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기간산업에 단기 수익 잣대 안 돼”…류영재, 고려아연 장기투자 위축 우려
- 사모펀드 5~10년 회수 구조 지적
“미래 현금흐름 계산 어려운 신사업 후순위로 밀릴 수도”
“경영진 무조건 보호 아냐…지배구조 견제·투명성도 강화해야”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장기적인 설비·기술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정 기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의 운용 구조가 장기 투자가 필요한 비철금속 제련업의 특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9월 9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영풍·MBK 연합과 최윤범 회장 측의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를 단순한 지분 경쟁이 아니라 기간산업의 장기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려아연, 30년의 시계로 투자해야 하는 기업”
류 대표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모펀드 자체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고려아연은 장치집약적인 기간산업으로, 30년의 시계를 갖고 투자해야 하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모펀드는 출자자(LP)에게 투자금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통상 5~10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전제로 기업을 경영한다”며 “이러한 시간표 아래에서는 장기적인 설비투자가 후순위로 밀리고 장기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류 대표는 유통기업인 홈플러스의 사례를 들었다. 제련기업인 고려아연과 업종은 다르지만, 사모펀드의 경영 방식에서 공통된 위험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홈플러스는 점포를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하면서 임대료 부담이 늘어났다”며 “사모펀드는 엑시트를 전제로 투자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효율성을 중심으로 경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무적 투자 판단 방식이 고려아연의 신사업 추진과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류 대표는 “금융인은 내부수익률(IRR), 순현재가치(NPV), 투자금 회수기간 등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이러한 지표는 미래 현금흐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계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신재생에너지·배터리소재·자원순환)처럼 친환경 분야의 새로운 사업은 미래 현금흐름을 추정하기 쉽지 않다”며 “금융 관점에서 보면 불확실하고 계산하기 어려운 투자가 계속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류 대표는 이러한 주장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기존 지배주주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9월 9일 임시주주총회 결과에 대해서는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어느 방향이 바람직한지에 관한 당위성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류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면 최 회장이나 기존 지배주주를 두둔하는 것이냐는 식으로 양분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며 “기존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와 경영 투명성 강화도 장기 산업 경쟁력 문제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안보 영향평가 도입…국민연금, 장기자본 역할 해야”
앞서 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국가기간산업의 지배권과 금융자본의 회수 논리가 충돌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단기 수익률과 주주환원이 기업경영의 최우선 기준이 되면 장기간 필요한 설비·기술·인력 투자가 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련업은 안정적인 조업과 축적된 공정기술, 숙련인력, 원료 조달망 등이 결합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어 일반 기업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법으로는 국가핵심기술과 전략광물, 핵심 공급망을 보유한 기업의 지배권이 일정 수준 이상 이동할 때 경제안보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일률적으로 거래를 막기보다 국내 설비투자와 고용·연구개발 유지, 핵심기술 이전 제한, 과도한 차입과 자산매각 제한 등을 조건으로 승인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과 같은 장기 투자자의 역할도 강조했다. 단기적인 재무성과뿐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국민연금이 단기 수익률로만 평가받는 한 그 아래의 운용사와 기업도 같은 시계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류 대표는 “경영진의 지배권을 무조건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영진의 책임성과 산업기반의 지속가능성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길을 모색해야 한다”며 “5년의 시계를 가진 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30년의 시계를 가진 자본”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2024년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본격화했다. 이후 최윤범 회장 측과 영풍·MBK 연합이 지분 확보와 이사 선임 등을 놓고 주주총회와 법정에서 대립하면서 자본시장 최대 경영권 분쟁으로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9월 9일 열리는 임시주총에서는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과 집중투표 방식의 독립이사 4명 선임,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1명 선임 안건을 다룬다. 고려아연 측과 MBK·영풍 측은 각각 2명의 독립이사 후보를 추천했고,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후보도 각각 내놓은 상태다. 독립이사 선임에는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선임에는 최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 룰’이 각각 적용돼 일반주주와 기관투자자의 표심이 향후 이사회 구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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