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모나미의 윤리강령, K뷰티 ODM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을까
- '국민볼펜' 모나미가 모나미코스메틱 통해 신성장 동력 찾아
영업 적자 폭 늘어난 상황 속 지름길 보다 정공법 '눈길'
브랜드 출시해 당장 반짝 인기보다
K-제조업이라는 근간을 뷰티에도 세울 듯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화장품 ODM(제조자개발생산)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모나미가 제조업이 나아가야 할 정석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국민볼펜’ 기업으로 불리는 모나미는 학령인구 감소와 온라인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성장 속도가 둔화됐다. 최근에는 주가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상장폐지 논란도 일고 있다. 보통 기업은 최대 이윤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현금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 그러나 모나미는 사뭇 다른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모나미’라는 이름을 앞세워 지름길을 택하기보다, K-뷰티 제조기업으로서 정도를 걷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숏컷보다 정공법
“모나미 자체 브랜드 화장품을 출시할 계획이 있으신가요?”(기자)
“아니요. 모나미 자체 브랜드(PB)를 만들 계획은 현재도,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박경현 모나미코스메틱 대표)
지난 6월 24일 모나미코스메틱 경기도 용인 공장에서 만난 박 대표는 PB 제품 출시 계획을 묻자 고개를 저었다. 자체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고, 철저하게 파트너사의 제품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였다.
사뭇 의외다. 모나미는 2023년 영업 적자를 시작으로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는 1분기(1~3월)에만 27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우려를 사고 있다. 시가총액도 줄면서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코스피 상장폐지 요건이 올 하반기부터 300억 원, 2027년에는 500억 원으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종가 기준 모나미의 시가총액은 약 227억 원에 그친다.
적자 폭이 커지면 기업은 단기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분투한다. 돈은 많이 들지만 효과는 느린 인프라 투자를 줄이고, 수익성 높은 사업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모나미가 화장품 사업을 본격화한다고 알려졌을 때 “모나미 이름을 딴 뷰티 브랜드를 론칭하고 SNS와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힘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기업이 지름길을 택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런데 모나미는 화장품 ODM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뒤, 대규모 시설 투자를 감행하며 오히려 더 긴 길을 선택했다. 2023년 설립된 모나미코스메틱은 브랜드 확장 대신 생산 설비와 연구개발, 용기 원천 기술에 수백억 원을 투자해왔다. 약 3,100평 규모의 용인 공장을 세운 뒤 R&D부터 제조, 품질관리, 물류까지 모든 공정을 한 번에 처리하는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했다. 말 그대로 지난 3년간 신사업을 위한 투자와 준비에 집중해온 셈이다. 모나미코스메틱 관계자는 “초기 투자금 약 222억 원을 포함해 지속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연간 최대 생산능력은 4500만 개”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한국 대표 제조기업인 모나미가 이번에도 정공법을 택했다고 본다. 탄탄한 제조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브랜드는 시장 트렌드에 따라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단기 마케팅 효과에 기대기보다, 모나미가 수십 년간 축적해온 정밀 플라스틱 성형 및 잉크 배합 기술력을 화장품 제조 기술에 접목하는 것이 진짜 제조업의 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용기 설계와 내용물 생산을 자체적으로 동시에 수행하는 ‘턴키(Turn-key)’ 체계다. 필기구 제조를 통해 다져진 미세 용기 금형 기술력을 화장품에 고스란히 이식했다. 최근 국내 제조업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공장 없는 브랜드나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모나미는 제조 역량 자체를 다시 성장의 축으로 삼는 묵직한 역발상을 선택했다.
철학, 제조업의 또 다른 이름
단기 성과보다 절차와 원칙을 우선하는 모나미 특유의 기업 철학은 회사 공식 홈페이지 첫 인삿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삶은 인생이라는 종이 위에 써 내려가는 펜의 기록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지우고 싶지 않은 기록이 있습니다. 모나미는 언제나 당신의 행복한 기록과 함께합니다’.
‘모나미 153’이라는 볼펜이 그랬듯, 세상의 모든 것은 잊힐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 언제나 고객의 곁에서 함께하겠다는 간결한 다짐이 담겨 있다.
원칙을 중시하는 태도는 기업이 마땅히 따라야 할 윤리강령에서도 더욱 구체화된다. 모나미는 윤리강령을 통해 “직원은 회사의 이익이나 본인의 업적 성과와 충돌되는 어떠한 유혹이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해충돌 상황에서의 판단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보장해야 할 권리와 영역으로 바라본 것이다. 대다수 기업이 직원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사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허용 기준과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어떠한 나라에서 업무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소위 ‘급행료’를 내는 것이 관례이며, 이것이 회사로 하여금 법 위반이라고 할 수 없는 관례인 경우가 있습니다. 더하여 상 관례상 선의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에게 금전이나 기념품을 선물하는 관례가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러한 급행료 및 선의를 위한 금전 및 선물 지급은 아래의 규정 하에서 허용됩니다”라며 구체적인 행동 방향을 제시했다. 선언적 문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운영 시스템으로 구현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윤리강령을 보면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철학이자 나침반”이라며 “모나미가 모나미코스메틱을 통해서도 제조업이 가야 할 도리를 지키는 정공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모나미의 필기구와 모나미코스메틱의 화장품은 이종 산업처럼 보이지만, 정밀 가공 기술과 엄격한 품질 관리라는 점에서 제조업의 뿌리는 같다. 한국 제조업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모나미가 화장품 제조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어떤 성과를 낼지 뷰티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K뷰티의 진정한 경쟁력은 브랜드 파워보다 탄탄한 제조 기술과 개발 역량에서 나온다”며 “모나미가 축적해온 정밀 제조 기반과 철학을 화장품에 성공적으로 이식한다면 독보적인 제조 전문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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