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은 누가 만드나…‘맛집’ 가이드의 빛과 그림자 [스페셜리스트뷰]
- 맛집 선택 이정표에서 셰프 압박 권력으로
평가 공정성·투명성 높여야 신뢰도 지켜
[안병익 식신 대표] 맛있는 식당을 찾는 방법은 많다. ▲포털 검색 ▲블로그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지인의 추천 등이다. 유명한 식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그곳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보가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어느 식당을 믿어야 할 것인지는 더 어려운 문제가 됐다. ‘맛집’이라는 이름 아래 광고와 콘텐츠, 개인적 취향과 일시적 유행이 뒤섞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식 가이드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식 가이드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미쉐린 가이드’와 사용자 빅데이터와 전문가 평가를 결합한 ‘식신’,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레스토랑 평가서로 자리 잡은 ‘블루리본 서베이’ 등을 꼽을 수 있다.
좋은 식당을 가려낸다는 목표는 같지만 평가 방법은 상당히 다르다.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다기보다 ‘전문가의 눈’과 ‘평가단의 집단지성’이라는 서로 다른 렌즈로 대한민국의 미식 지도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타이어 회사가 만든 세계 최고 미식 권력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 자동차 여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1900년 운전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여행 안내서에서 출발했다. 주유소와 정비소, 호텔, 식당 정보를 실어 자동차 여행을 늘리고 궁극적으로 타이어 소비를 확대하려는 목적이었다. 이후 1926년 별 제도가 도입됐고 1931년 현재와 같은 1~3스타 체계로 발전했다.
오늘날 미쉐린에서 ▲별 하나는 훌륭한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 ▲별 두 개는 일부러 찾아갈 가치가 있는 뛰어난 요리 ▲별 세 개는 그 식당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특별히 여행할 가치가 있는 탁월한 요리를 뜻한다. 미쉐린은 ▲재료의 품질과 맛의 조화 ▲조리 기술의 완성도 ▲요리에 드러나는 개성 ▲시간과 메뉴 전반에 걸친 일관성을 평가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에서는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이 처음 발표됐고 2024년 부산으로 영역을 넓혔다. 미쉐린 공식 자료상 2026년은 한국 진출 10주년에 해당한다. 현재 미쉐린 공식 사이트에는 한국의 스타 레스토랑 39곳이 올라와 있다.
미쉐린의 등장은 한국 미식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서울과 부산의 레스토랑들이 세계 미식 여행자의 지도에 올라가기 시작했고, 한식 파인다이닝은 국제적인 평가의 언어를 획득했다. 한국적 식재료와 발효, 장, 제철 음식, 궁중음식 등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식당들은 세계 미식계에서 한국 음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문화적 창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미쉐린이 대한민국 전체의 미식 지도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쉐린의 한국 평가 대상은 서울과 부산에 집중돼 있다. 광주와 대구·대전·제주·전주·강릉을 비롯한 전국 수많은 지역의 식당들은 애초에 같은 평가 무대에 올라와 있지 않다.
전문 평가원이 모든 지역과 골목의 식당을 찾아가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반면 수많은 이용자의 선택은 전국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오랜 기간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노포와 지방의 숨은 고수, 특정 메뉴 하나를 수십 년 지켜온 전문점도 대중의 평가 속에서는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맛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없다. 평가 방식이 다른 가이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서로 비교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다.
SNS가 만든 맛집, 별이 만든 권위
미식 가이드와 함께 오늘날 맛집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힘은 SNS와 알고리즘이다.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식당을 보면 ‘저렇게 기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줄이 길다는 사실이 음식의 맛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훌륭한 음식이 줄을 서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방송과 유튜브, SNS 마케팅이 줄을 만들 때도 있다.
요즘 맛집은 입소문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유튜브 영상 ▲방송 프로그램 ▲숏폼 등이 평범했던 식당을 하루아침에 ‘성지’로 만들기도 한다. 소비자는 음식을 먹기도 전에 ‘유명한 식당’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소비한다.
