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스크린 찢고 나온 AI...CES가 던진 질문들 [스페셜 리스트뷰]
- 클라우드가 아닌 몸으로 뛰는 AI
자동화를 넘어 ‘자율화’ 흐름
AI 에이전트 경제 부상
지난 2024년과 2025년이 생성형 AI(인공지능)가 디지털 캔버스 위에서 텍스트를 조합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인간의 창의성을 모방한 '창작의 시대'였다면,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은 그 지능이 육체를 얻어 물리 법칙이 엄격하게 지배하는 현실 세계로 걸어 나온 '행동의 시대'를 선포했다. 우리는 이를 '피지컬 AI의 대각성'이라 부른다.
클라우드 서버의 냉방 장치 속에서만 존재하던 거대언어모델(LLM)의 신경망은 이제 로봇의 관절을 움직이는 모터 제어기와 자율주행차의 조향 장치로 전이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기조연설에서 이를 두고 “지능의 민주화를 넘어선, 자율성의 보편화이자 물리적 노동의 해방”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단지 더 똑똑한 기계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 갇혀 있던 AI가 '실체'를 갖고,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CES 2026 현장에서 목격된 거대한 변화의 파도를 ▲두뇌 ▲신체 ▲경제 ▲통제라는 4가지 핵심 차원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해 봤다. 특히 AI가 물리적 실체를 갖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요소들인 인간의 개입 없이 기계 간 거래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경제 인프라(Web 3.0), 그리고 물리적 안전을 담보할 보안 체계(Zero Trust)의 부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확률적 생성에서 결정론적 행동으로
CES 2026의 LVCC 노스 홀은 더 이상 내연기관이나 전기 모터의 성능을 자랑하는 '자동차 전시장'이 아니었다. 그 공간은 실리콘과 알고리즘이 결합한 거대한 '움직이는 데이터 센터'의 쇼케이스였고, 도로 위를 달리는 슈퍼컴퓨터들의 경연장이었다.
엔비디아가 공개한 차세대 모빌리티용 AI 모델 '알파마요'는 이번 CES의 최대 화두이자 기술적 변곡점으로 부상했다. 기존 자율주행 기술이 수만 줄의 코드로 “빨간불이면 멈춰라” “사람이 있으면 서행하라” 같은 조건을 일일이 입력해야 했던 ‘규칙’ 시스템이었다면, 알파마요는 시각(Vision) 정보와 언어(Language)적 맥락을 통합해 즉각적인 행동(Action)으로 직결시키는 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이다.
이는 AI가 도로 위 상황을 단순히 픽셀 단위로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문맥을 이해하고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뜻한다. 예컨대 비좁은 골목길에서 마주 오던 트럭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손짓으로 양보 신호를 보냈을 때, 기존 라이다나 레이더 센서는 그 사회적 제스처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해 차량을 멈춰 세우기 일쑤였다.
반면 알파마요는 “상대방 운전자가 손을 흔드는 행위는 양보의 의미이며, 현재 도로 폭을 고려할 때 내가 먼저 진입해도 안전하다”는 식의 인간 수준 판단을 내린다. 텍스트 생성형 AI가 ‘확률’에 기반해 다음 단어를 예측하던 단계에서, 물리 세계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학습하고 목적 지향적 행동을 수행하는 단계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기술적 성취는 ‘경량화’와 ‘독립성’이다. 수천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 모델을 전력 소모가 제한적인 자동차, 혹은 배터리로 구동되는 로봇 내부의 엣지 디바이스에서 실시간으로 구동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퀄컴과 엔비디아, 그리고 한국의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연산 장치 간 데이터 병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핌(PIM) 기술과 인간 뇌의 신경망 구조를 모방한 뉴로모픽 칩을 통해 이를 현실로 끌어왔다.
클라우드 연결이 끊겨도 로봇이 멈추거나 멍청해지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 기계는 중앙 서버의 지시를 기다리는 단말기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생존하는 독립적 지성체로 변모했다. 이는 통신 음영 지역이나 재난 상황에서도 AI 로봇이 임무를 완벽히 수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차그룹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선보인 완전 전동식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는 로보틱스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수십 년간 로봇은 특정 작업(용접·도색·무거운 물건 운반 등)에 최적화된 형태와 기능을 가진 ‘특수 목적 기계’에 가까웠다.
그러나 신형 아틀라스는 인간과 동일한 신체 비율, 혹은 인간을 초월하는 관절 자유도를 갖춘 진정한 의미의 ‘범용 로봇'이다. 과거에 무겁고 시끄러운 유압 장치를 덜어내고, 고토크 정밀 모터로 구동되는 이 로봇은 소음 없이 인간의 생활 공간·사무실·가정으로 스며들 수 있다.
CES 시연에서 아틀라스는 단지 걷고 뛰는 수준을 넘어 넘어진 상태에서 손을 짚지 않고 코어 근육만을 이용해 일어나는 기예를 선보였다. 이는 로봇 도입을 위해 공장 설비를 뜯어고칠 필요 없이 인간을 위해 설계된 기존 환경에 로봇을 그대로 투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력 부족 문제의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 공장 메타플랜트(HMGMA)를 단순한 생산 기지가 아닌, 세계 최초의 ‘AI 네이티브 팩토리’로 선언했다. 이곳에서 아틀라스는 반복 노동을 수행하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다. 공장 전체를 관장하는 중앙 AI와 5G 특화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엣지 단말기다.
