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고용 불안 유발 vs 휴식권 보장”…마트 영업 제한 두고 엇갈린 노동계 [대형마트 규제 14년, 탈규제 목소리 거세다]③
- 쿠팡·홈플러스 사태 이후 유통 규제 책임론 재부상
전문가들 “현행 유통법 실효성 의문” 한목소리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최근 유통업계가 쿠팡과 홈플러스 문제로 연일 떠들썩하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인수 의향자를 찾지 못해 파산 위기에 놓인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규제 완화 필요성을 두고 대형마트 노동자 사이에서도 상반된 의견이 나온다.
이마트 노조 “유통법, 쿠팡·홈플러스 사태 키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이마트 노조)은 지난해 12월 23일 ‘쿠팡과 유통 산업에 대한 성명서’를 내고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쿠팡의 부실한 대응을 지적했다.
이마트 노조는 “(쿠팡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소비자에게 쿠팡 외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쿠팡의 독보적 유통 생태계를 만든 원인으로 이마트 노조는 지난 2012년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을 지목했다. 골목상권 보호를 명목으로 제정된 유통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월 2회 의무휴업 ▲0시~오전 10시 영업 금지 등이 담겼다. 의무 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배송도 불가능하다.
이마트 노조는 “오프라인 대형마트 규제가 ▲소비자 입장을 반영했는지 ▲누가 혜택을 봤는지 ▲도입 취지대로 효과가 나왔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마트 노조에 따르면 정부가 사양 산업이자 한계 산업을 13년간 일관적으로 규제하는 사이 대형마트의 폐점이 늘면서 마트 노동자는 1만명 가까이 사라졌다. 사원 월급이 분할 지급되고 전기세 등 세금마저 미납된 홈플러스 사태에 관해서도 “충격적”이라고 언급했다.
이마트 노조는 “누가 정부 규제가 지속되는 한계 산업을 인수하겠냐”면서 “마트 산업의 규제를 지속하려면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함께 참여하는 산업전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유통 노동자와 기업의 출구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마트노조 “규제 유지·강화 필요…온라인도 적용해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 노조)는 작년 12월 24일 성명을 통해 이마트 노조의 주장에 유감을 표했다.
마트 노조는 “이마트 노조의 성명은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 휴식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외면한 채 사용자와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며 “노조가 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단정하고 규제 완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면 구조조정과 노동조건 후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한다”고 비판했다.
마트 노조에 따르면 쿠팡 사태의 본질은 대형마트 규제가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무규제’다. 마트 노조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논란 ▲고강도 노동 ▲반복적인 노동자 사망 사건 등은 대형마트 규제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다”면서 “쿠팡이라는 초대형 플랫폼 기업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정부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대형마트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휴식권을 보장해 온 의무휴업 제도는 온라인 유통 노동자에게도 확대돼야 할 기준이라는 게 마트 노조의 입장이다.
마트 노조는 “홈플러스 사태의 본질은 단기 수익만을 추구하는 투기자본이 유통 기업을 인수해 자산을 분해하고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한 결과”라며 “의무휴업 제도는 유지·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마트 노조 관계자는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충분히 휴식해야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고객 만족도도 높아진다고 본다”면서 “현행 규제를 유지하며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에도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위기, 고용·지역 경제 등에 영향”
전문가들은 대체로 현행 유통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겸임교수는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유통법을 오는 2029년 11월까지 4년 연장하는 개정안이 통과된 데에 관해 “당장 폐기돼야 할 법이 연장됐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 교수는 “유통법은 도입 취지대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대신 대형마트를 포함한 오프라인 유통 산업 전체를 위축시켰다”며 “대형마트가 규제 없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의 공습에 대응할 여력을 갖췄다면 업계 2위인 홈플러스가 이렇게까지 추락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유통 산업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대형마트도 온라인 경쟁력을 강화해야 했지만 영업시간 제한으로 점포를 활용한 이커머스 사업에 제약을 받았다”면서 “의무휴업은 단순히 한 달에 이틀만 영업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점포의 물류센터 기능까지 잃게 만든 제도”라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대형마트가 규제에 묶여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소비자가 24시간 영업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와의 격차만 더 벌어졌다”며 “과거 오프라인 간 경쟁 구도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이나 지역 슈퍼마켓 등을 찾았겠지만 온라인 쇼핑 비중이 커진 지금은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그는 “업계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는 홈플러스 사태와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면서 “전국에 100곳이 넘는 점포를 보유한 대형마트가 문을 닫게 되면 대규모 실직뿐 아니라 납품·협력업체 도산, 지역 상권 붕괴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규제 완화나 폐지를 통해 업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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