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소성과 탐욕의 상징인 컬트 와인
술 그 이상의 가치...투자 자산으로

와인 세계 판도 뒤흔든 컬트 와인
이야기의 무대는 태양이 작열하는 언덕,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다. 1990년대 이곳에서 와인 세계의 판도를 뒤흔든 조용한 컬트 와인의 혁명이 시작됐다. 그 중심에는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할란 에스테이트’(Harlan Estate), ‘브라이언트 패밀리 빈야드’(Bryant Family Vineyards) 같은 이름이 있었다.
이들은 유럽의 유서 깊은 와인들과는 다른 문법으로 새로운 신화를 썼다. 여기에 매 빈티지마다 이름과 예술적인 레이블을 바꾸는 ‘시네 콰 논’(Sine Qua Non)의 이단아적 행보와 영화 ‘오즈의 마법사’ 제작자의 포도밭에서 탄생한 ‘스케어크로우’(Scarecrow)의 낭만적인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며 컬트 와인의 세계는 더욱 풍성해졌다.
컬트 와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컬트(Cult)란 특정한 인물이나 물건에 대한 광적인 숭배나 흠모를 뜻하는 라틴어 쿨투스(Cultus)에서 유래돼 문자 그대로 ‘숭배’(Cult)의 대상이 되는 와인을 지칭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연간 500케이스(약 6000병) 내외의 극소량만 생산돼 아무나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와인 애호가들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존재다. 이 현상은 1990년대 미국 나파 밸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들의 성공 신화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첫째는 나파 밸리가 가진 최상의 떼루아를 바탕으로 완벽한 와인을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의 집념이다. 특히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에 최적화된 오크빌(Oakville)이나 프리처드 힐(Pritchard Hill) 같은 명당에 자리 잡은 이들은 포도나무 한 그루당 생산량을 극단적으로 줄여 포도의 잠재력을 남김없이 끌어낸다.
여기에 빌 할란(Bill Harlan)처럼 ‘캘리포니아의 퍼스트 그로스’(First Growth)를 만들겠다는 장기 비전을 가진 설립자의 양조 철학 그리고 하이디 바렛(Heidi Barrett)과 같은 스타 와인메이커의 손길이 더해져 한 병의 와인은 비로소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 결정적으로 로버트 파커와 제임스 서클링 같은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들의 100점 만점에 가까운 평가는 이들을 세상에 없는 존재로 각인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희소성을 극대화하는 그들만의 유통 방식은 컬트 와인의 신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이 와인들은 구하기가 무척 어렵다. 오직 생산자가 직접 관리하는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무한정 기다리는 자에게만 구매 자격이 주어진다. 스크리밍 이글이나 할란 에스테이트의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마치 비밀스러운 클럽의 회원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과 같다. 수년, 혹은 십수 년의 기다림 끝에 할당(Allocation)을 통보받는 순간의 희열은 와인의 맛을 보기도 전에 이미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단순한 판매 전략을 넘어 소유욕을 자극하고 와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고도의 심리적 장치다.

자연스럽게 이 미국의 컬트 와인은 마시는 즐거움을 넘어 강력한 투자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경매 시장에서 이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최고가 기록이 경신된다.
일례로 지난 2000년 나파 밸리의 한 자선 경매에서는 스크리밍 이글 더블 매그넘(6리터) 한 병이 50만달러(약 7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이제 이 와인들은 월스트리트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액체 자산’이 됐다.
물론 이처럼 과도한 희소성 추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컬트 와인의 존재는 수많은 와인 생산자들에게 품질에 대한 영감을 주고 포도 재배와 양조 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와인을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위화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가격 거품과 투기 심리를 조장한다고 지적받는다. 와인이 가진 본연의 가치, 즉 음식과 함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일상의 기쁨을 나누는 ‘소통의 미학’이 설자리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한 병의 와인이 담고 있는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포도밭의 토양과 기후, 와인메이커의 땀과 철학이 응축된 액체 그 자체인가 아니면 그것을 둘러싼 희소성의 아우라와 탐욕이 만들어낸 거대한 신기루일까.
컬트 와인은 우리에게 와인의 본질을 되묻게 하는 흥미롭고도 도발적인 존재다. 그 눈부신 신화 뒤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와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깊이 있는 인문학적 성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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