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라면 열풍, 진짜일까]③
대형 유통채널 입점 늘었지만 지역·점포별 판매 제품은 제한적
팝업 흥행 넘어 미국인의 ‘일상식’으로 자리 잡을지가 관건
[로스엔젤레스(미국)=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Do you have any Korean ramen?”(한국 라면 있나요?) “Sorry?”(뭐라고요?)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대형 할인점 트레이더 조(Trader Joe’s). 기자가 한국 라면을 찾자 점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불닭처럼 매운 면 제품을 찾는다고 다시 설명하자 점원은 “불닭볶음면은 없고 매운맛 면은 이것뿐”이라며 매대 구석을 가리켰다.
직원의 손끝을 따라가니 트레이더 조의 자체 브랜드(PB) 면 제품이 진열돼 있었다. 판매 상품의 80% 이상이 PB인 매장 특성상 농심과 삼양식품 등 한국 라면 브랜드는 찾기 어려웠다. ‘라면’(Ramen)이라는 상품도 닭고기 맛이나 일본 된장인 미소(Miso)를 활용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K-라면 팝업스토어나 체험 행사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국내 라면 업체들은 현지 행사마다 인파가 몰리고 온라인 콘텐츠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며 인기를 강조한다. 하지만 LA의 대형 유통매장을 직접 둘러본 결과 이런 열기가 일상적인 구매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행사장엔 1000명…마트에선 “없다”
K-라면 업체들은 미국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K-팝과 현지 문화를 결합한 체험형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10월 LA 대형 쇼핑몰 웨스트필드 센추리시티에서 핼러윈 팝업스토어 ‘불닭 카우치 타임’을 열었다. 3시간 동안 1000명 이상이 방문했고 관련 해시태그 콘텐츠는 일주일 만에 누적 조회 수 1000만회를 넘어섰다.
농심도 신라면을 앞세운 현지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옥외광고와 체험 부스를 운영했고, 12월에는 뉴욕 JFK공항에 ‘신라면 분식’을 열었다. 올해 7월에는 뉴욕 한식당 아토보이와 협업해 ‘신라면 팬케이크’를 선보이고 뉴욕한국문화원에 한국식 PC방을 본뜬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이들 행사는 소비자를 끌어모으고 브랜드를 알리는 효과를 냈다. 다만 팝업스토어는 특정 기간과 지역에서 운영되고 방문객도 K-푸드와 K-컬처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가 중심이다. 일상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평소 찾는 마트에서 제품을 얼마나 쉽게 살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트레이더 조에 이어 지난 8월 17일 찾은 대형 유통매장 타겟(Target)에서는 농심 신라면과 삼양식품의 불닭·맵(MEP) 제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라면 대부분은 ‘아시안’(Asian) 식품 코너 하단에 진열돼 있었다. 10여년 전 여행 당시 봤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의 인스턴트 라면 수요는 52억개로 전년보다 1.5% 늘며 세계 6위를 기록했다. 소비층이 넓고 북미와 중남미를 함께 공략할 수 있어 국내 업체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농심은 월마트·코스트코·샘스클럽 등 주요 대형 유통채널에서 신라면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삼양식품도 월마트·코스트코·크로거·타겟 등에 불닭 제품을 입점시키고 있다. 일부 월마트에서는 불닭이 아시안 식품 코너를 벗어나 일반 면 제품 코너로 자리를 옮겼다.
현지 입맛을 겨냥한 제품도 늘리고 있다. 농심은 신라면 똠얌 등의 판매처를 확대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하바네로라임과 똠얌 등 현지 맞춤형 불닭을 선보이고 소스와 떡볶이로 상품군도 넓혔다.
문제는 소비자가 가까운 매장에서 쉽게 살 수 있느냐다. 대형 유통업체에 입점해도 지역과 점포에 따라 판매 제품과 진열 위치가 달라진다. 온라인에서 본 제품을 동네 마트에서 찾지 못하면 관심은 구매로 이어지기 어렵다.
개별 브랜드 인지도도 과제다. 현지 소비자는 한국 음식과 매운 라면에 관심을 보였지만 불닭을 제외하면 한국 기업의 브랜드와 제품을 구분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LA에 거주하는 벨라(Bella·22)는 “떡볶이와 불닭, 라면 등 한국의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면서도 “브랜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매운맛이거나 ‘K’가 붙으면 먹어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벨라가 즐겨 먹는다는 K-라면도 한국 기업 상품이 아닌 트레이더 조의 PB 제품이었다.
반면 아시아계 소비자 사이에서는 대표 제품의 인지도가 높았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미국인 조안나(Joanna·32)는 “아시아계다 보니 매운맛에 익숙한 편”이라며 “한국 라면 중에서도 신라면과 불닭볶음면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판매처 확대와 함께 현지화 전략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한국 라면의 인기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세계 소비자의 일상식으로 자리 잡으려면 현지화가 중요하다”며 “각국의 문화와 식성, 입맛을 고려한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라면과 불닭볶음면은 세계 각지로 판로를 넓혔다”며 “이제는 K-컬처와 연계해 한국의 개별 브랜드와 제품 자체의 인지도를 높일 홍보·마케팅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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