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슈
수십조 쏟아부어도 환율 방어에는 역부족…1600원 시대 오나
- 외환당국, 1분기 136억달러 순매도…원·달러 환율 1500원 중반대로 치솟아
美 금리 인상 전망·외인 '셀 코리아'에 영향
엔저 동조화 고착…“최악의 경우 1600원 돌파 가능성”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원화 가치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외환당국이 올해 1분기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를 저지하기 위해 역대 네 번째 규모에 달하는 외환을 투입했음에도 환율은 1500원 중반대로 치솟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6년 1분기 외환시장 순거래액’ 자료에 따르면 외환당국이 올해 1분기 시장안정화를 위해 외환시장에서 실시한 외환 순거래액은 -136억2800만 달러(약 21조1200억원)로 집계됐다. 외환 순거래액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외환당국이 원화 가치 급락을 막고 환율 상승세를 억제하기 위해 시장에 달러화를 팔고 원화를 사들이며 개입을 단행했음을 의미한다.
외환당국은 지난해 1분기 -29억6000만 달러, 2분기 -7억9700만 달러, 3분기 -17억4500만 달러에 이어 4분기에는 -224억6700만 달러를 순거래한 바 있다. 원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수십조원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일 1552원까지 치솟았다. 일반 소매 시장인 공항 환전소의 체감 환율은 이미 1600원 선을 넘어섰다. 하나은행 인천공항 영업점의 매수 기준 원·달러 환율은 1612.0원까지 올라 거래됐다.
원화 가치가 이처럼 떨어지는 배경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시그널이 거론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최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했으나,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를 근거로 향후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미국과 한국 간의 금리 격차가 벌어지거나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굳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면서 달러화 매수세가 한층 강해졌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여준 이탈 행보 역시 환율 상승을 직접적으로 부추기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KOSPI)에서 지난 6월 약 47조원에 달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하루에만 약 7조70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순매도한 날도 있었다. 그간 주가가 급등했던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차익 실현에 나서는 동시에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며 매물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이렇게 팔아치운 대금을 달러화로 바꾸면서 원화 가치 하락에 강한 하방 압력을 가했다는 해석이다.
원화 가치가 엔화 약세에 강하게 동조하는 현상도 환율 하락을 막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현재 160엔을 웃도는 수준을 기록 중이다. 엔화가 촉발한 약세 흐름에 원화가 그대로 연동되면서 원화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2022년 이후 글로벌 외환시장이 ‘달러 대 비달러 통화’ 간의 대결 구도로 굳어진 상황에서 엔화 가치 폭락이 원화 가치를 함께 끌어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이달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환율을 떨어뜨리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600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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