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휴전 넘어 재건·에너지 투자로…중동發 훈풍 기대하는 건설업계
- 美·이란 종전 협상 타결에 중동 발주 정상화 기대
재건 넘어 LNG·원전·에너지 인프라 투자 확대 가능성 주목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미국과 이란이 종전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MOU) 체결에 합의하면서 중동 지역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양국 간 무력 충돌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내 건설업계도 중동 시장 정상화와 신규 발주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전쟁 장기화로 지연됐던 플랜트와 인프라 사업 발주가 재개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전후 복구 사업과 에너지 인프라 투자 확대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중동이 다시 국내 건설사들의 핵심 성장 무대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동은 국내 건설사들의 대표적인 해외 수주 시장이다.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최근 5년(2021~2025년)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액은 총 1792억달러(약 271조1475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중동 수주액은 약 620억달러(약 93조822억원)로 전체의 34.6%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 지역에서 118억8000만달러(약 17조9733억원)를 수주하며 해외 수주액의 25% 이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올해 1~5월 중동 수주액은 5억6000만달러(약 8474억원)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56억달러(약 8조4739억원)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을 비롯한 중동 지역 지정학적 불안이 확대되면서 주요 프로젝트 발주가 연기되거나 보수적으로 조정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 현장에서는 사업 수행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전쟁 기간에는 중동 출장 자체가 쉽지 않았고 기존 프로젝트 운영에도 부담이 있었다”며 “휴전이 현실화되면 우선 기존 사업들이 정상 궤도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주 재개 기대감…재건 시장 열리나
업계가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전후 복구 사업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전쟁 과정에서 9개국 40개 이상의 핵심 에너지 자산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했다. 발전시설과 ▲정유시설 ▲석유화학 플랜트 ▲물류 인프라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복구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과 이란 간 협상 과정에서 이란 재건 계획이 거론되면서 시장의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정유·석유화학 시설과 발전소, 가스 처리시설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발주가 나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하나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종전 협상이 본격화될 경우 전후 재건 사업뿐 아니라 유전·가스전 개발과 에너지 인프라 투자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삼성E&A와 DL이앤씨, 현대건설 등 중동 설계·조달·시공(EPC) 역량을 보유한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이미 중동 지역에서 풍부한 수행 경험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현대건설과 ▲삼성E&A ▲DL이앤씨 ▲GS건설 ▲대우건설 등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에서 정유·석유화학 플랜트와 발전소, 가스 시설 등을 수행하며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재건 사업 수혜가 단순히 중동 수행 이력보다는 실제 투입 가능한 인력과 EPC 수행 역량에 따라 갈릴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DL이앤씨와 GS건설의 재건 사업 수주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주식시장도 기대감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종전 협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삼성E&A ▲DL이앤씨 ▲GS건설 ▲대우건설 등 이른바 ‘재건주’를 중심으로 매수세가 유입되며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
재건보다 더 큰 시장은 에너지 인프라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재건 사업보다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에너지 인프라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쟁을 계기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안정성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과 ▲저장시설 ▲파이프라인 ▲원전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등 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를 경험한 각국이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에 나서면서 중동 국가들도 생산시설과 수출 인프라 확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이 추진 중인 산업 다각화 정책도 관련 투자 확대를 뒷받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원전과 LNG, 플랜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현대건설과 삼성E&A 등은 재건 사업을 넘어 새로운 성장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재건 특수나 대규모 수주 확대를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란은 여전히 미국의 경제 제재 대상국이다. 미국이 시행 중인 세컨더리 보이콧이 유지될 경우 한국 기업들의 직접적인 사업 참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재건 규모 자체도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전쟁 피해 규모와 향후 발주 계획, 재원 조달 방식 등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중동 재건 시장에는 미국과 유럽 기업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까지 대거 뛰어들 가능성이 높아 경쟁 역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번 종전 협상은 단순한 전후 복구 사업보다 중동 에너지 투자 사이클이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협상 진전 여부에 따라 정유·석유화학 플랜트와 LNG, 발전 프로젝트 등을 중심으로 발주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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