여기에는 밴드왜건 효과도 작용한다. 많은 사람이 선택한 것을 좋은 것으로 판단하는 심리다. 어렵게 예약하고 오랫동안 줄을 선 뒤에는 매몰 비용 효과도 생긴다. 기대만큼 맛있지 않아도 “이 정도 기다렸으니 분명 괜찮은 곳일 것”이라고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쉽다.
그래서 좋은 미식 가이드는 단순히 ‘지금 가장 유명한 곳’을 보여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화제성과 광고, 일시적 유행을 걷어내고 실제로 방문했을 때 만족할 가능성이 높은 곳을 골라내야 한다.
문제는 가이드의 권위가 커질수록 별 하나의 힘도 지나치게 커진다는 것이다. 별을 받으면 예약 전화가 폭주하고 해외여행객이 몰려온다. 식당의 가격과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셰프의 경력까지 달라진다. 반대로 별을 잃으면 단순한 한 해의 평가가 아니라 셰프의 실패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프랑스의 유명 셰프 세바스티앙 브라는 2017년 자신의 레스토랑 르 쉬케가 20년 가까이 유지하던 미쉐린 3스타 평가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매일 내보내는 수백 접시 가운데 어느 접시를 익명의 평가원이 먹게 될지 모른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요리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미쉐린은 결국 2018년 가이드에서 식당을 제외했다.
미식 가이드가 셰프에게 주는 압박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프랑스 셰프 베르나르 루아조다.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경쟁 미식 가이드인 고미요가 그의 점수를 낮췄고, 미쉐린에서도 별 하나를 잃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리적·경영적 압박을 받던 그는 결국 52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사망 당시에도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하고 있었고 개인적·경영적 요인을 포함한 복합적인 배경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은 미식 가이드의 평가가 한 사람의 삶과 사업에 어느 정도까지 무게를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별은 본래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기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셰프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훈장이 되고, 투자자와 언론에는 식당의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숫자가 되며, 직원들에게는 매일 실수해서는 안 되는 압박으로 바뀔 수 있다.
평가받지 않을 권리는 있는가
미쉐린을 둘러싼 오랜 논쟁은 평가 과정의 비밀주의다. 평가원의 익명성은 외부 청탁을 차단하고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장치이지만 누가, 언제, 몇 번 방문했고 어떤 판단 과정을 거쳤는지를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국에서도 미쉐린 서울판 출범 이후 공정성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2017년 국내 보도에서는 한국관광공사가 서울 가이드 발간과 관련해 미쉐린 측에 수년에 걸쳐 약 20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계약이 알려졌다. 관광 마케팅 비용을 받는 가이드가 평가의 독립성을 완전히 유지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미쉐린은 사업·마케팅 협력과 레스토랑 평가는 별개이며 선정 과정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
2019년에는 이른바 ‘미쉐린 브로커’ 의혹이 불거졌다. 한식당 ‘윤가명가’의 윤경숙 대표는 어니스트 싱어가 미쉐린 별 획득을 위한 컨설팅을 제안하며 상당한 비용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미쉐린은 싱어가 자사 직원이나 공식 관계자가 아니며 별 선정과 관련해 레스토랑으로부터 어떠한 금전도 받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한국에서 미쉐린의 권위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인물은 ‘리스토란테 에오’의 어윤권 셰프다. 한때 미쉐린 1스타를 받았던 그는 서울판 선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레스토랑이 가이드에 등재됐다며 미쉐린 트래블 파트너를 고소했다.
검찰은 사건을 각하했지만 논쟁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남겼다. 식당에는 평가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가. 미쉐린은 가이드가 셰프를 위한 상장이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독립적인 정보이므로 식당의 동의 없이도 평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에서 오탈자와 번역 오류, 사실관계 오류 등을 포함해 130건의 문제가 발견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미 폐업한 식당이 가이드에 남아 있었고, 광장시장의 유명한 육회골목을 영문판에서 부정적인 의미의 ‘infamous’(악명 높은)로 표현한 사례도 있었다.
