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박윤영의 ‘과속’ vs 김영섭의 ‘몽니’… 신구 권력 충돌에 KT 경영 시계 ‘올스톱’
- 신임 대표 체제 안착 ‘삐그덕’
이사회는 ‘옥상옥’ 변질 비판
통신 사업 경쟁력은 약화돼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갈 길 바쁜 KT가 ‘쌍두마차’ 갈등으로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차기 경영권 승계를 앞둔 박윤영 대표 내정자와 김영섭 현 대표 간 마찰이 인사 지연이라는 실체적 갈등으로 번지면서 회사 내부에 냉기류가 흐른다. 신구 권력이 한 지붕 아래에서 정면충돌하면서 KT의 2026년 경영 계획은 시작부터 틀어질 위기에 놓였다.
갈등의 불씨는 ‘인사권’에서 시작됐다. 박윤영 내정자는 지난해 12월 차기 대표로 낙점되자마자 과감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주주총회 전이라도 실무진 인사를 단행해 조직을 빠르게 장악하고, 본인의 경영 철학을 안착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이에 올해 1월 중 주요 임원 보직을 확정 짓는 ‘조기 인사’를 추진하며 사실상의 섀도 캐비닛(그림자 내각) 가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영섭 현 대표는 화답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해킹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3월 임기 종료 시점까지 경영 안정화에 매진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밀어붙이는 박윤영 對 버티는 김영섭
이번 신경전은 구현모 전 대표의 경영권 승계 과정과 대비된다. 지난 2019년 12월 차기 수장으로 낙점됐던 구 전 대표의 경우 내정 한 달 만인 2020년 1월에 이미 대규모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를 마무리했다. 당시 황창규 전임 대표는 내정자 중심의 인사권을 조기에 양도하는 등 차기 체제가 주총 전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협조했다. 구 전 대표는 내정자 신분으로 황 전 대표 대신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박윤영 내정 체제의 출범 과정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흐름을 보인다.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김영섭 현 대표가 경영 안정화를 명분으로 인사 결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과거의 안정적인 승계 모델 대신 경영 공백이 장기화하는 양상이다.
신구 권력의 갈등을 중재해야 할 이사회는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었다. 박윤영 내정자와 김용헌 이사회 의장이 조기 회동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만난 두 사람은 해킹 사고로 훼손된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현재 KT 이사회가 박윤영 체제의 향방을 가를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대표 선임 절차를 투명화하고 이사회의 견제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개정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사회가 경영권 전반에 개입할 수 있는 과도한 권한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리더십 발휘를 가로막는 ‘옥상옥’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사회 규정이 차기 리더십의 발목을 잡는 제도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KT 이사회 규정 제8조에 따르면 부문장급 경영 임원의 임명 및 면직과 주요 조직 개편 과정에서 이사회의 사전 심의 및 의결을 거치도록 명시돼 있다. 과거 대표의 고유 권한이던 인사권이 이사회의 승인 없이는 행사할 수 없는 구조로 묶였다.
최근 이사회는 이를 ‘심의·의결’에서 ‘협의’ 수준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이사회의 과도한 경영 개입이 기업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외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이사들의 권한을 강하게 가져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인사까지 개입하면 부정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며 “‘협의’ 수준으로 완화하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통신·AI 위상 회복 언제쯤
KT 구성원들도 불만을 쏟아냈다. 다수 노조인 제1노조와 매번 회사와 대립각을 세우는 KT새노조는 각기 다른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제1노조는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외이사가 KT의 미래를 좌우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퇴진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판 수위가 더 높은 곳은 KT새노조다. KT새노조는 “KT가 대규모 해킹 사태와 은폐 의혹으로 국민적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데,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주주가 아닌 자신들의 이권을 추구하는 ‘이권 카르텔’의 본거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KT새노조는 이사회의 셀프 연임 논란과 대표 선출 과정에서 회의록과 투표용지를 폐기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에 신속 수사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박윤영 내정자는 취임도 하기 전에 내부 결속력을 다스려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실적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2025년 연결 기준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8조2442억원, 2조4691억원을 기록하며 겉보기엔 ‘어닝 서프라이즈’에 가까웠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배나 뛰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강북본부 개발에 따른 부동산 분양 이익이 크게 반영됐다. 해킹으로 인한 고객 보상 비용은 4500억원 규모로 추산되며 혜택을 이용하는 이용자 수에 따라 올해 실적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KT는 뒤처진 인공지능(AI) 경쟁력 확보에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각각 AI 기반 에이전트 에이닷과 익시오의 저변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KT는 자체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와 팔란티어 등 빅테크와 협업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아직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했다. 상황이 이런데 당장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막을 올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6’에서 김영섭 현 대표와 박윤영 내정자 모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전망이다. 정재헌 SK텔레콤 대표가 처음 글로벌 무대에 데뷔하고,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가 LG그룹 경영자 중 최초로 ‘MWC’ 기조연설에 나선 것과 대비된다. 업계 관계자는 “AI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KT의 대표 선임 때마다 발생하는 고질적인 이슈로 의사결정이 미뤄지는 것은 경쟁력 차원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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