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부와 노조 사이…‘내부 출신’ 국책은행장, 지방 이전 딜레마
- [금융지도가 바뀐다]③
노조는 경영진 압박…정부 정책엔 공개 반대 부담
수장들 선택의 시간…추후 국감 발언 주목
[이코노미스트 김윤주 기자] 정부의 금융기관 이전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수장들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본점 이전 후보로 거론되는 기관의 수장들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기조에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출지, 정책금융 기능과 조직 안정성 측면의 우려를 어디까지 공개적으로 제기할지가 주목받고 있다.
‘지방 이전’ 앞에 선 내부 출신 수장
국토교통부는 올해 하반기 공공기관 2차 이전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전 대상 기관과 지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금융권에서는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주요 국책은행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현재 각 기관을 이끄는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과 장민영 기업은행장, 황기연 수출입은행장은 모두 30년 안팎을 몸담은 내부 출신 수장이다. 기관 업무와 인력 구조를 잘 아는 만큼 노조는 이들이 정부에 이전의 부작용과 정책금융 공백 가능성을 적극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다만 대통령이 임명한 국책은행 수장인 만큼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다.
세 수장의 대응은 조금씩 다르다. 박상진 회장은 취임 직후 산업은행 본점 이전과 관련해 “본점 위치는 서울이 맞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장민영 행장은 최근 지방 이전 관련 질문에 “수도권에 거의 60% 정도 직원이 집중해 있다”며 직원들의 반대 가능성을 언급했다. 반면 황기연 행장은 현재까지 수출입은행 이전과 관련한 공개 견해를 내놓지 않고 있다.
노조 “이전 부작용, 정부에 설득해야”
산업은행 노조는 박 회장에게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 반대 입장을 밝히고, 부산 이전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정부와 관계부처에 공식 요구하라고 촉구해 왔다. 박 회장이 취임 직후 산업은행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만큼, 정부에 산업은행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가 경영진에 바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반대 선언만은 아니다. 본점 이전이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과 인력 운영에 미칠 영향을 정부에 제대로 설명해 달라는 요구에 가깝다. 산업은행 노조에 따르면 과거 부산 이전 논의 과정에서 다수의 중간 연차 직원이 조직을 떠났고, 현재 전체 약 3000명 가운데 4년 차 미만 직원이 약 1000명에 이른다. 이전 논의가 재개될 경우 이직 가능성이 높은 저연차 인력의 추가 이탈로 정책금융 집행 역량이 약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현준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박상진 회장에게 무조건 반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은행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정부에 건의해 달라는 것”이라며 “국민성장펀드와 반도체·인공지능(AI) 등 국가전략산업 지원을 맡겨놓고 조직을 흔드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노조 또한 비공개 석상에서 장 행장에게 “조직을 위해 목소리를 내달라”고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기업은행 역시 수도권에 영업과 인력이 집중된 구조다. 노조는 본점 이전이 가시화하면 수도권 중소기업과의 접점 약화, 전문인력 이탈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운용 기업은행 노조 본부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안인 만큼 회사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직원들도 국책은행이 처한 정치적·제도적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 역시 지방 이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출입은행 노조도 산업은행·기업은행 노조와 함께 지방 이전 저지 공동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현시점에서는 황 행장에게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정부의 이전 추진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 수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국감장에 설 국책은행장…어떤 답 내놓을까
산업은행은 세 국책은행 가운데 지방 이전 논의의 파장이 가장 컸던 곳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강석훈 전 산업은행 회장은 부산 동남권투자금융센터를 설치하고 이전 관련 컨설팅을 진행하는 등 본점 이전을 추진했다. 국책은행 수장이 정부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 사례다.
강 전 회장은 당시 정부가 결정한 사안을 산하기관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노조는 이전을 전제로 한 절차라며 반발했고, 노사 갈등은 장기화했다.
강 전 회장과 박 회장의 가장 큰 차이는 박 회장이 내부 출신 수장이라는 점이다. 박 회장은 1990년 산업은행에 입행해 법무실장과 준법감시인 등을 거쳐 지난해 9월 수장 자리에 오른 30년 경력의 ‘산은맨’이다. 산업은행 설립 이후 첫 내부 출신 회장이라는 상징성에 더해, 이재명 대통령과 중앙대 법학과 82학번 동기이자 대학 시절 고시반에서 함께 공부한 인연으로도 주목받았다.
이 같은 배경은 박 회장의 운신을 더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조직의 우려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내부 출신 수장으로서 이를 대변해야 하지만, 대통령이 임명한 정책금융기관장인 만큼 정부 정책에 공개적으로 맞서기는 부담스러운 위치다.
박 회장을 비롯한 국책은행장들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힐 첫 시험대는 국정감사가 될 전망이다. 이전 논의와 정책금융 기능, 전문인력 이탈 우려 등이 국정감사에서 주요 질의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국정감사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산업은행이 맡은 역할과 현재의 인력 상황, 최적의 업무 수행 여건을 정부와 국회에 설명해야 한다”며 “그런 목소리 없이 이전이 발표되면 조직 불안과 갈등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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