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하루 1조 번 삼성전자...파운드리·성과보상·투자부담 숙제 남았다
- AI 슈퍼사이클 올라탄 삼성…HBM 효과에 역대급 실적
메모리 호황에도 비메모리 적자 지속…하반기 구조개혁 시험대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삼성전자가 다시 한번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에 우뚝 섰다. 올 2분기 사상 유례없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역대급 실적이 가져온 환호의 이면에는 향후 삼성전자의 장기적 미래를 결정지을 무거운 구조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잠정실적 공시를 통해 매출 171조원, 영업이익 89조4000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하루에 1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거둔 셈이다. 매출은 전년 2분기(74조5700억원) 대비 129.31% 늘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조6800억원에서 1810.26% 급증했다.
앞서 삼성전자 노사는 반도체(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에 영업이익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임금협상에 합의했다. 협상이 진행 중이었던 1분기 성과급분 약 6조원과 2분기 성과급분 11조원을 고려하면, 성과급을 제외하기 전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약 106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 첫 돌파라는 기록적인 성적을 낸 것이다.
이번 어닝 서프라이즈의 근간은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러온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기 시작하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HBM 수요 폭발이 가져온 연쇄 효과다. HBM은 기존 D램 공정에 비해 웨이퍼 소모량이 많고 생산 수율이 낮아 동일한 수량을 생산하더라도 훨씬 많은 설비 능력을 필요로 한다. 삼성전자가 HBM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한정된 생산 라인을 HBM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하자, 역설적으로 기존 시장의 주류였던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의 생산 능력이 축소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시장에는 범용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됐고 철저한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 빅테크 기업들이 제품 확보를 위해 가격 인상을 수용하면서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부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직접적인 기폭제가 됐다.
실적 착시 경계론, AI 인프라 투자의 지속성 의문
그러나 이러한 역대급 실적이 삼성전자의 장기적인 독주나 지속적인 호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신중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현재의 막대한 이익이 시장 구조 변화에 따른 일시적 단가 상승 효과에 기대어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하반기 이후 삼성전자가 맞이할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불확실성은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의 지속성 여부다.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AI 투자는 가히 폭발적이지만, 투자 주체인 빅테크 기업들이 투입한 자본 대비 명확한 수익 모델을 창출하지 못할 경우 시장은 급격히 냉각될 수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AI 거품론’이나 ‘투자 피크아웃’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삼성전자의 실적 역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거대한 수요처의 향방에 실적이 좌우되는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 다른 과제는 비메모리 부문,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의 누적되는 적자 구조다. 메모리 사업부가 수십조원의 이익을 다지는 동안에도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부문은 여전히 수조원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증권가에선 2분기 영업이익 중 메모리 사업 이익이 90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반도체를 설계하는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은 2조원 규모 영업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업계 1위인 대만 TSMC와의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선단 공정 수율 및 대형 고객사 확보 측면에서 오히려 벌어지는 양상이다. 삼성전자가 3나노미터(nm) 이하 초미세 공정에서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구조를 도입하는 등 기술적 승부수를 띄웠으나, 실제 양산 수율 안정화와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고객사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파운드리 부문의 적자 폭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턴어라운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메모리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이 비메모리 부문의 공백을 메우는 데 소모되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내부 성과보상 갈등과 천문학적 설비투자 부담
내부적인 재무 및 노사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는 복병이다. 역대급 이익 달성에 따라 사내 구성원들의 대규모 성과급 및 보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거세지고 있다. 지난 업황 악화 시기에 고통을 분담했던 직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조직 안정과 우수 인재 이탈 방지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이는 하반기 막대한 비용 지출로 직결돼 당장의 이익을 잠식하는 요인이 된다. 노사 간 합리적인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생산 차질이나 조직 결속력 저하로 이어질 리스크도 존재한다.
여기에 미래 경쟁력 유지를 위한 설비투자(CAPEX) 부담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차세대 메모리 공정 고도화, 평택 및 미국 테일러 공장 등 국내외 파운드리 라인 증설에는 매년 수십조원의 고정비 투입이 불가피하다. 기술 전환 주기가 빨라질수록 장비 고도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하루 1조원이라는 가공할 만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배당금 지급과 세금, 차세대 기술 개발 및 라인 증설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자금 수요를 고려하면 삼성이 체감하는 재무적 압박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거둔 2분기 실적은 대한민국 경제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시장의 우호적인 거시환경에 따른 단기적 수혜를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호황기 동안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반기 삼성전자의 진정한 성패는 외형적인 매출이나 영업이익 숫자가 아닌 구조적 숙제들의 해결 여부에 달려 있다. 차세대 HBM 시장에서의 기술 주도권 공고화, 파운드리 사업부의 수율 안정 및 흑자 전환 기반 마련, 내부 보상 체계의 합리적 조율과 효율적인 자본 배분 전략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삼성이 눈앞의 화려한 숫자를 넘어 내실을 다지고 진정한 초격차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을지, 전 세계 반도체 업계와 자본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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