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정치는 갈라져도, 주택공급에는 한마음[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주택공급 이것이 문제다]①
주택공급 위해 규제 걷어낸 미국
한국은 반대 행보…다른 국가 사례 살펴야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얼마전 한 여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아이디어 하나가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었다. 폐기되는 시내버스를 개조해 대학가 청년들의 임시 주거공간으로 쓰자는 일명 ‘폐버스 하우스’ 제안이었다. 청년들은 분노했고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기괴하다’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세금으로 수요를 누르면서 공급을 늘리겠다는 두 개의 페달을 동시에 밟는 정부 앞에서, 정치권의 상상력은 '버스 개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초당적 합의라는 낯선 사건
주택공급이 시급한 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집값 폭등으로 정치권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20년 이후 미국 집값은 54% 뛰었고 세입자 가구의 절반 가까운 2270만 가구가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쓰고 있다(하버드대 JCHS 기준). 집값과 임대료에 대출금리와 보험료까지 한꺼번에 오르는 상황은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를 가리지 않았다. 이 위기의식이 정치적 앙숙을 한 테이블에 앉혔다. 공화당 팀 스콧 상원 은행주택도시위원장과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간사가 공동 초안을 짰고, 발의된 법안 60여 개를 하나로 묶어 상원에서는 85 대 5, 하원에서는 358 대 32의 압도적 지지 속에 이 법을 통과시켰다.
하원이 독자 수정안을 얹어 상원과 이견이 생기자 백악관이 직접 나서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했을 만큼,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400쪽에 달하는 이 법은 1990년 이후 최대 규모의 연방 주택입법으로 평가받는 '21세기 로드 투 하우징법(21st Century ROAD to Housing Act, 2026년 7월 11일 시행)'이다. ROAD는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되살린다(Renewing Opportunity in the American Dream)'는 뜻의 약자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법이 예산을 한 푼도 늘리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의회예산국(CBO)은 이 법이 재정적자를 늘리지 않는다는 공식 비용추계를 내놓았다. 새 예산 없이 기존 제도와 절차를 손보는 데 초점을 맞춰 규제 완화 중심으로 60여 개 조항을 완성했다는 뜻이다.
규제를 걷어내는 것이 공급이다
이 법의 핵심은 ‘규제 완화’다. 대표적인 것이 ‘포인트 액세스 블록’(point-access block), 단일계단형 아파트를 허용한 것이다. 한국은 화재 안전을 이유로 일정 규모 이상 건축물이면 반드시 계단을 두 개 이상 두도록 하는데, 이 법은 HUD(연방주택도시개발부)로 하여금 단일계단 6층 건물의 표준 설계기준을 마련하고 안전성을 검증하는 시범사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계단을 줄인 만큼 건축면적이 늘어난다. 표준화된 사전설계도면(패턴북) 제공해 지자체가 매번 새로 도면을 검토하지 않고 사전 승인된 안을 그대로 쓸 수 있다. 건축허가 기간이 대폭 줄어드는 것이다. 토지이용 규제도 손을 댔다. HUD가 지자체 조닝·용도지역의 모범사례 기준을 마련하고, 인허가 간소화를 추진하는 주·지방정부에 재정을 지원하는 인센티브 방식을 도입했다.
소규모·도심 재개발은 환경영향평가(NEPA) 절차를 대폭 줄여 역시 공급의 속도를 높였다. 공장 조립형 모듈러 주택 규제도 영구 섀시(바퀴 달린 하부 골조) 부착 의무를 없애고, 모듈러 사업자의 금융 장벽 완화와 표준 건축기준 연구까지 HUD에 지시했다.
규제완화 다음은 돈이다. 미국의 대도시와 카운티에 내려보내는 포괄보조금 CDBG(Community Development Block Grant)는 한국의 보통교부세처럼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쓰는 예산이다. 2029년부터는 배분액을 주택 증가율과 연동시켜 규제완화에 소극적인 곳은 덜 받게 하고, 앞장선 곳은 매년 2억 달러 ‘혁신기금’이라는 당근을 받게 된다.
다세대주택(5호 이상의 아파트) 건설 대출의 보증한도도 현실화했다. 낡은 공공주택을 민간자본으로 고칠 수 있게 임대지원(RAD) 전환 프로그램의 상한을 10만호 늘리고 제도 시한도 없앴다. 대형 기관투자자의 단독주택 매집 제한도 350호 이상 보유한 투자자의 기존 매입만 금지하고 신축 임대사업과 상장리츠는 제외해, 시장 기능은 살리면서 왜곡만 손봤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세금과 대출 규제로 수요를 틀어막은 채 공급정책 역시 민간이나 규제완화보다는 공공중심의 추가택지 확보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로드 투 하우징법을 관통하는 원칙과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민간이 앞장서고 공공은 조력자
이 법에서 연방정부의 역할은 시행자가 아니라 규칙을 다시 쓰고 돈줄로 유도하는 조력자다.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민간이 짓는다. 물론 민간이 한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다. 속도가 당장 빨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공공 혼자보다 민간과 손잡을 때 시너지가 더 클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LH가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직접시행, 건설사들은 단순 시공을 맡는 ‘민간참여사업’으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한다. 이때 민간은 사업 주도자가 아니라 공공이 짠 판 안에서 브랜드와 시공력을 대는 협력사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공주택사업의 주역이 될 LH는 정작 부채 문제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조직 개편을 검토 중이다. 주택공급의 역할이 공공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사이, 그 무게를 감당할 주체의 조직과 재무구조부터 손봐야 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미국의 입법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계단 하나 자재 하나 예산 한 줄까지 촘촘히 엮어 규제를 걷어내는 일을 여야가 함께 해냈다는 사실이다.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은 순간의 기발한 발상이 아니라 정부와 여야의 지루한 합의의 결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부도 국회도 이런 합의를 위한 시간은 보이지 않고, 말로만 비판하고 변명하는 ‘요란한 정치의 시간’만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공급 정책이 제대로 수립되고 시행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의 성공·실패 사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규제완화와 협치를 배웠다면 영국은 다소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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