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도약패키지 선정 기업] ② 이성욱 긱스로프트 대표
안정된 삼성 떠나 가시밭길 하드웨어 시장에 도전
스마트 헤드폰…듣는 기기 넘어 보고 찍는 기기로 글로벌 시장 도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창업도약패키지 지원사업’은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겪는 3~7년 사이의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이 사업에 선정된 스타트업 창업가의 생생한 이야기는 후배 창업가들의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성욱 긱스로프트 대표가 2026년 상반기 상용화에 도전하는 ‘페리스피어’(Perisphere)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민규 기자]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기업가들은 사업 아이템을 찾을 때 ‘블루 오션(새로운 시장)’을 찾기 마련이다. 경쟁자가 적은 곳에 기회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다르다. 오히려 글로벌 공룡 기업들이 버티고 있는 ‘헤드폰’이라는 치열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보스·소니·젠하이저·애플 등 쟁쟁한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헤드폰 본연의 듣는 기능에 ‘보는 기능’을 더해 ‘스마트 헤드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겠다는 자신감으로 차 있다.
2026년 상반기 상용화를 앞둔 스마트 헤드폰 ‘페리스피어’(Perisphere)는 어쩌면 ‘듣기만 하던 헤드폰에서 볼 수도 있는 헤드폰’이라는 블루 오션을 열어젖힐지 모른다. 16년 동안 삼성전자 DMC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다 2021년 긱스로프트(Geeks Loft)를 창업한 이성욱 대표다. 그는 창업도약패키지 기업 선정으로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파란불이 켜지고 있다.
안정된 삼성의 울타리를 넘어, '나만의 것'을 찾아서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한국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미국 UCLA로 건너가 전산학(Computer Science) 석·박사를 땄다. 1994년 도미해 학부 3학년부터 다시 시작해 박사 후 과정(Post Doc)까지 10년의 세월을 미국에서 보냈다. 그러다 2003년, 삼성전자 DMC연구소 연구원으로 합류했다.
그곳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안정된 궤도를 벗어나 창업이라는 거친 바다로 나아갔다. 청력을 잃은 아버지가 카카오톡 문자로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목소리를 문자로 보여주는 기기'를 만들고 싶다는 개인적인 열망이 그를 이끌었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C-Lab)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회사 내에서 도전하려면 아무래도 여러 제약이 따른다. 차라리 밖에서 속도감 있게 내 아이디어를 펼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하드웨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글로벌 기업이 선점한 헤드폰 시장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긱스로프트가 개발한 페리스피어는 독특하다. 겉보기엔 평범한 프리미엄 헤드폰인데, 헤드밴드에 달린 디스플레이가 눈앞으로 내려온다. 시장에는 이미 애플의 비전 프로나 메타의 오큘러스 같은 VR(가상현실) 헤드셋이 있고, 레이밴 메타 같은 스마트 글라스도 있다. 글로벌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 틈바구니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헤드폰은 1910년대 처음 나왔는데 이후 100여년 동안 머리에 쓰는 기기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기다. 반면 VR 헤드셋은 무겁고, 스마트 글라스는 아직 안경으로서의 기능이 완벽하지 않다. 이 대표는 “사람들이 이미 익숙한 헤드폰에 시각적 경험을 얹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앵커’(Anchor)라는 표현을 썼다. 페리스피어는 '음악 감상'이라는 확실한 앵커 기능을 수행하면서 시각적 경험을 확장한다는 논리다. VR 기기는 VR을 볼 때만 쓰지만, 헤드폰은 음악을 듣기 위해 매일 쓴다. 쓰다가 볼 것이 있으면 디스플레이를 내리면 된다. 이 단순한 접근이 프리미엄 헤드폰 시장에 뛰어든 동력이다.
특히 페리스피어는 양안 카메라를 탑재해 사용자가 보는 시점 그대로 3D 영상을 촬영하고 공유할 수 있다. 페리스피어 사용자가 콘텐츠를 소비할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폰의 콘텐츠를 소비하다가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공유하는 새로운 경험이 가능해진다.
이 대표의 전략은 철저히 '글로벌 퍼스트'다. 한국 스타트업이지만 미국 법인을 먼저 세우고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한다.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성과는 벌써 나오고 있다.
긱스로프트는 2026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6'에서 헤드폰&퍼스널 오디오 부문 '최고 혁신상(Best of Innovation)'을 수상했다. 단순히 혁신상을 받은 게 아니라, 소니나 보스 같은 글로벌 음향 기업들이 즐비한 카테고리에서 '최고'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 대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실적"이라며 웃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6년 초 페리스피어 상용화를 앞두고 벌써부터 글로벌 파트너들과의 협업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3대 음반사 중 하나와 유명 록밴드의 음악을 활용한 XR 전시를 논의하고 있다. 호주의 멘탈 헬스케어 기업 '브레인 벡터’(Brain Vector)와는 운동선수들의 멘탈 케어를 위한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SXSW 시드니' 전시회 때 브레인 벡터 CEO가 페리스피어를 보자마자 "우리가 찾던 게 바로 이거다라고 환호했다”면서 “이런 파트너들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라며 웃었다.
이성욱 긱스로프트 대표가 경기 성남시 판교창조경제밸리에서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김민규 기자] "하드웨어 스타트업? 미친 짓이라지만..."
창업 후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보다 자본이 훨씬 많이 든다. 투자자들도 “매출이 나오느냐”부터 묻는다. 이 대표는 다양한 국가 지원 사업에 도전하면서 생존했다. 그나마 삼성전자 음향기기 생산 파트너인 범진전자가 전략적 투자자(SI)가 된 것이 생존의 비결이다. 그는 “스타트업의 가장 큰 어려움인 제품의 양산 문제를 범진전자를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됐다는 게 큰 행운이다”면서 “범진전자가 먼저 우리의 가능성을 인정해 투자자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프리-A(Pre-A) 투자 라운드를 진행 중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그리고 제품 양산과 함께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추가 확보할 계획이다.
그의 출발점은 거창한 기술 혁신이 아니었다. 아버지와의 소통, 그리고 자신의 불편함에서 시작된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이었다. 그 고민이 100년 된 헤드폰의 역사를 다시 쓰려 하고 있다.
그는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가장 불안정한 길을 선택했다. 긱스로프트의 '페리스피어'가 세상에 나올 2026년에 우리는 스마트폰 이후의 새로운 세상을 머리에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창업도약패키지 선정 기업 창업가 인터뷰 시리즈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백종원 ‘백사장3’ 컴백…타이틀 변경 “2월 중 방송” [공식]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백종원 ‘백사장3’ 컴백…타이틀 변경 “2월 중 방송” [공식]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尹 사형 구형까지…'나흘 걸쳐 32시간' 초유의 결심공판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새정부 보고 강화에 LP 실무진 ‘진땀’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독일 판매 막힌 키트루다SC, 하반기 유럽서 판매금지 늘어날까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