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 사법 리스크에 '마이너스 래깅 효과'까지 '하반기 적신호'
- 미국과 이란 상호 공습에 호르무즈 해협 긴장감 고조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에 9월부터 원유 수급 차질 전망
높은 가격 주고 도입한 원유 정제 공정 투입, 하반기 적자 불가피
[이코노미스트 김두용 기자]
정유업계가 ‘담합 리스크’와 ‘공급망 불안’ 등이 겹치면서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상반기에 래깅(원재료 투입 시차) 효과로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하반기에는 악재로 인한 실적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
1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의 상호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원유 수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8월까지 도입 물량을 확보했지만 9월 이후 중동산 원유 확보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약 2000만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통과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기에 해협 상황이 국내 원유 수급과 정유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에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에서 다른 선박으로 원유를 옮겨 싣는 선박 간 환적 방식까지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운송 시간과 비용이 늘어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미국과 이란의 맞불 소식에 원유 가격도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두바이유는 이달 초 배럴당 63달러대까지 하락했지만, 종전 협상 불확실성이 커진 이후 다시 70달러선을 넘어섰다. 이날 9월 인도분 브렌트유의 경우 전 거래일 대비 3.5%가량 오르며 배럴당 78.60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도 이날 8월 인도분 기준 3.5%가량 오른 배럴당 74달러를 넘어섰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평상시 배럴당 0.5달러 수준이던 리스크 프리미엄이 아직도 20달러를 넘고 있다. 국제유가가 75달러라고 하더라도 실제 도입 가격은 95달러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주고 확보한 원유를 2분기 말부터 정제공정에 투입하고 있다. 이처럼 비싸게 만든 석유 제품을 국제유가 급락으로 인해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마이너스 래깅 효과가 반영되고 있다. 이에 5월 말부터 적자로 전환한 정유사가 생겼고, 3분기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이 같은 원유 공급망 불확실성에 산업통상부는 이날 문신학 차관 주재로 정유·해운업계 및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원유 수급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국내 정유 4사는 ‘담합 리스크’도 떠안고 있다. 검찰은 미국과 이란 전쟁 직후 담합으로 유가를 폭등시킨 혐의를 조사했다. 타사와 유가 인상 시기와 규모를 교환하고, 전쟁 직후 유가를 대폭 인상한 HD현대오일뱅크와 가격결정부서 직원 2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이 파악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전체 담합 규모는 총 14조2000억원이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이들의 담합 가격을 참고해 인상한 것까지 감안하면 총 26조원 상당의 담합 효과가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담합’ 여부는 다툼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장기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HD현대오일뱅크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1년 과징금 총 4348억원이 부여된 정유사의 ‘원적지 담합사건’도 4년 동안 재판이 이어졌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의 손실 보전 작업도 지체되고 있다. 정부는 4조2000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하고 정유사의 손실 보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담합이라는 사법 리스크가 터지면서 여론 등이 악화되면서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검찰의 조사에 따르면 정유사 직원들이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 듯”이라는 실제 대화를 주고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법 리스크가 터지면서 정부와 정유사 간 최고가격제 손실 보전 작업의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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