곤 한다. 태국 행사도 그래서 걱정이 많았다. 사인회를 열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찾아주셨다. 태국 작가님도 ‘팬이다’며 단행본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2년 전 한국 사인회에 찾아오셨던 독자를 뵙기도 했다. 진심 어린 마음에 애정을 느끼지 않을 작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내주신 사랑에 감사했고, 웹툰 파급력을 느꼈으며 더 많은 나라에 내 만화가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작품의 해외 진출 전후 수익 변화는?
A. 작가마다 다르지만 내 경우에는 국내 수익의 3분의 1 정도가 해외에서 추가로 발생한다. 특히 일본 시장에서 매출 상승세를 직접 느끼고 있다. 국내와 해외는 독자의 양상이 다르다. 해외 수익은 ‘큰 폭의 하향’이 적다고 느낀다. 안정적인 매출 덕분에 인건비 걱정을 덜었다.(웃음)
Q. ‘하네되’를 기반으로 다양한 2차 창작물이 만들어졌다. 내가 그려낸 세계(IP)가 화면을 뚫고 나오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A. 네이버웹툰의 협조부터 말하고 싶다. 네이버웹툰과 독점·비독점을 선택해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네이버웹툰이 담당해 줬으면 하는 역할을 결정하면 그에 따른 수익배분이 이뤄지는 식이다. 나는 연재에만 집중하고 싶어 독점 계약을 선택했다. 2차 사업의 경우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특히 네이버웹툰은 새로운 MD를 출시할 때 작가의 의사를 존중한다. 노동을 부과하거나 타사와 협의가 필요한 경우에는 계약 조건을 수정해 작가와 네이버웹툰의 수익배분율을 높이기도 한다. 연재에 열중해야 하는 작가로서 무척 감사한 일이다. 세상에 나온 IP 사업을 즐겨주는 독자들을 볼 때에 많은 보람을 느낀다. 내 만화가 누군가의 일상에 새로운 재미가 된다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Q. 건강한 웹툰 생태계는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A. 이상향은 있다. 작가가 건강한 형태로 양질의 콘텐츠를 세상에 내는 것. 그리고 그런 작품끼리 ‘재미’로 경쟁하는 걸 바란다. 어쩌면 작가 입장에서 바라보는 편협한 관점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가라면 역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건강하게 연재할 수 있는 회차는 얼마일지, 어떤 방식으로 복귀해야 재연재에 타격이 없을지, 장기적인 연재법은 무엇일지 많은 고안을 해보고 있다.
Q. ‘하네되’를 보면 ‘힘을 주는 컷‘과 ‘전개를 위한 컷’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A. CP사와 구조는 다르지만, 작품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분들과 함께 작업하기에 비교적 높은 퀄리티로 연재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웹툰 콘텐츠의 퀄리티가 올라가면서 독자의 안목 또한 높아졌다. 퀄리티가 높은 컷은 시선을 잡아두는 힘이 있다. 그러나 웹툰은 화려한 이미지에 피로함을 느끼는 심정까지 고려해야 한다. 소모하는 집중력에 반해 내용의 중요도가 낮다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정도를 조절하는’ 연출의 영역이 중요한 이유다. ‘좋은 그림’이 아니라 ‘재미있는 만화’를 그린다고 생각하면 쉽다.
Q. 이야기를 짜는 방식과 작화에서 신경을 쓰는 지점이 궁금하다.
A. 판타지 장르에는 장벽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꿈이나 환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작품에 반영했다. 내 또래라면 어릴 적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출판만화를 한 번쯤은 읽었을 터라 익숙하리라고 생각했다. 스토리를 짤 때도 비슷하다. 비록 다른 세계일지언정 읽는 이가 공감할 만한 사건을 구상하려 한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 반응이 있다면?
A. 연재를 시작한 지 4년이 넘었다. 이제 ‘하네되’는 장편이 됐다. 요즘 웹툰은 더욱 ‘스낵 컬처’(과자를 먹듯 5~15분의 짧은 시간에 소비되는 문화 콘텐츠)에 가깝게 변하고 있다. 내용이 긴 만화에는 필연적으로 위험(리스크)이 따른다. 이탈하기 쉽지만, 다시 정을 붙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1화부터 보고 있어요’ ‘매주 월요일 밤만 기다려요’란 말들이 마음에 남아 있다.
Q.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 웹툰 작가 지망생이나 후배 작가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A. 작품의 세계가 확실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하네되’ 이후의 작품에서도 나만의 색을 보여줄 생각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지망생분들께는 ‘첫 작품을 만들기 전에 나의 색은 무엇일지 탐구해 보는 시간’을 권한다.
Q.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여러분의 일상 속 작은 공간에 웹툰을 두어 주셔서 감사하다. 일과 친구들, 혹은 자기 자신에게 치여 스트레스 받을 일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런 때에 잠깐 마음을 다른 세상으로 옮겨 숨 한번 돌릴 만화를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 살고 있다. 앞으로도 소소한 위안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 글을 읽은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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