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에너지를 연금으로...중소도시들의 도전과 과제[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지방선거와 도시]⑤
집값, 행정통합이 아닌 ‘생존’으로 6월 지선을 기다리는 도시들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집값 상승이 서울 유권자의 가장 뜨거운 분노라면, 행정통합이 지방 광역시 및 대도시들의 기회요인이라면 집값이 오르기는 커녕, 공시가격 이하로도 부동산 거래가 어려운 도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도시들의 이번 선거 이슈는 무엇일까. 이들 도시의 선거 풍경은 서울이나 대도시와는 결이 다르다. 집값 심판도 재건축 기대도 아닌, 근원적인 생존의 질문이 투표를 하는 사람, 투표로 선택을 받는 사람 모두에게 무겁게 깔려 있다. 특히 최근 각 정당의 경선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지방의 미래를 바꿀뻔한 혁신적인 시도들이 정치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되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철새 공장 시대에서 ‘유실수 에너지’ 시대로
그동안 지방 중소도시들이 인구와 기업을 붙잡는 방식은 단순했다. 산업단지를 조성해 공장을 유치하고 공공기관 이전을 유치하며, 축제와 관광으로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것이 거의 유일한 경로였다. 여기에 전입 지원금, 청년 정착금 같은 현금성 지원을 더하는 방식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국 기초 지자체 10곳 중 7곳 이상이 재정자립도 30%의 벽을 넘지 못하고 비수도권 지자체의 80%가 소멸의 공포를 실감하는 현실에서 이 전략은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지금까지의 기업 유치는 언제든 조건이 나빠지면 떠날 준비를 하는 ‘철새’를 잠시 머물게 하려는 처절한 노력에 가까웠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역의 햇빛과 바람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는 ‘유실수’를 심는 작업이다. 에너지 설비는 한 번 입지하면 20~30년 단위로 그 자리를 지키며 매년 수익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를 주민이 지분 구조나 연금 형태로 함께 나누는 구조, 그것이 바로 ‘에너지 연금’의 본질이다.
이런 배경에서 몇몇 도시들은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공약들이 등장하고 있다. ▲햇빛수당 ▲블루연금 ▲시민 햇빛연금이라는 이름을 단, 에너지 시설의 발전 수익을 주민에게 연금이나 배당 형태로 돌려주겠다는 구상들이다. 군산에서는 새만금 일대 영농형 태양광으로 수천억원대 재원을 마련해 가구당 최대 5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이 나왔고, 익산에서는 유휴부지 1000만㎡에 태양광단지를 조성해 가구당 월 10만~30만 원씩 정기 지급하는 한편, 마을 단위로는 월 500만원을 마을기금으로 배당해 공동체 자산으로 순환시키겠다는 구상이 등장했으며 영덕에서는 육·해상 풍력단지 1.5GW를 통해 연간 798억원의 수익을 확보하고 군민 1인당 연 240만원, 4인 가족 기준 960만원을 연금처럼 나누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됐다.
세 도시, 세 가지 구상. 이름도 재원 구조도 지급 방식도 다르지만, 이 공약들이 공유하는 논리는 분명하다. ‘기업 유치로 일자리를 늘리는 전략’에서 ‘에너지 설비 자체를 지역 자산으로 삼아 그 수익을 주민 소득으로 전환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세금을 쓰는 게 아니라 지역이 만들어낸 가치를 지역민에게 되돌리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발상의 전환 자체는 분명히 신선했다. 그러나 이 공약들을 내세웠던 전·현직 단체장과 예비후보들은 각 정당의 경선 과정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그렇다고 이 흐름을 의미 없는 일탈로 치부하기 어렵다.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경력의 예비후보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구조의 공약을 독립적으로 꺼내 들었다는 사실은, 지방 정치의 상상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에너지 배당과 주민 공유모델 세계 곳곳에서 시도
에너지 배당과 주민 공유 모델을 처음 실험한 곳들은 화려한 대도시가 아니라 쇠퇴하는 주변부 지역이었다. 영국의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의 해안·농촌 지역에서는 발전 사업자가 ‘커뮤니티 베네핏 펀드’를 운영하는 것이 제도적 기준으로 확립돼 있다. 영국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30MW 규모 풍력단지는 25년 운영 기간 동안 총 375만 파운드에 달하는 지역기금을 조성해야 하며, 이 기금은 마을 단열 공사, 저소득층 에너지 비용 지원, 청년 장학금 등으로 주민의 실질적인 삶에 직접 쓰인다.
스코틀랜드의 CARES라는 제도는,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를 겪는 섬과 농촌 지역의 커뮤니티 그룹이 직접 풍력·태양광 프로젝트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보조금과 저리 대출을 결합한 방식으로 초기 투자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한다. 에너지 생산에서 얻은 수익은 마을기금으로 적립돼 지역 서비스와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쓰인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단지는 약 8500명의 시민이 지분 절반을 협동조합 형태로 소유하면서 설립 이후 평균 6~7%의 배당을 받아왔다. 독일도 수천개의 에너지 협동조합이 태양광·풍력 설비를 공동 소유하며 발전 수익을 주민 배당으로 나누는 방식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사례가 공유하는 교훈은 하나다. 에너지 시설이 ‘우리 마을의 자산’이 될 때, 주민은 반대자가 아닌 이해당사자가 되고 수익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안에서 돌게 된다. 한국의 에너지 연금 구상은 이런 해외 사례와 비교해 아직 초기 아이디어에 가깝다. 그러나 ‘경쟁력이 약해진 변방 지역이 에너지 설비를 유치해 그 수익을 주민과 나누겠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다르지 않다.
사람은 떠나도 정책 설계도는 남아야 한다
서울에서는 집값과 월세가, 광역 도시에서는 통합과 자립의 선택이 도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 중소도시에게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에너지 연금 공약을 내걸었던 후보들이 비록 본선 무대에 서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남긴 숫자와 설계도까지 폐기돼서는 안 된다. 어떤 정책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경선에서 탈락한 것은 후보들이지, 그들이 제안한 정책 모델의 타당성이 아니다. 비록 한국 정치에서는 사람이 바뀌면 정책도 함께 뒤집히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소멸의 벼랑 끝에 선 도시들에게는 이 설계도를 계승하는 것이 오히려 생존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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