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게임보다 더 위험?"...호주 16세 이하 SNS 금지법, 어떨까 [한세희 테크&라이프]
법안 발의에 반발하는 SNS 기업들
강제적 금지가 '현실적 해법이냐'는 논란도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옥스포드 사전을 발간하는 영국 옥스포드대학 출판부는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한다. 최근 발표된 2024년의 단어는 ‘뇌썩음(brain rot)’이다.
뇌썩음이란 사소하거나 하찮은 것들을 과잉 소비하느라 정신적, 지적 상태가 퇴보하는 것을 말한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현대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끝없이 스크롤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엄지로 쇼츠나 릴스 동영상을 하염없이 넘기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다.
소셜미디어 피드나 쇼츠 영상에 짧고 자극적으로 전달되는 지식과 정보, 오락이 깊이 생각하거나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우려도 크다. 사용자 입맛에 맞춘 추천 알고리즘은 사람들을 편향적 정보, 또는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콘텐츠로 가득 찬 필터 버블로 이끈다. 지식과 정보는 맥락 없이 파편화되고, 확증 편향은 확대 재생산된다.
알고리즘이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
특히 이러한 디지털 환경이 어린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들은 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인터넷 속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들이고, 이들이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혁신 기술은 새로운 문화와 질서를 만들어 내리라는 기대와, 기술에 인간이 잠식당하리란 불안을 함께 먹고 자란다.
하지만 현재로선 자녀들이 스마트폰만 붙들고 모든 시간을 보내는 것에 답답함과 불안을 느끼는 부모가 많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청소년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최근 서구 사회에선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넘쳐나는 인플루언서를 보며 자신과 비교하고, 보정 필터에 의해 왜곡된 미의 기준을 받아들이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시청 행태에 따라 관심사를 파악하는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는 우울증이나 섭식 장애, 자살 충동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관련 영상을 계속 추천해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2021년 페이스북 직원 프랜시스 하우겐이 “페이스북은 자사 추천 알고리즘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햐다는 내부 연구 결과를 확인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잘못된 소셜 미디어 사용지 청소년 발달과 정신 건강에 장기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답답한 부모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법이 최근 호주에서 제정되었다. 11월 말, 호주 의회가 16세 이하 청소년들의 소셜 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호주, “16세 이하 소셜 미디어 금지” 초강수
이 법이 발효되는 1년 후부터 16세 이하 호주 청소년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틱톡, 스냅챗, X 등 소셜 미디어 계정을 만들 수 없게 된다. 이미 계정을 가진 청소년도 소셜 미디어를 쓸 수 없다.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나이 인증 시스템을 갖춰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최대 5000만 호주달러(약 460억원)의 벌금을 문다.
사람들은 환영했다. 여론조사 회사 유고브 조사에 따르면, 이 법은 호주에서 77%의 지지를 얻었다. 소셜 미디어 괴롭힘이나 몸캠 사기에 극단적 선택을 한 청소년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만난 수상한 어른에게 살해당한 소녀의 사례 등은 규제에 힘을 보탠다. 비슷한 규제 도입을 추진하는 미국의 여러 주나 영국, 노르웨이 등도 이번 조치를 주목해 볼 것이다.
주요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법이 짧은 시간에 급하게 제정되어 내용이 모호하고, 연령 인증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법은 연령 인증을 의무화하면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국가의 주민 정보 시스템은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또 연령을 속이고 소셜 미디어에 가입하는 청소년이나 부모에 대한 제재 조항은 없다. 통상 대형 플랫폼 기업들은 사용 행태나 온라인 친구 관계 등을 분석해 사용자 연령을 추정하지만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청소년들에게 소셜 미디어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 현실적 해법인지도 논란이다. 도리어 청소년을 관리가 더 어려운 음지의 인터넷으로 보내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연령 인증이 사람들의 온라인 행동을 규제하는 매개가 될 우려도 나온다. 일런 머스크는 이 법이 “호주인 전체의 인터넷 접속을 통제하는 백도어가 될 수 있다”고 X에 올렸다.
이 법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또 다른 이유는 메신저와 유튜브, 온라인 게임은 규제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최근 메신저는 소셜 미디어로 진화했고, 잘못된 정보나 콘텐트, 집단 괴롭힘 등은 메신저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유튜브의 부작용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법이 우려하는 청소년 피해는 왓츠앱이나 유튜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호주는 2011년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규제하는 ‘셧다운제’를 법제화한 한국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금지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급으로 모바일 게임이 인기를 얻고 소셜 미디어나 동영상 서비스 등 다른 즐길 거리가 늘어나며 규제 실효성이 떨어져 결국 보호자가 청소년 게임 이용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게임이용시간선택제로 대체되었다.
알고리즘에 의해 부정적 콘텐트를 계속 노출시킬 우려가 있는 소셜 미디어가 온라인 게임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이 호주 정부의 판단이다. 반면, 디지털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오늘의 문제가 몇 년 후 더 이상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앤터니 알바니즈 호주 총리는 “호주 어린이들이 어린 시절을 갖기 원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와 함께 모든 이의 ‘어린 시절’은 꾸준히 조금씩 변해 왔다. 변화에 맞춰 대응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교육의 핵심이고, 그런 면에서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소셜 미디어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오늘날 시급한 과제이다. 다만, 무조건 금지라는 편리한 방법이 해결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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