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구름 온(On)에서 달린다'..한남동 온러닝 야간 '시티런' 뛰어보니
- 러닝화 신고 서울을 달린다
운동 넘어 '도시 문화'가 된 러닝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봄기운이 완연한 저녁 8시. 서울 한남동 이태원로에 위치한 온(On) 스토어 지하 공간에 20~40대 여성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퇴근 후 서둘러 달려온 직장인, 러닝복 차림으로 일찌감치 도착한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참가자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온이 운영하는 여성 대상 시티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발에 맞는 러닝화를 골라 신었다. 다양한 사이즈와 최신 모델이 준비돼 있어 실제 코스를 달리며 신발을 체험할 수 있다. 기자 역시 이날 새로 출시된 온의 러닝화를 신고 참가자들과 함께 한남동 밤거리로 나섰다.
온은 지난 3월 한남동에 국내 첫 로드숍 형태의 브랜드 스토어 '온 스토어 한남'을 열고 러닝 커뮤니티 공간 '온 런 허브(On Run Hub)'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신발을 판매하는 매장을 넘어 러너들이 모이는 거점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온과 달리는 한남동 밤 거리
러닝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한남동 골목으로 향했다.
낮에는 사람들로 붐비던 거리가 밤이 되자 한결 차분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문을 닫은 편집숍과 레스토랑 사이를 지나고, 조용한 주택가 골목을 통과했다. 걷거나 차로 지날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한남동은 러닝 코스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진 동네다. 위로는 남산 언덕길과 해방촌, 경리단길로 이어지고 아래로는 한강과 잠수교 방면으로 연결된다. 한 지역 안에서 서울의 다양한 도심 풍경을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입지다.
3㎞ 남짓한 거리였지만 생각보다 만만하지는 않았다. 평소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를 뛰는 것과 실제 도심을 달리는 것은 상당히 달랐다. 한남동 특유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숨이 차올랐다.
참가자들의 분위기도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달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속도를 맞추고 서로를 챙겼다. 누군가는 앞에서 페이스를 이끌고, 누군가는 뒤처지는 참가자가 없는지 살폈다. 최근 러닝 크루가 빠르게 늘어나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러닝을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온 스토어로 돌아왔다. 이날 프로그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명을 낮춘 공간에서는 요가 클래스가 이어졌다. 달리기로 긴장한 몸을 풀고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참가자들은 매트를 펴고 차분하게 스트레칭과 호흡 동작을 이어갔다. 러닝과 회복, 교류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온 런 클럽은 단순히 달리기 모임에 그치지 않는다. 한남을 비롯해 잠실 롯데월드몰, 여의도 더현대서울 등을 거점으로 '온 런 클럽(ORC·On Run Club)'을 운영하고 있다.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러닝 코스를 개발하고 정기 세션을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온의 최신 러닝화를 직접 신고 달려볼 수 있는 트라이얼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초보 러너부터 숙련된 러너까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기록 경쟁보다 함께 뛰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커뮤니티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운동화 매장 아닌 러닝 아지트
온이 한남동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남동은 트렌드에 민감한 2030 소비자가 밀집한 대표 상권이다. 동시에 남산과 한강을 잇는 다양한 러닝 동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온은 이러한 입지적 특성을 고려해 한남동을 한국 러닝 커뮤니티와 소통하는 핵심 거점으로 낙점했다.
매장은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층당 약 120㎡ 규모로 구성됐다. 3층은 러닝, 4층은 아웃도어·테니스·키즈, 5층은 라이프스타일과 트레이닝 카테고리로 채웠다. 지하 1층 온 런 허브에서는 여성 전용 클래스는 물론 한강 러닝 프로그램, 초보 러너 대상 세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온은 2010년 스위스에서 트라이애슬론 선수 출신 올리비에 베른하르트가 창업한 브랜드다.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한 착화감'으로 입소문을 타며 글로벌 러닝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최근에는 미국 뉴욕과 보스턴 등 주요 러닝 도시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온이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한 배경에는 급성장하는 국내 러닝 시장이 있다. 패션업계는 국내 러닝 인구를 약 1000만 명 규모로 추산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골프와 테니스 열풍을 경험한 2030세대가 최근에는 러닝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적고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2024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달리기 참여율은 6.8%로 집계됐다. 과거 0.5% 수준과 비교하면 큰 폭의 성장이다. 반면 등산, 헬스, 골프 등 기존 인기 종목은 소폭 감소했다.
러닝 열풍이 거세지면서 소비자들의 관심도 단순히 기록이나 장비에 머물지 않고 있다. 최근 러닝 시장에서는 제품 경쟁 못지않게 커뮤니티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같은 신발이라도 누구와 뛰고 어떤 문화를 경험하느냐가 브랜드 선택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겉으로는 운동화를 판매하는 매장이지만 실제로는 러너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공간에 가깝다. 최근 스포츠 브랜드들이 경쟁적으로 러닝 크루와 커뮤니티 운영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러닝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지역과 콘텐츠, 리테일을 연결하는 도시 문화로 진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서울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러닝 거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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