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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서 적으로…그랩 vs 고젝의 승자는[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치열한 경쟁…수조원의 투자금 허공으로
실망한 투자사들 두 기업 합병 논의까지

오토바이 택배 배송 및 호출 서비스인 고젝 운전자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인도에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김상수 리겔캐피탈 상무]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수 km를 전진하는데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이 사라져 갔다. 어떤 전투에서는 연합군과 독일군이 합쳐 백만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얻은 땅은 불과 10여 km에 불과했다. 

그랩(Grab)과 고젝(Gojek)은 승차공유 서비스를 바탕으로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슈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진화했지만 서로가 경쟁하느라 수조원의 투자금을 날려버렸다. 

그랩과 고젝의 설립자인 앤서니 탄(Anthony Tan)과 나디엠 마카림(Nadiem Makarim)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친구 사이였다. 학교에서 서로가 사업의 아이디어를 공유했고 우버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각자의 나라에서 사업을 시작하되 마카림은 인도네시아에 집중하고 앤서니는 인도네시아가 아닌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으로 서로가 약속했다고 한다.  

마카림은 2010년 인도네시아에서 오토바이가 생활의 수단임을 감안하여 오토바이를 부르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앤서니는 말레이시아에서 2012년 택시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론칭했다. 그 이후 두 회사는 현재의 승차공유 서비스로 나아가게 된다.

그랩은 2013년 싱가포르·필리핀·태국으로 확장했고 2014년 베트남과 서로의 약속을 깨고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이때부터 두 회사의 경쟁은 시작됐고 두 설립자는 서로가 말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고젝은 우버가 동남아시아에서 물러난 2018년에 그랩의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 진출했다. 이후 태국·베트남·필리핀으로 확장했다. 동남아시아 1위 스타트업이 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승차공유 서비스로 시작해 슈퍼앱으로 진화 

두 회사는 화려한 투자사들을 자랑하고 있다. 그랩은 소프트뱅크·마이크로소프트·디디충칭· 도요타 등으로부터 총 104억 달러(약 14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고젝은 구글·테마섹· 텐센트·KKR 등으로부터 총 55억 달러(약 7조50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글로벌 서비스를 하는 우버가 상장(IPO) 이전 총 132억 달러(약18조 원)를 투자받은 것을 감안할 때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그랩과 고젝은 나란히 음식 및 생활용품 배달부터 결제 등의 금융 서비스를 한 개의 앱에서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슈퍼앱으로 진화하게 된다. 중국에서는 메신저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위챗이 슈퍼앱이 되었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엄청난 사용자를 바탕으로 한 승차공유 서비스가 슈퍼앱이 된 것이다. 

두 회사는 투자자의 돈으로 서비스 개발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1위 사업자가 되기 위해 마케팅 및 프로모션으로 엄청난 돈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돈을 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전 세계 스타트업 시장에 팽배했던 논리가 한몫했다. 

2000년 벤처 버블 붕괴, 201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플랫폼 서비스의 경우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소위 1등 사업자만 살아남게 됐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돈으로 경쟁자를 몰아낸 후 가격과 수수료율(그랩과 고젝은 드라이버로부터 현재 약 25~30%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을 올리고 마케팅 및 프로모션 비용을 줄여 마이너스의 현금흐름을 플러스로 만드는 것이다. 

한 승객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수디르만 기차역에서 그랩 표지판 옆에서 그랩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그랩의 고젝 인수설까지 나와 

하지만 이러한 공식은 현재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우버가 미국에서 눈을 돌리고 글로벌로 나아갈 때 리프트라는 경쟁자가 나타났던 이유가 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쉽고 어느 정도의 투자금으로 시장의 진입이 가능한 특성을 바탕으로 경쟁자를 몰아내면 또 다른 경쟁자가 나타난다.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그랩과 고젝 이외에 한 국가당 최소 4개의 승차공유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 

2018년 그랩이 우버를 몰아낸 후 요금을 엄청나게 높였는데 너무 비싸진 요금으로 인해 사람들이 다시 택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고젝이 싱가포르에 진출했을 때 다른 승차공유 서비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랩과 고젝이 다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시장 규모는 더 이상 많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의 고객을 가져오기 위해 돈을 쓰고 있다. 즉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의미 없는 소모전과 비슷한 현상이 몇 년간 지속되고 있다. 

보다 못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의 투자가 힘들다는 통보와 함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주도로 2020년 양 사의 합병이 논의됐지만 결렬됐다. 그랩은 2021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합병해 나스닥에 상장했고 고젝은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회사인 토코피디아와 합병을 통해 고투(GoTo) 그룹을 출범시킨 후 2022년 인도네시아 증권시장에 상장했다. 2024년 틱톡이 인도네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토코피디아 인수 후 그랩도 고젝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시장에 떠돌고 있다. 

그랩과 고젝은 이머징 마켓에서 어떤 서비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생활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우버의 경우 고젝을 보고 오토바이 서비스를 시작했고 신용카드로만 결제가 되던 시스템을 현금도 받을 수 있도록 바꾸었다. 투자자들도 두 회사의 스토리를 통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신흥국 투자의 경우 성장도 중요하지만 양질의 현금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가 됐다.

김상수 리겔캐피탈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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