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시장 파수꾼인가, 재계 저승사자인가…강해진 공정위의 두 얼굴
- [공정위는 공정한가]①
전분당 담합 7475억원 등 생활물가 옥죄던 대형 담합 연속 적발
‘조사국’ 21년 만에 사실상 부활, 정원 1000명까지 늘릴 전망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올해 부과한 과징금이 2조원을 넘어섰다. 밀가루와 설탕, 전분당, 인쇄용지 등 생활물가와 밀접한 분야에서 대형 담합을 잇달아 적발한 결과다. 공정위는 인력을 늘리고 복합적인 불공정행위를 전담할 조사 조직도 신설한다.
공정위가 ‘경제 검찰’로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담합과 독과점을 깨고 시장의 경쟁 질서를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맞춰 기업을 과도하게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공정위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과징금과 인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재가 실제 경쟁 회복으로 이어졌는지, 법원에서도 유지될 만큼 정교했는지는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생활물가부터 독과점까지…넓어진 제재 전선
올해는 전분당 제조사 담합 7475억원과 밀가루 제분사 담합 6710억원, 설탕 제조사 담합 3960억원, 인쇄용지 제조사 담합 3383억원 등 굵직한 사건이 잇달아 처리되면서 과징금이 2조원을 넘어섰다.
개별 기업의 하도급법 위반이나 부당지원뿐 아니라 시장에 장기간 고착된 가격·물량 담합과 독과점 기업의 불공정행위가 주요 조사 대상으로 떠올랐다.
제재 기준도 강화됐다. 공정위는 담합 과징금 부과 하한율을 기존 0.5%에서 10%로 높이는 고시 개정을 지난 4월 완료했다. 과징금 상한율을 관련 매출액의 20%에서 30%로 높이고,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의 상한율도 6%에서 20%로 올리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상습 담합 기업에는 사업정지나 등록 취소를 요청하고 담합 사건의 처분시효를 12년에서 15년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경쟁을 제한하는 시장구조를 개선하는 시정조치도 검토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대형 담합 제재가 생활물가 부담을 낮췄다고 평가한다. 지난 8월 4일 발표한 하반기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 따르면 밀가루와 설탕 등 담합 품목 가격은 최대 26.5%, 빵과 라면, 과자 등 관련 제품 가격은 최대 14.6% 하락했다.
다만 가격에는 국제 원재료 가격과 환율,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 기업별 가격 정책도 영향을 미친다. 일부 가격이 내려갔더라도 누적된 상승분에는 미치지 못해 소비자 체감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징금의 성과는 부과액보다 경쟁이 회복되고 소비자 가격과 거래 조건이 개선됐는지를 통해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인력 404명 증원…‘조사국’ 사실상 부활
공정위는 지난 3월 167명을 늘린 데 이어 오는 10월 237명을 추가로 증원할 계획이다. 증원이 마무리되면 전체 정원은 10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여러 법 위반이 얽힌 중대 불공정행위를 통합 조사하기 위한 중점조사기획단도 신설한다. 대기업과 독과점 기업의 기획조사를 담당했던 조사국이 2005년 폐지된 지 21년 만에 사실상 부활하는 것이다.
중점조사기획단은 존속 기한을 2년으로 설정한 한시 조직이다. 조사권 비대화와 기업 활동 위축에 대한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5월 “다양한 법 위반이 결합된 중대 불공정행위가 발생하고 있다”며 “관련 조직이 사건을 나눠 조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복합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장획정과 경쟁 제한 효과, 부당이익 등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경제분석국도 신설한다. 조사와 제재의 객관성, 법적 완성도를 높이려는 취지다.
공정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사건 처리 건수는 전년 동기보다 17.1% 늘었고 평균 처리 기간은 24.6% 단축됐다. 늘어난 인력과 전문 조직을 활용해 사건 적체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4일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공정위가 경제 검찰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 같다”며 “비정상 거래로 부당이익을 얻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도록 지켜봐 달라”고 독려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시장과 기업을 사전에 모니터링한 뒤 진행하는 조사가 늘었다”며 “가격 결정과 거래 구조 전반을 공정위가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 파수꾼인가, 기업 압박인가
강한 공정위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담합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은 가격 경쟁을 막고 소비자와 중소기업에 피해를 준다. 이를 적발하고 경쟁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공정위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문제는 공정위가 틀어쥔 막강한 권한이 정책적 목적이나 여론에 따라 행사될 가능성이다. 물가가 오를 때마다 기업의 가격 결정을 불공정행위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정상적인 영업과 투자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경제적 요인에 따른 가격 인상과 경쟁 제한 행위를 구분하는 분석이 필요하다.
과징금 규모가 커질수록 법적 완성도도 중요해진다. 대형 처분이 행정소송에서 취소되면 기업과 시장에 혼선이 생기고 과징금 환급에 따른 국고 부담도 발생할 수 있다.
공정위는 중요 사건에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소송대리인 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후적인 소송 대응 보강만으로는 반복되는 패소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재의 정당성을 법원에서 인정받으려면 조사 단계부터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고, 위법 행위가 시장과 소비자에 미친 영향을 뒷받침할 정교한 경제분석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정위의 권한이 강해지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그 권한이 정치적 목적이나 여론이 아니라 법리와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행사되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의 본질은 시장경제의 규칙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며 “정권의 기조에 따라 제재 강도가 달라지는 모습을 피하고 정교한 경제분석과 일관된 원칙을 바탕으로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품목 담합 제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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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분당 담합: 7475억원
• 밀가루 담합: 6710억원
• 설탕 담합: 3960억원
• 인쇄용지 담합: 3383억원
• 4대 은행 LTV 담합: 272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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