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독박 육아 대신 ‘함께 키우는 회사’ 택했다 [애 낳으면 1억…IT업계가 달라졌다]②
- 사내 어린이집·리보딩·유연근무제 확대
출산 후에도 일할 수 있는 환경 구축
국내 한 정보기술(IT) 기업의 8년 차 개발자 A씨는 육아휴직 복귀를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개발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는 업계 특성상 육아휴직은 단순한 공백을 넘어 커리어 단절과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주요 IT 기업들이 이러한 장벽을 허물고 있다. 단순히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육아휴직 후 직원들이 커리어 단절 없이 조직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심리적 장벽 허무는 기업들
IT 업계 종사자들이 육아휴직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감이다. 특히 개발 분야는 신기술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생성형 AI 등장 이후 개발 업무 환경은 물론, 사용 언어와 협업 방식까지 급격히 변하고 있다. 몇 개월만 현업을 떠나 있어도 새로운 프레임워크와 개발 문화가 등장하는 일이 흔하다.
A씨는 “제도적으로 육아휴직 사용은 보장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내가 없는 동안 프로젝트가 바뀌면 어떡하지’ ‘복귀했을 때 업무를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심리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기업들은 복귀 이후의 적응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과거의 육아 복지가 위로금이나 축하금 같은 일회성 현금 지원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근로자의 커리어를 지속해 주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의 ‘리보딩’(Re-boarding) 프로그램이다.
네이버는 지난 2024년부터 육아휴직 복직자들이 변화한 조직 환경과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리보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공백기 동안 바뀐 사내 시스템과 기술 업데이트를 교육하고, 사내 네트워킹 제도를 통해 비슷한 시기에 복직한 동료들과 경험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복귀 초기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카카오와 넥슨 등은 사내 어린이집 운영에 공을 들이고 있다. 출산지원금 같은 일회성 혜택보다 육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부담을 줄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특히 맞벌이 비중이 높은 IT 업계에서 어린이집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업무 지속성을 보장하는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자녀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은 물론,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 부모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넥슨의 사내 어린이집 ‘도토리소풍’은 2011년 선릉원 개원을 시작으로 경기 성남 판교(3곳)·제주(1곳)·서울 대치동(1곳) 등 총 5곳이 운영 중이다. 운영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로, 하루 13시간 이상 보육이 가능하다.
카카오는 판교 오피스 내 ‘늘예솔’ ‘아지뜰’ ‘별이든’과 제주 오피스 내 ‘스페이스닷키즈’ 등 총 4개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총 907명의 원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유연한 근무 환경 또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와 시차출퇴근제, 재택근무 제도는 아이를 키우는 직원들의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 일정이 바뀌더라도 업무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네이버·카카오·크래프톤·넥슨 등 굴지의 IT 기업들이 이러한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얼마 주느냐’에서 ‘어떻게 일하게 하느냐’로
업계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한다고 보고 있다. 육아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어들수록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고, 회사에 대한 신뢰와 애사심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직원들의 조직 몰입도가 올라간다”며 “육아 지원 시설이 직원 만족도와 조직 충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기업 육아 복지의 경쟁력이 출산지원금의 규모보다 ‘육아휴직 복귀율’과 ‘경력 유지율’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한다. 출산을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산 이후에도 직원이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AI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숙련된 인력의 경험과 노하우가 곧 기업의 경쟁력이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우수한 인재가 회사를 떠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큰 손실이다. 결국 최근 IT 업계의 육아 복지는 ‘얼마를 지원하느냐’에서 ‘어떻게 일하게 하느냐’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무리 좋은 육아 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더라도 직원들이 실질적으로 제도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기업 또한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복지 제도 운영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지 효과를 측정하고, 내부 만족도 조사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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