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슈
왜 이재명은 김용범을 놓지 않나
- 레버리지 ETF 책임론에도 2차 개각서 유임…야권은 문책 요구
취임 때부터 ‘李 공약 실현 적임자’…성장·AI 구상 설계하고 집행
‘국민배당’ 논란 대통령이 직접 엄호도…경제 2기까지 컨트럴타워 맡겨
김 실장이 지난 8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실장을 둘러싼 상황만 놓고 보면 유임은 다소 의외다.
AI·반도체 호황이 향후 대규모 초과세수로 이어질 경우 활용 방안을 미리 마련하자는 ‘국민배당금’ 논란에 이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이후 증시 변동성 확대로 인한 개인투자자 피해까지 겹치면서 야권은 김 실장을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 실패의 핵심 책임자로 지목했다.
조국혁신당에서도 문책론이 제기됐고, 여당 내부에서도 “일정 부분 책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이번 인사에서 김 실장을 교체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정책 결정 과정을 되짚어보면 김 실장은 단순한 경제 참모라기보다 이 대통령의 경제 구상을 정책으로 번역하고 실제 집행에 옮겨온 ‘설계자이자 실행자’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김 실장을 유임한 것은 김 실장이 1기에서 설계한 성장 전략을 유지하면서 정책의 초점을 민생과 격차 해소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김 실장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경제 정책의 충실한 설계자이자 실행자
김 실장을 발탁할 때부터 청와대가 부여한 임무는 명확했다. 이 대통령이 김 실장을 초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할 당시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공약 실현과 민생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 집행의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실장은 행정고시 출신 정통 경제관료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과 금융정책국장, 사무처장, 부위원장을 거쳐 기획재정부 1차관까지 지냈다. 금융과 자본시장, 거시경제를 두루 경험했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디지털금융과 가상자산 분야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 같은 이력은 대통령이 구상한 정책을 현실의 제도와 사업으로 만들어내는 데 강점으로 작용했다.
역설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꼽히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은 김 실장의 관료사회 내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과정은 사실상 김 실장이 진두지휘했다.
김 실장은 국내 투자자금이 해외 증시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는 허용되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국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고 금융위원회는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우량주를 기초자산으로 한 ±2배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도입 계획을 내놨다.
국내외 ETF 간 규제 비대칭을 해소하고 국내 자본시장의 매력을 높여 해외로 빠져나가는 투자자금을 국내로 돌려놓겠다는 게 정책 취지였다.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레버리지 상품 특성상 기초자산의 변동폭이 커지면서 투자자의 손실과 시장 변동성도 증폭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대형주로 투자 수요가 과도하게 쏠리면서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도 나왔다.
심지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후 “그때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나”라며 제도 도입을 후회한다고 했다. 해외투자 자금을 국내로 돌리고 외환 유출을 줄이려던 정책 목표에 비해 부작용이 컸다는 의미다.
그러나 레버리지 ETF 논란이 커진 뒤에도 이 대통령은 김용범 정책실장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제도 보완을 주문했다.
7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레버리지 ETF가 국내 투자자 불만의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외환 유출을 줄이는 효과와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부작용이 함께 있다고 평가했다.
상품이 증시 고점 부근에서 도입되면서 문제가 과도하게 부각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정책적 공감대가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 사례는 ‘국민배당금’ 논란이다.
김 실장은 지난 5월 반도체와 AI 등 첨단산업의 슈퍼사이클로 국가에 이례적인 초과세수가 들어올 경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국가채무 상환과 미래 전략기금 적립뿐 아니라 국민에게 직접 환원하는 가칭 ‘국민배당금’도 선택지로 제시했다.
파장은 컸다. 반시장적 정책이란 비난이 쏟아졌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공산당 본색”이라고 비판하는 등 야권의 공세가 이어졌다.
이때도 이 대통령이 직접 김 실장을 엄호했다.
이 대통령은 X에 글을 올려 김 실장의 제안은 기업의 사적 이익을 강제로 환수해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AI·반도체 등에서 발생한 초과이윤으로 국가에 추가로 들어오는 ‘초과세수’를 어떻게 국민에게 환원할 것인지 검토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성장의 과실을 특정 기업이나 계층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국민 전체의 기회로 확산해야 한다는 경제철학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일부 언론과 야권이 김 실장 발언을 왜곡해 정부가 기업 이익을 직접 강제 배분하려 한다는 가짜 뉴스를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논란이 된 참모의 아이디어에 대해 직접 취지를 설명하고 방어에 나선 이례적인 장면이다.
1기 ‘산업 대도약’에서 2기 ‘국민 재도약’으로
개각 전날인 8월 29일 김 실장이 SNS에 올린 이른바 ‘가을편지’에 담긴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김 실장은 이날 SNS에서 성장률 반등 등 거시경제 지표 개선을 언급하며 “어렵게 만들어낸 성장의 힘을 바탕으로 이제 국정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성장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면 이제는 성장의 힘을 국민의 삶과 기회로 연결할 때라는 것이다.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가 대한민국 산업의 대도약을 위한 투자였다면 앞으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도약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주거 부담 완화와 실직자의 소득·전직 지원, AI 시대 교육·훈련, 청년과 소상공인의 창업·재기 지원 등을 거론했다.
앞선 국민배당금 논란 당시 드러낸 성장의 성과를 국민 전체로 확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재차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주목할 점은 김 실장의 가을편지가 개각을 불과 하루 앞두고 나왔다는 것이다.
SNS를 통해 청와대 정책실장이 집권 2년 차 경제운용 방향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SNS가 사적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 대통령과의 정책적 공감 없이 경제정책의 큰 방향을 이처럼 명시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이번 유임은 김용범 개인의 생존을 넘어선다.
‘경제 2기’까지 김 실장에게 맡기겠다는 선택인 만큼 정책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책임 역시 김 실장을 넘어, 그를 끝까지 중용한 이 대통령에게 직접 돌아갈 수밖에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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