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군산, 직각으로 잘린 도시, 흉터를 무늬로 바꾸다[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지방의 시간을 기록하다]④
외부의 욕망이 설계한 기계적 효율성, 직각의 도시와 부잔교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전 국회의원] 영주와 군산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전성기를 누린 시차(時差)도 존재하지만, '식민지 수탈'이라는 거대한 물류 메커니즘 안에서는 완벽한 짝을 이룬다. 제국주의의 공간 전략은 치밀했다. 비록 수송 대상과 시기는 달랐을지언정, 두 도시는 한반도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의 양대 축이었다. 영주가 철도망을 통해 광물과 임산자원을 수집하는 '내륙 거점'이었다면, 군산은 호남평야의 미곡을 외부로 반출하는 '해상 거점'이자 식민지 도시계획의 실험장이었다.
이 시스템의 정교함은 군산 원도심(월명동·영화동)의 지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산세를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조선의 전통 도시와 달리, 자와 컴퍼스로 구획한 반듯한 격자형(Grid) 도로망은 1899년 개항과 함께 이식된 근대 도시계획의 산물이다. 군산을 처음 방문한 이들은 지방 중소도시에서 보기 드문 시원한 직선 도로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이 직각의 도로는 거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수천, 수만 가마니의 쌀을 내항까지 가장 신속하게 이동시키기 위한 철저한 '기능주의적 배치'였다. 도로는 물자의 이동 통로였고, 도시는 거대한 물류 창고였다. 식민지 시대의 군산은 정주 공간이 아니라 수탈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거대한 기계'였기 때문이다.
이 도로망의 끝, 내항 갯벌 위에는 '부잔교(뜬다리 부두)'가 떠 있다. 최대 7미터에 달하는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해 다리가 물의 수위에 따라 상하로 움직이게 설계된 이 거대 구조물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토목 기술의 집약체였다. 그러나 그 설치 목적은 썰물 때 배를 댈 수 없어 수탈이 지체되는 '비효율'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24시간 끊임없는 선적과 반출을 가능케 했던 이 시설은 식민지 인프라가 가진 폭력적 효율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묵묵히 기능하는 구조물 앞에서, 우리는 기반 시설이 정치적 목적과 결합했을 때 어떤 역사를 만들어내는지를 목격한다.
상처를 ‘문화의 방파제’로,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반전
흥미로운 점은 군산이 제조업 위기(2017년 현대중공업 가동 중단, 2018년 한국GM 폐쇄)가 닥치기 훨씬 전부터 ‘문화’라는 생존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후반 신도시 개발로 원도심 공동화가 시작되자, 군산은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 철거 위기의 건축물을 보존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른바 ‘네거티브 헤리티지(부정적 문화유산)’를 도시 마케팅의 핵심 자원으로 전환한 선제적 시도였다.
2011년 개관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구축된 이른바 '시간여행마을'은 수탈의 역사와 저항의 서사를 결합해 장소성을 부여했다. 입구의 시계탑이 상징하듯 멈춰버린 과거의 시간을 관광 자원으로 되살린 이 ‘문화 인프라’는, 훗날 주력 산업 붕괴라는 파도가 덮쳤을 때 도시 경제가 완전히 침몰하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결정적인 방파제가 되었다. 제조업 근로자가 떠난 빈자리를 관광객이 채우면서, 군산은 산업도시에서 문화 관광도시로 연착륙(Soft Landing)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는 물리적 재개발 없이 콘텐츠만으로 도시의 기능을 회복시킨 드문 성공 모델이다. 박물관과 마을은 파편화된 도시의 기억을 아카이빙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피해의 도시'에서 '기억과 극복의 도시'로 재설정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상권의 실질적인 혈류를 공급한 것은 민간의 강력한 앵커 테넌트, '이성당'이다.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과자점 '이즈모야(出雲屋)'의 설비를 해방 직후 한국인이 인수해 문을 연 이 빵집은, 단순한 F&B 매장을 넘어 대형 쇼핑몰에 버금가는 모객 능력을 발휘한다. 평일에도 길게 늘어선 대기 행렬은 인근 초원사진관과 골목 상권으로 소비를 확산시키는 낙수 효과(Spillover Effect)의 진원지다. 위기에 처한 원도심을 지탱한 것은 거대 자본이 아니라, 일본의 유산을 한국인의 생존 자산으로 바꾼 로컬 브랜드의 힘이었다. 이는 지역 고유의 노포가 지방 도시 상권을 지탱하는 가장 확실한 경제적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름을 뺏긴 '원형(原形)의 섬', 다시 도시의 미래가 되다
근대의 흔적이 가득한 육지를 벗어나 새만금 방조제를 건너면, 군산의 숨겨진 기원(起源)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군산'이라는 지명의 원주인은 육지의 항구가 아니라 선유도를 비롯한 섬 무리,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였다. 고려와 조선 초기, 서해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에는 수군 진영인 '군산진(群山鎭)'이 있었다. 그러다 세종 때 왜구 방어와 조운선 보호를 위해 진영을 육지(현재의 군산항 일대)로 옮기면서, 지명도 함께 육지로 따라가 버렸다. 결국 원래의 군산은 '옛(古) 군산'이라는 뜻의 고군산군도가 되었고, 육지는 새로운 군산이 된 것이다. 이는 군산이라는 도시가 태생적으로 바다와 섬을 통제하는 지정학적 거점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한때 이름마저 뺏기고 변방으로 밀려났던 고군산군도는 현대에 와서 다시 도시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산업화 시대 육지의 군산이 '생산과 수출'을 담당했다면, 탈산업화 시대에는 고군산군도의 천혜의 자연환경이 '휴양과 해양 레저'라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토대가 되고 있다. 군산이 회색빛 공업 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오래된 군산'이 품고 있는 생태적 가치 덕분이다.
군산은 타의에 의해 설계된 계획도시로 출발해, 수탈의 전초기지, 산업화의 거점, 그리고 제조업 붕괴의 위기까지 겪었다. 그러나 군산은 소멸하지 않았다. 흉물로 남을 뻔한 상처를 역사적 자산으로 치환했고, 섬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미래 동력으로 삼았다. 이 도시의 생명력은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에서 나온다.
다음 도시는 '예술'과 '낭만'의 색채로 도시를 경영하는 곳이다.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한국의 나폴리, 통영이다(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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