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철강·은행에서 반도체로…주도판 바뀐 ‘코스피’ 시가총액 주인공들
- [코스피 5000, 새 역사 쓰다]①
89년 3월31일 코스피, 장중 1000선 돌파…상승 속도 빨라져
국가 주도 산업서 2000년대 반도체·AI·플랫폼으로 산업 변화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코스피 지수가 올해 1월 22일 장중 5000포인트를 돌파하며 한국 자본시장은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해 4000선을 돌파한 이후 불과 87일 만에 1000포인트가 추가로 상승하며 지수 상승 속도가 과거와 비교해 더 빨라졌음을 보여줬다. 코스피는 한국 경제를 이끈 기업 구성의 변화와 산업 구조의 전환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1000 단위로 새 기록을 쓸 때마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의 구성은 크게 달라졌고, 각 시기의 한국 사회와 경제를 둘러싼 환경 변화도 맞물려 나타났다.
12개 상장사로 시작한 한국 증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1월 22일 장중 5019.54까지 오르며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넘어섰다. 이후 지수는 같은 달 30일 5321.68까지 상승 폭을 키웠지만, 일부 차익 실현 매물을 반납하며 5200선 사이에서 거래를 진행 중이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53년 11월 설립된 대한증권업협회가 주식시장 개설을 추진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증권거래소가 도입되는 기반이 마련됐다.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 출범으로 한국 유가증권시장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 한국 증시의 상장사는 12개였고, 첫해 거래 규모는 오늘날 화폐 단위로 환산할 때 주식 3억9000만원에 불과했다.
12개 상장사는 조흥은행, 저축은행, 한국상업은행, 흥업은행 등 4개 은행과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등 일반 기업 6곳, 정책적 목적으로 상장된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이다. 이후 12개였던 상장사는 1973년 100개로 늘었다. 현재는 유가증권시장 843개사, 코스닥 1816개사 등 총 2659사로 증가했다.
코스피는 원래 ‘종합주가지수’라는 명칭으로 시작했다. 기준 시점은 1980년 1월 4일이다. 당시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을 100으로 설정했는데, 올해 ‘5000포인트’가 됐다는 것은 1980년과 비교해 시가총액이 50배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와 같은 시가총액 방식의 코스피는 1983년 1월 4일부터 적용됐다. 주가의 평균을 이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상장주식 수까지 고려해 시장의 흐름을 보다 잘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코스피(KOSPI)라는 이름은 1991년 3월부터 사용됐다. 이후 1996년 5월 17일 코스닥증권시장이 설립됐고, 같은 해 7월 1일 코스닥시장이 개설됐다.
코스피 상승 역사를 보면 한국의 가파른 경제 성장이 확인된다. 코스피는 1980년 1월 4일 100포인트에서 출발한 뒤 9년 만인 1989년 3월 31일 장중 1000선을 돌파했다. 이후 2007년 7월 24일 장중 2000포인트를 넘기까지는 18년 이상이 걸렸다. 이후 코스피 상승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2021년 1월 6일 3000포인트를 돌파한 코스피는 약 4년 만인 지난해 10월 27일 4000선을 기록했고, 이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올해 1월 22일 장중 5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지수 고점마다 바뀐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
코스피가 1000 단위로 새 기록을 쓸 때마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의 구성은 크게 달라졌고, 이는 각 시기 한국 사회와 경제를 둘러싼 환경 변화와 맞물려 나타났다.
1980년대의 한국 경제는 정부가 산업 정책을 주도하는 힘이 여전히 강했고, 수출 주도형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과정에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이어갔다. 1989년 3월 1000포인트를 넘던 코스피의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을 보면 이런 분위기가 드러난다. 당시 시가총액 상위 1위는 포항종합제철이었고, 한일은행·제일은행·서울신탁은행·한국상업은행·조흥은행 등 금융기관이 시가총액 2위부터 6위까지를 차지했다.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과 금융 중심 성장 구조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삼성전자와 현대건설이 각각 시가총액 7위와 9위를 차지했지만, 철강과 은행이 시장을 주도하는 구조였다. 당시 사회 역시 격동기를 거쳤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정치 체제가 전환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한국 경제는 대외 개방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89년 3월 31일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1000선을 돌파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경제는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금융기관 통폐합과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이어졌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이 급격히 확대됐고, 자본시장 개방도 본격화됐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2007년 7월 24일 코스피는 2000포인트를 넘어섰다.
2000선 돌파 시점의 시가총액 1위는 삼성전자였다. POSCO, 한국전력, 국민은행, 현대중공업, 신한지주, 우리금융 등이 상위권에 자리하며 여전히 철강과 은행이 한국 경제의 중심을 차지했다. SK텔레콤과 KT 등 통신사도 시가총액 상위에 포함됐다. 외환위기 이후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구조가 재정립됐고, 정보통신 산업이 한국 경제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2020년대에 들어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 국면과 함께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로 확산되며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 각국 중앙은행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재정 확대 정책이 이어졌고, 한국 역시 초저금리와 재정 지출 확대에 나섰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며 2021년 1월 6일 코스피는 3000포인트를 돌파했다. 특히 당시 ‘동학개미운동’이 나타나며 이른바 ‘전 국민 주식 투자’ 시대도 함께 열렸다.
3000선 돌파 당시 시가총액 1위는 삼성전자였고, SK하이닉스가 2위로 올라섰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이 시장의 관심을 받았고, NAVER와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이 상위권에 진입해 산업계의 변화를 체감하게 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플랫폼 산업이 한국 증시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모두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기술력 바탕 ‘삼성전자’ 시가총액 1위 유지
4000포인트 돌파는 지난해 10월 27일 나타났다. 이 시점에서 시가총액 1위는 삼성전자, 2위는 SK하이닉스였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상위권에 자리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HD현대중공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에너빌리티 등 방산·조선·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시가총액 상위에 포진했다. 산업 구조가 반도체와 배터리를 넘어 방산과 에너지 인프라까지 확장됐다.
이후 올해 1월 22일 코스피는 장중 기준으로 5000포인트를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시가총액 1위를 유지했고, SK하이닉스가 2위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시가총액 3위로 올라섰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HD현대중공업, 기아, SK스퀘어, 두산에너빌리티, KB금융 등도 시가총액 상위 20위에 포함됐다.
특히 삼성전자는 2007년 이후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권을 유지해 왔다. 삼성전자는 1992년 D램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이후 반도체 사업을 핵심 축으로 성장해 왔으며,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쟁력 강화를 이어왔다. 기술 경쟁력이 시가총액 상위 유지의 배경으로 작용해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업계에서는 코스피가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힘입어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적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의 한국 주식 전략 책임자 믹소 다스는 “메모리 칩 부족 현상이 2027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한국의 메모리 업체들이 추가로 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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