기존 자동화 공장에서는 불량이 발생하면 라인을 멈추고 사람이 검수해야 했다. 그러나 HMGMA에서는 아틀라스가 부품에 내장된 RFID와 비전 센서를 통해 불량을 즉각 감지하고, 중앙 AI는 곧바로 후속 공정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대체 부품을 투입하도록 명령한다. 노동은 더 이상 인간의 땀방울이 아니라, AI의 초고속 연산과 로봇의 정밀한 모터 제어가 결합한 ‘물리적 데이터 처리’ 과정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자동화’를 넘어선 완전한 ‘자율화’ 단계다.
이번 CES가 보여준 가장 흥미롭고도 파괴적인 변화는 기술 그 자체를 넘어 기술이 만들어낼 ‘새로운 경제 생태계’의 출현이다. 수십억 개의 AI 에이전트가 물리 세계에서 활동하는 순간, 그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어떻게 거래하고 가치를 교환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상상해 보자. 당신의 자율주행차가 주차장에 진입한다. 주차비는 누가 내는가. 당신이 창문을 내리고 신용카드를 꺼낼 필요는 없다. 차량은 스스로 주차장 게이트 시스템과 통신해 1분 단위로 계산된 요금을 결제한다. 이것이 바로 M2M(Machine-to-Machine) 경제다.
문제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비효율성이다. 로봇이 1초 단위로 데이터를 사고팔거나, 0.1kWh 단위로 전기를 충전할 때마다 비자나 마스터카드 같은 기존 결제망을 이용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수료 문제와 느린 정산 속도를 감당하기 어렵다. 국경을 넘나드는 물류 드론에게 환전 수수료와 국가별 결제 규제 또한 치명적 장벽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기존 금융망을 대체할 Web 3.0 기술이 ‘필연’으로 떠오른다.
이에 핀테크의 핵심 주제는 단연 ‘AI 월렛’으로 생각된다. 미래의 모든 AI 에이전트는 주민등록번호가 아니라, 블록체인 상의 고유 주소를 갖는다. 이들은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이 아닌, 법정 화폐와 가치가 연동된 USDC나 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해 실시간으로, 거의 0에 가까운 수수료로 국경의 제약 없이 거래한다.
이는 단순한 결제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로봇이 수행한 노동의 가치를 증명하고, 자율주행차가 수집한 도로 데이터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는 과정에서 블록체인의 투명성은 필수적이다. 데이터 오너십이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거대 테크 기업의 서버에서 개별 에이전트(혹은 그 소유주)로 분산되는, 진정한 의미의 '프로토콜 경제'(Protocol Economy)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리적 힘을 가진 AI는 양날의 검이다. 챗봇이 편향된 발언이나 욕설을 내뱉는 문제는 ‘윤리적 문제’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100kg짜리 산업용 로봇이나 2톤 무게의 자율주행차가 해킹당해 인간을 공격하거나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다면 이는 심각한 ‘생존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보안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요구된다.
“경계는 사라졌다.” 네트워크 내부(사내망)는 안전하고 외부(인터넷)는 위험하다는 기존의 방화벽 중심 보안 관념은, AI 네이티브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수많은 AI 에이전트가 5G·6G망을 통해 끊임없이 접속하고 데이터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해커가 단 하나의 에이전트만 장악해도 전체 네트워크가 위험해질 수 있다.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제로 트러스트 아키텍처(ZTA)다. “Never Trust, Always Verify(절대 믿지 말고, 항상 검증하라)” 원칙에 따라 로봇이 내리는 모든 명령과 자율주행차가 보내는 모든 신호는 매 순간 상호 검증돼야 한다.
이번 CES에서는 블록체인 기반 분산신원증명(DID) 기술이 로봇의 위변조 불가능한 ‘디지털 신분증’으로 표준화되는 흐름이 감지됐다. 인증되지 않은 명령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 레벨에서 즉각 차단되는 ‘킬 스위치’가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분위기다.
규제와 기술의 합성어인 레그테크는 이제 금융권을 넘어 AI 산업의 안전장치로 자리 잡고 있다. 수십억 대의 AI 로봇을 사람이 일일이 감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사 AI’는 에이전트들이 교통 법규를 준수하는지, 로봇이 작업 안전 수칙을 지키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이를 블록체인 원장에 기록한다.
만약 AI가 편향된 판단을 내리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려 하면, 사전 설정된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가 자동 작동해 해당 에이전트의 활동을 중지시키거나 벌금을 부과한다. 이는 기업의 자율적 윤리 선언을 넘어, ‘책임감 있는 AI’를 기술적으로 강제하고 구현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피지컬 피벗, 준비된 자만이 살아남는다
CES 2026은 인류에게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지능을 가진 기계와 물리적 공간을 공유할 준비가 되었는가.” 답은 기술 발전 속도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준비 수준에 달려 있다. AI 기술은 이미 실험실을 떠나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강력한 기술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수용할 ‘사회적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기업들은 기존의 ‘디지털 전환(DX)’을 넘어 ‘피지컬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단순히 업무에 SW를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물리 세계의 데이터를 이해하고 로봇을 통해 현실을 제어하는 능력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2026년. AI는 마침내 스크린을 찢고 밖으로 나왔다. 혁명은 이제 당신의 사무실 책상 위에서, 시끄러운 공장 바닥에서, 그리고 당신이 출근하는 도로 위에서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다. 이 거대한 ‘피지컬 AI’의 파도에 지금 당장 올라타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시대에 당신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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