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축구장 밖으로 나온 유니폼 [월드컵 마케팅 방정식]③
- 블록코어·취향 경제가 만든 새 드레스코드
월드컵이 띄운 ‘취향 패션’의 시대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 시즌을 맞아 축구 유니폼을 일상복처럼 입는 ‘블록코어’(Bloke-core) 스타일이 인기를 얻고 있다. 경기장에서 소비되던 스포츠 저지가 거리와 일상으로 옮겨 오면서, 패션의 기준도 기능보다 ‘취향’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업계는 유니폼이 이제 응원복을 넘어 스타일을 시작하는 아이템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경기장 밖으로 나온 유니폼
“자홍색 원정 유니폼을 숄더리스 블라우스로 리폼해 입었어요.”
대학생 A씨(23)는 지난 6월 19일 한국과 멕시코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특별한 유니폼을 준비했다.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 원정 경기에서 착용하는 자홍색(마젠타 컬러) 공식 유니폼을 어깨를 드러낸 블라우스 형태로 리폼하고, 짧은 데님 반바지와 함께 스타일링했다. 경기 응원복이라기보다 일상에서 마주칠 법한 룩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A씨는 “처음 공개됐을 때는 무궁화 패턴과 자홍색 조합이 낯설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막상 입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세련됐다. 너무 튀는 레드보다 자홍색이 오히려 데일리로 입기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유니폼은 응원을 위한 복장을 넘어 일상 속 스타일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듯했다.
‘잘파(Z+Alpha)’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블록코어란, 축구 유니폼이나 트랙 재킷·스포츠 저지를 일상복처럼 섞어 입는 스타일을 뜻한다. 과거에는 경기장에서만 소비되던 유니폼이 하나의 취향이 담긴 의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옷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는 분위기다.
블록코어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아디다스도 관련 마케팅에 힘을 주고 있다.
나이키는 지난 6월 6일 서울 남산골한옥마을에서 ‘토마 서울 2026’을 열었다. 스트리트 풋볼 기반 문화 플랫폼으로 축구를 중심으로 패션·음악·서브컬처가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섞인 행사였다. 나이키는 경기 공간과 별도로 마련된 플리마켓 존에서 서브컬처 기반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축구 문화를 풀어내도록 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국가대표 유니폼을 다시 해석한 리폼 작업이었다. 붉은 대표팀 유니폼은 오프숄더 톱으로 바뀌고, 등번호 저지는 원피스와 비키니 수영복으로 재구성됐다. 축구화는 하이힐로 새롭게 바뀌며 블록코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토마 서울 2026’을 찾은 관람객들은 완전히 다른 옷이 된 유니폼과 장비를 직접 착용한 뒤 사진을 찍으며 나이키가 만든 색다른 서브컬처를 즐겼다.
글로벌 리딩 브랜드는 로고와 디자인을 엄격하게 관리해왔지만, 나이키는 스포츠를 단순한 관전 콘텐츠가 아닌 라이프스타일과 문화가 섞이는 실험의 장으로 확장하고 있다. 창작자와 커뮤니티의 재해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흐름이다.
아디다스도 적극적이다. 아디다스는 6월 주말마다 서울 명동 ‘아디다스 브랜드 플래그십 서울’에서 저지 리폼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고객이 구매한 유니폼을 보다 과감하고 감각적인 스타일로 변형할 수 있도록 매장에서 지원했다. 셔링 디테일·크롭 실루엣·코르셋 스트링 등 다양한 변형이 가능해 큰 화제를 모았다.
아디다스 측은 “같은 제품이라도 나만의 취향과 감각을 더해 차별화하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메이드 포 유’와 같은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운영해 왔다”며 “월드컵을 맞아 저지 리폼 이벤트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취향이 시장이 되는 코어 경제
패션 시장은 ‘코어’(Core)라는 이름의 취향 중심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발레리나의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발레코어’, 아웃도어 감성을 일상복에 접목한 ‘고프코어’ 등 다양한 스타일이 동시에 소비되며 시장을 세분화하고 있다. 코어는 시즌 트렌드라기보다 하나의 취향 언어로 자리 잡으며 각각이 독립적인 시장처럼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패션 비즈니스 매체 보그 비즈니스는 코어 문화가 알고리즘을 통해 취향 단위로 쪼개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짧은 유행이 아니라 소셜네트워크(SNS) 플랫폼 안에서 계속 복제되고 확장되는 스타일 생태계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더 비즈니스 오브 패션은 ‘패션 산업이 더 이상 몇 개의 큰 트렌드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서로 다른 미학이 동시에 존재하며 시장을 나누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는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이 들어갈 코어 스타일 세계를 고르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정 브랜드보다는 ‘어떤 분위기를 선택하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됐다는 뜻이다.
SNS 알고리즘은 비슷한 취향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며 특정 스타일을 빠르게 확산시킨다. 피드 안에서 유사한 이미지와 무드가 계속 등장하면서 개별 취향은 점차 하나의 스타일 코드로 굳어진다.
취향은 더 이상 개인의 감각에 머물지 않는다. 클릭과 소비 데이터로 축적되고, 다시 비슷한 콘텐츠와 상품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소비 단위처럼 움직인다.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을 ‘코어 경제’(Core Economy)라고 부른다. 하나의 트렌드가 시장을 끌고 가기보다 여러 취향이 동시에 존재하며 소비를 나누는 구조다.
시장의 작동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하나의 이미지나 시즌 키워드로 소비자를 설득하기보다, 서로 다른 취향 집단을 동시에 겨냥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 이른바 ‘코어’ 단위로 시장이 쪼개지고 움직이는 흐름이다.
브랜드 전략 역시 그 흐름에 맞춰 바뀌고 있다. 하나의 정체성을 강조하기보다 여러 세계관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 힘을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블록코어를 포함한 코어 흐름은 소비자가 제품보다 먼저 자신이 속하고 싶은 문화를 선택하는 변화”라며 “앞으로는 브랜드 인지도보다 어떤 취향 세계를 설득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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