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ELS 끊긴 은행 창구, ‘원금보장+알파’ ELD에 돈 몰린다
- [머니무브 틈새전략]①
4대 은행 판매액 3년 새 7배 급증…12조원 돌파
정기예금 저금리 불만·증시 호황 속 원금 손실 우려 회피 전략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증시 호황과 정기예금 저금리 기조 속에 금융시장 자금 흐름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시중 정기예금 금리가 연 3%대 초반을 밑돌며 매력이 떨어지고 주식 시장 하락에 대한 위험성을 회피하려는 투자자들이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원금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증시 상승 시 추가 이익을 노릴 수 있는 주가지수연동예금(ELD)이 인기를 끌고 있다.
ELD란 은행에서 판매하는 정기예금의 일종이다. 투자금 대부분을 안전한 자산에 넣어 원금을 확보하고 나머지 소액으로 코스피200 등 특정 주가지수의 변동과 연계해 추가 수익률을 더하는 상품이다. 만기 해지 시 원금이 보장될 뿐 아니라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1인당 최고 1억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어 안전성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해당 상품이 약속한 수준에서 주가 흐름이 이어질 경우 추가 금리를 받을 수 있지만, 증시가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면 수익률이 제한된다.
4대 은행 ELD 잔액 12조원 돌파…지수연동형 상품 경쟁 치열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의 주가지수연동예금(ELD) 판매액은 12조333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2년 판매액인 1조7751억원과 비교해 3년 만에 약 7배 가까이 급증한 규모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5월 말까지 3조5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추가로 유입되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 전반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주요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지방은행까지 상품 출시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코스피200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1년 만기 'KB Star 지수연동예금 26-4호'를 출시하고 최고 연 10.75%의 파격적인 세전 수익률 조건을 제시했다. NH농협은행은 개인 기준 최저 연 2.3%에서 최고 연 7.25%의 수익률을 제공하는 'ELD 26-3호' 가입자를 모집하며 수신 확보에 나섰다. IBK기업은행은 5년 만에, BNK부산은행15년 만에 각각 지수연동형 신상품을 라인업에 올리며 공세에 합류했다.
투자자들이 ELD에 주목하는 것은 정기예금 금리가 연 2%대 후반에서 3%대 초반에 머무는 상황에서 대안 자산에 대한 목마름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동시에 증시가 단기간에 과도하게 올랐다는 고점 부담감과 변동성 우려가 확산하면서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직접 투자나 펀드 가입을 피하려는 분위기도 영향을 끼쳤다.
ELS 사태 후폭풍이 바꾼 WM 지형도
금융사들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틈새 상품으로 ELD에 주목했다. 2024년 홍콩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부실화에 따른 불완전판매 사태로 금융당국이 대규모 과징금 제재를 가하자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ELS 상품의 신규 판매를 전면 중단하거나 무기한 보류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를 대체할 다른 수익원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ELD는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으로 민원 발생 소지가 적고 자본 규제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은행은 ELS 대체재로 ELD를 눈여겨본 것이다.
경영 재무적 관점 측면에서도 ELD는 은행에 매우 유용한 무기로 평가된다. 증시 활황으로 자금이 정기예금에서 이탈해 증시 대기 자금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정기예금 금리를 일괄적으로 올리면 은행은 조달비용 부담 증가로 순이자마진(NIM) 악화라는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반면 ELD는 최고 연 10%라는 상징적인 고금리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워 대규모 저원가성 수신 자금을 안정적인 만기(보통 12개월)로 유치할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고수익의 기회를 배분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실제 내어주는 기본 보장 이율은 정기예금보다 대폭 낮게 설정할 수 있어 평균 조달 비용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경영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은행이 자금 이동을 경계하는 것은 증시 호조에 많은 금융소비자들이 예금을 깰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은 지난 5월 말 기준 714조6576억원으로 집계됐다. 4월 말 기준 696조5524억원에서 한 달 만에 18조1052억원 늘어난 규모다.
요구불예금은 연 이자율이 0.1% 수준에 불과한 자금을 말한다. 묶여있지 않아 언제든 출금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투자 대기 자금’ 혹은 ‘증시 주변 자금’이라고도 부른다. 흔히 쓰이는 일반 수시입출금 통장, 월급 통장, 자산관리계좌(CMA)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율을 약속하는 정기예금 잔액이 944조7161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은행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자금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700조원이 넘는 이런 대기 자금이 모두 증시로 빠져나가면 은행은 자금 확보를 위해 금리 인상과 같은 큰 부담을 져야 한다”며 “정해진 조건을 충족할 경우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ELD를 통해 투자자들의 대기 자금 일부를 안정적으로 묶어두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ELD 열풍은 결과적으로 위험을 회피하려는 마케팅 전략과 비용을 낮추려는 조달 전략, 그리고 원금을 지키며 플러스 알파의 수익을 내려는 소비자 수요가 만들어낸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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