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새 딜보다 충돌 관리”… 경주 APEC서 새 외교 실험 펼칠 美中 [특파원 리포트]
- 트럼프 “환상적 딜” 자신감 속에도
미·중 모두 새 합의보다 ‘리스크 완화’에 초점
경주 회담, 충돌보다 관리의 외교 시험무대
[이데일리 김상윤 뉴욕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주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마주 앉는다. 2019년 오사카 회담 이후 6년 만의 재회다. 그러나 이번 만남의 무게중심은 ‘새로운 무역협상’이 아니라 ‘관계의 안정화’에 있다. 양국이 더 이상 '합의'를 말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미·중은 싸움을 멈추려는 게 아니라, 싸우는 법을 다시 짜고 있다.
트럼프 낙관론 펼쳤지만… ‘통제 가능한 경쟁’ 원하는 미·중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환상적인 거래(fantastic deal)를 맺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백악관 내부의 계산은 훨씬 냉정하다. 미국은 대규모 합의나 관세 철회보다, 공급망 불안 완화와 시장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 역시 내수 둔화와 외자 유출 압박 속에서 정면충돌보다 관리 가능한 긴장 상태를 선호한다.
이른바 ‘새 딜’의 가능성은 낮다. 대신 협상의 전선은 희토류·반도체·대두·펜타닐 등 전략 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자, 미국은 100%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며 맞섰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칩 리 연구원은 “희토류 수출 변동은 중국이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지렛대를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응책을 마련하면서도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려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경주 회담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된다”며 “무역과 투자 구조 전반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새로운 수출 통제는 면밀히 평가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의 발언은 국내 정치용 퍼포먼스에 가깝다”는 냉소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의 낙관 메시지는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협상 준비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차관보는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예측 불가능성을 무기로 하지만, 중국은 이미 그 패턴을 알고 있다”며 “결과보다 연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조적 경쟁이지만 관리 가능”… 러드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킹”
이 국면을 가장 정확히 짚은 인물이 케빈 러드 주미 호주대사다. 워싱턴 외교가의 대표적 중국통인 그는 최근 국제금융협회(IIF) 연례회의에서 “미·중 경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현실이지만, 여전히 관리 가능한 경쟁(Managed Competition)”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국이 완전한 탈동조(decoupling)로 가는 것은 아니며, 기술·안보 영역에서 위험 축소(de-risking)가 본격화됐다”고 덧붙였다.
러드의 진단은 이번 회담의 성격을 압축한다. 싸움을 멈추지는 않되, 폭발을 피하는 전략이다. 트럼프는 협상가로서의 복귀를, 시진핑은 체제 안정과 신뢰 회복을 노린다. 특히 시진핑은 최근 국유기업 중심의 통제 경제를 강화하면서도 과잉생산과 내수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중국은 경기 둔화를 상쇄하기 위해 수출 드라이브에 의존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태양광·배터리·전기차 분야의 과잉공급이 새로운 갈등을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 구조의 경직성이 높아질수록 시진핑에게는 ‘협상 공간’을 넓히기보다 ‘리스크 관리’가 절실해진다.
이번 회담의 의제는 무역을 넘어 반도체 공급망, 인공지능(AI) 규제, 기후 협력, 남중국해 긴장 완화 등으로 확장시키 수 있지만, 양국이 광범위한 의제에 합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번 회담은 협상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자리이며, 결과보다 대화의 지속 자체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두 정상이 마주 앉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안도할 것”이라며 “대화의 재개가 불확실성을 줄이는 경제적 완충 장치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협상의 불씨만 살아 있어도 공급망과 시장 불안이 일정 부분 진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번 회담의 의미는 ‘결론’보다 ‘지속 가능성’에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회담은 새로운 선언보다 위기 관리의 리허설이 될 것”이라며 “경주가 향후 미·중 경제 분리의 속도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번 회담은 외교적 의미가 작지 않다. 세계 두 강대국이 한국에서 마주 앉는 그 자체가 외교의 메시지다. 경주는 단순한 개최지가 아니라, 미·중 경쟁이 ‘충돌의 외교’에서 ‘관리의 외교’로 넘어가는 시험무대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균형외교의 실질적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이 중간 조정자 역할을 얼마나 해낼지가 미·중 모두의 관심사”라고 전했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경주 회담이 미·중 갈등의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한국 외교의 존재감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이 미·중 사이의 조정자 역할을 보여준다면, 향후 동북아 질서에서 발언권은 한층 커질 것이다. 회담의 결과가 대타협이든 상징적 악수로 그치든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이번 APEC 경주 회담은 ‘새로운 합의’의 출발선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정치’의 무대다.
트럼프는 계산된 강경함으로, 시진핑은 절제된 현실감각으로 이 회담에 임한다. 결국 미·중은 싸움을 끝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두 경쟁자처럼, 서로를 겨누면서도 거울을 보는 중이다. 이번 경주는 그 거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를 결정짓는 자리다.
싸움의 규칙이 바뀌면 세상의 흐름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첫 장면이 이번 주 한국 경주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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