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출 규제의 역설]②
마이너스통장도 부익부 빈익빈
현금 부자 잔치 된 청약…해약↑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정부가 가계 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신용대출이 급증하는 풍선 효과가 벌어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나 전세자금대출 한도가 줄어들면서 자금이 필요한 수요자들이 신용대출로 발길을 튼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8월 7일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105조380억원을 기록했다. 7월 말 신용대출 잔액이 103조9687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조693억원 불어난 셈이다. 일주일 동안 주담대 잔액이 5796억원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신용대출 증가 폭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6·27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며 수도권 주택 구입 시 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고 은행의 총대출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압박했다. 이에 은행들은 대출 모집인을 통한 주택·전세대출 접수를 중단하거나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중단하는 등 담보 대출 문턱을 대폭 높였다. 돈줄이 막히자,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신용대출로 몰린 것이다.
문제는 신용이 낮은 사람이나 경제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더 큰 부담을 진다는 것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6월 중 신규 취급한 가계대출(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의 평균 신용 점수는 944.2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신용 점수를 단순 평균한 수치다. 주담대 평균 신용 점수는 945.4점, 신용대출은 941.1점으로 나타났다. 2023년 차주들의 평균 신용 점수는 920점대 수준이었지만, 2년 만에 20점가량 오른 것이다.
특히 신용대출 가운데 마이너스통장 대출은 평균 신용 점수가 962.3점을 기록, 가계대출 유형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신용도가 높은 충성 고객을 중심으로 대출을 제공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대출의 질적 하락과 차주들의 부담 증가다. 담보대출은 부동산이나 예금 등 실물 자산을 담보로 은행이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고 부실 위험이 적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대출 기간도 길어 차주들의 부담이 적고 은행도 안정적으로 돈을 나눠 받는다. 그런데 신용대출은 정반대다. 담보가 없고, 대여 기간도 짧다. 차주들의 소득이나 신용에만 기대 돈을 빌려주다 보니 금리도 높은 편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환 부담이 커지고 여기서 부실이 발생할 경우 은행은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신용 점수별 금리는 점수에 따라 3% 후반대에서 11% 초반대까지 차이가 확인됐다. 지난 6월 취급된 대출을 기준으로 금리 수준을 살펴보면 신용 점수가 가장 높은 1000~951점대 차주의 대출 금리는 3.95~4.22%였다. 반면 신용 점수가 600점 이하인 최저신용자의 대출 금리는 8.58~11.07%로 나타났다. 하지만 평균 신용 점수가 940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용 점수가 900점 이하인 사람의 경우 사실상 관련 대출을 받기도 어렵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총량이 제한된 상황에서 자금이 필요한 사람이 몰리면 (대출) 기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신용도가 높은 차주들이 우선순위에서 앞쪽에 배치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출이 필요한 중·저신용자들은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몰렸다. 케이뱅크·카카오뱅크·토스뱅크의 올해 2분기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이 평균잔액 기준 30%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토스뱅크는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평균잔액 기준)이 35.0%를 기록했고 케이뱅크, 카카오뱅크는 각각 34.4%, 33.1%로 집계됐다.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는 토스뱅크가 50.2%, 카카오뱅크는 49.4%, 케이뱅크는 38.2%를 기록했다.
대출 막히자 청약에 걸었던 기대도 뚝
주택 청약에 희망을 걸었던 서민들도 대출 규제 등 분양 대금 마련이 어려워지자 청약 통장을 포기하고 있다.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는데, 청약 당첨 점수는 높아지고 여기에 대출까지 제한되자 청약을 통한 내 집 마련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청약 통장 가입자 수는 2636만6301명을 기록했다. 6월보다 1만67명 감소했다. 1년 전보다는 약 50만명, 2023년과 비교하면 90만명 가까이 줄어든 수준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7월 민간 아파트 분양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민간 아파트의 1㎡당 평균 분양가는 1375만2879원. 이른바 국민 평형으로 불리는 84㎡(전용면적) 기준 분양가는 11억5000만원에 달한다. 은행에서 최대한도인 6억원을 대출받는다고 가정해도 5억원 이상 현금이 있어야 분양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월급만으로 생활하는 3040 직장인으로서는 현실적으로 모으기 힘든 금액이다.
일각에서는 대출 규제로 청약이 ‘현금 부자’를 위한 잔치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8월 25일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청약 접수를 시작한 잠실 르엘의의 경우 전용면적 45~74㎡ 216가구가 일반분양 물량으로 풀렸다. 분양가는 3.3㎡당 6104만원, 전용 74㎡ 기준 분양가는 약 18억원 수준이다. 인근 잠실래미안아이파크 전용 74㎡ 분양권이 지난 5월 28억82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10억원가량 저렴한 수준이지만, 내년 1월 입주하는 후분양 아파트인 만큼 현금 12억원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청약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원리금 상환이 가능한 수준의 소득이 있더라도 대출이 제한돼 있어 현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 않다면 인기 단지 청약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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