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력하겠다더니…정부 패싱한 쿠팡
치킨게임 양상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미국 기업 쿠팡이 한국 정부를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실 인지 후 정부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정부를 배제하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상반된 행동을 보이고 있어서다.
정부와 엇박자…위증 의혹까지
국회에서는 2025년 12월 30~31일 이틀간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불공정 거래·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가 진행됐다. 국회법 63조에 따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주도하고 정무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 등 6개 유관 상임위원이 참석했다.
청문회에서는 “쿠팡이 한국을 무시한다”는 위원들의 지적이 빗발쳤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대표가 ‘동문서답’, 원론적인 답변을 이어가면서다.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 관련 질의에 대해서는 “모른다” “내가 한국 책임자” 등의 답변으로 일관해 청문회 위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쿠팡은 한국 정부와도 충돌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쿠팡의 ‘자체(셀프) 조사 및 결과 발표’다. 청문회에 앞서 쿠팡은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 사태 관련 조사를 진행했고, 유출자와 접촉해 범죄에 사용된 노트북 등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또한 실제 유출된 정보는 3370만개가 아닌 3000개 계정의 고객 정보이며, 이마저도 모두 삭제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쿠팡은 해당 내용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도 보고서 형태로 제출했다.
쿠팡의 이런 행동은 조속한 사태 수습을 위한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관합동조사단을 운영 중인 정부를 패싱(배제)하는 꼴이 됐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겸 부총리는 “정부와 합의되지 않은 결과를 사전에 발표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민관합동조사단에서는 3300만건 이상의 이름과 이메일 등이 유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이 외에도 쿠팡은 청문회 위증 논란까지 일으켰다. 로저스 임시대표가 국가정보원 지시를 받아 자체 조사를 벌였다고 답변한 것이 문제가 됐다. 국정원은 “명백한 허위이며, 자료 요청 외 어떤 지시·명령·허가를 한 사실이 없다”며 “국회에서 위증죄로 고발해 주길 요청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 기업이라서? 쿠팡 왜 이러나
쿠팡이 한국 정부보다 먼저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향후 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쿠팡Inc 주주 조셉 베리는 김범석 의장과 거라브 아난드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상대로 증권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쿠팡 측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 관련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아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는 게 이유다. 이 같은 집단소송 제기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외 법무법인들은 쿠팡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미국 법원에 청구하기 위한 집단소송 원고인단 모집에 나선 상태다.
학계에서는 쿠팡이 국회 및 정부와 강대강 구도를 가져가는 배경으로 충성 고객을 꼽는다. 쿠팡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에도 고객 이탈 등의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팡의 일간이용자 수(DAU·추정치)는 2025년 12월 23일 기준 1523만812명이다. 한때 1480만명대로 떨어졌던 DAU는 다시 1500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쿠팡은 한국 기업이 아닌 미국 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처럼 대응 과정이 부드럽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모든 미국 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과거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진정성 있게 대응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쿠팡이 작심하고 강대강 구도로 가는 것 같다.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은 소비자다. 쿠팡을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쿠팡은 이미 고객의 이탈 여부 등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들고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 유출에서 시작된 쿠팡 사태는 단기간에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청문회 외에도 국정조사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와 국회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외에도 독점적 지위 남용, 근로자 안전 등 각종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 한국 직원들이 김범석 의장을 설득하는 데 너무 긴 시간이 걸린 것 같다”며 “한국의 정서를 고려하는 대처를 적절하게 했다면 지금처럼 상황이 커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김범석 의장이 직접 나서도 사태 수습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황 교수는 “골든타임을 사실상 놓쳤다”며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고 본다. 지금과 같은 일관된 모습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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