그렇다고 대중의 선택이 언제나 정답인 것도 아니다. 대중을 기반으로 한 가이드는 다수의 경험을 반영한다는 강점이 있지만 인기와 맛은 완전히 같은 개념이 아니다. 이미 유명한 식당일수록 더 많은 평가가 쌓이고 다시 상위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광고성 리뷰와 조직적인 평가, 일시적인 방송 효과까지 더해지면 결과가 왜곡될 수도 있다.
전문가에게도 편견이 있고 대중에게도 쏠림이 있다. 소수 전문가 방식의 약점은 폐쇄성이고 대중 평가 방식의 약점은 인기 편향이다. 평가단 방식 역시 특정 취향이 집단화할 가능성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 가장 좋은 미식 생태계는 하나의 가이드가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법의 가이드가 경쟁하고 검증하는 구조에 가깝다.
별은 목적지 아닌 이정표여야 한다
미식 가이드의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가이드 자체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좋은 미식 가이드는 소비자의 탐색 비용을 줄여준다. 처음 가는 도시에서 수천 개의 음식점 가운데 실패할 확률을 낮춰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미식 가이드는 좋은 식당을 세상에 발견시키기도 한다. 막대한 광고비를 쓸 수 없는 작은 식당이나 지방의 노포, 한 분야를 수십 년 지켜온 장인이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이름을 알릴 수 있다. 방송과 SNS의 유행을 타지 않더라도 꾸준한 맛과 품질이 인정받는 길을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미식 가이드는 음식이라는 문화 자산을 세계에 알리는 강력한 매체다. 김치와 불고기에 머물던 외국인의 한식 인식은 이제 발효와 장, 제철 식재료, 사찰음식과 궁중음식, 현대 한식 파인다이닝으로 넓어지고 있다. 세계의 미식 여행객들이 서울과 부산을 찾는 데에도 국제적인 미식 가이드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전국 단위의 국내 가이드는 서울 중심의 미식 담론을 지방으로 확장할 수 있다. 각 지역의 맛을 꾸준히 기록하는 일은 관광을 넘어 지역 음식문화의 보존과도 연결된다.
미식 가이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한 가지 원칙은 더욱 중요해진다. 가이드는 음식의 최종 판결문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이정표여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같은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쉐린 3스타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식당일 수 없고, 수많은 사람이 찾는 식당이라고 해서 나에게 반드시 맛있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골목의 작은 식당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식당일 수도 있다.
앞으로 미식 가이드가 신뢰를 얻으려면 평가 방법은 더욱 정교하고 투명해져야 한다. 전문가의 전문성은 존중하되 권위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대중의 경험을 활용하되 인기 순위를 맛의 절대 기준으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별은 셰프를 옥죄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별 때문에 식당의 본질이 바뀌어서도 안 된다. 별을 받기 위해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에게 좋은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해 요리한 결과가 별이어야 한다.
소비자 역시 별과 조회 수, 대기 줄을 맹신하기보다 자신의 미각으로 마지막 판단을 내려야 한다. 좋은 미식 가이드는 “여기가 정답”이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이곳에는 한번 가볼 만한 이유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미식 가이드가 비춰야 할 가장 밝은 별은 가이드북 표지나 식당 문 앞에 붙은 별이 아니다. 오랫동안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주방을 지켜온 사람들과 그 음식을 먹고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만들어낸 신뢰가 진짜 별이다.
그 신뢰를 제대로 찾아내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미식 가이드가 앞으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필자는 연세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2010년부터 푸드테크 기업 식신을 이끌고 있으며 한국푸드테크협회 회장과 한국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을 지냈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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