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안전의 대명사 볼보에도 ‘모험 DNA’는 있다 [타봤어요]
- 볼보 EX30 크로스컨트리 시승기
428마력 작은 차체…제로백 3.7초
진흙길도 거뜬한 AWD·높아진 지상고
안전의 대명사라고 해서 꼭 차분하게 주행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최근 볼보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X30CC를 타봤다. 서울 도심을 벗어나 충북 제천 일대를 달렸다. 거리는 약 400km다. CC라는 이름에 걸맞게, 길이 없는 곳도 주저 없이 달렸다. 그러자 볼보의 진짜 매력을 알게 됐다.
첫인상은 작다. 수려한 디자인이 차체 크기를 잊게 하지만, 제원상 어쩔 수 없다. EX30CC의 전장은 4235㎜다. 전폭 1840㎜·전고 1575㎜·휠베이스는 2650㎜다. 덩치만 놓고 보면 도심에서 부담 없이 몰기 좋은 소형 SUV다. 덩치가 작다 해서 약한 것은 아니다. 최고 출력은 428마력, 최대토크는 55.4kg·m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은 3.7초다.
EX30CC에는 66kWh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와 두 개의 전기모터가 들어간다. 앞뒤 바퀴를 모두 굴리는 사륜구동(AWD) 방식이다. 사륜구동인 만큼 주행감은 안정적이다. 힘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아 고속이나 굽은 길에서도 안정적이다. 조금만 깊게 밟아도 원하는 만큼 속도를 빠르게 붙인다.
차체가 작다는 이유로 EX30CC를 운전에 미숙한 이들에게 추천하는 경우도 있다. 직접 몰아보니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가속페달에 조금만 힘을 줘도 숨어 있던 힘이 너무 쉽게 튀어나온다. 차체가 작아 다루기 쉬운 것은 맞다. 그 안에 품은 성능까지 순한 것은 아니다. 작아서 쉬운 차라기보다, 작지만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는 차라는 느낌을 받았다.
늘 긴장하며 몰아야 하는 차는 아니다. 가속페달을 부드럽게 다루면 여느 볼보처럼 차분하다. 주행감은 말할 것도 없고, 승차감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다. EX30CC에는 전용 컴포트 섀시와 편평비를 높인 타이어가 적용됐다. 일반 EX30보다 지상고도 19㎜ 높였다. 이 덕에 속방지턱이나 거친 노면을 지날 때도 충격이 크게 완화됐다. 일상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공간 활용성도 생각보다 괜찮다. EX30CC의 트렁크 용량은 기본 318L다. 숫자만 보면 넉넉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50L 크기의 배낭 하나를 넣고도 주변 공간이 제법 남았다. 짐이 더 많다면 2열을 접으면 된다. 뒷좌석을 모두 폴딩하면 적재 공간은 최대 1000L까지 늘어난다. 앞쪽에도 7L 규모의 작은 프렁크가 마련 돼있다.
EX30CC의 진가는 포장도로를 벗어난 뒤 더 또렷해졌다. 제천에서는 일부러 노지로 차를 몰았다. 전날 비가 온 탓에 흙길은 곳곳이 질퍽하게 젖어 있었다. 바퀴가 지나간 자리에는 진흙이 패였다. 양옆으로는 허리 높이 만한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전날 비로 노면은 질퍽했고, 바퀴가 지나간 자리마다 진흙이 깊게 패여 있었다. 그래도 EX30CC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사륜구동이 힘을 고르게 나눠주고, 높아진 지상고와 전용 컴포트 섀시가 거친 길을 받아냈다. 생각보다 쉽게 노지를 빠져나왔다. ‘CC’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은 볼보의 안전 기능이었다. 후진할 때 차량 뒤쪽의 풀이 조금만 가까워져도 충돌 위험으로 인식했다. 그 즉시 차가 덜컥 멈추곤 했다. EX30CC에는 후진 중 충돌 위험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제동을 지원하는 기능이 들어간다. 주변에 풀이 많다 보니 같은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됐다. 그때마다 제동 상태를 풀고 다시 차를 움직여야 했다.
안전을 중시하는 볼보다운 모습이기는 하다. 안전 기능이 과해서 불편하다는 지적이라면 크게 흠잡을 일도 아니다. 다만 실제 장애물과 차체를 스치는 풀 정도는 조금 더 세밀하게 구분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안전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안전이 한 단계 더 영리해졌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텐트를 치다 더위에 지치면 차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을 틀고 잠시 쉬었다. 엔진을 켜놓아야 하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주변에 큰 소음이나 진동 없이 실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EX30CC에는 주차 상태에서도 공조와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유지하는 ‘주차 컴포트 모드’도 마련됐다. 최대 8시간 또는 배터리 잔량이 20%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EX30CC의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산업통상자원부 기준 복합 329㎞다. CC의 성격을 제대로 즐기려면 충전소가 많은 도심보다 산과 들로 향해야 한다. 막상 노지에서는 충전소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배터리 잔량을 보며 다시 도로로 나가 충전소를 찾아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EX30CC의 활동 반경을 생각하면 다소 부족한 주행거리다.
2열 공간의 경우 아쉬웠다. 신장 182㎝인 기자가 직접 앉아보니 머리 위 공간은 충분했지만, 무릎 앞 공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성인 4명이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 장거리 주행이 잦다면 뒷좌석 탑승자는 다소 불편할 수 있어 보인다. 차체 크기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차는 가족 모두를 태우는 패밀리카보다는 1~2인이 타기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짐을 싣고 훌쩍 떠나는 사람, 혹은 주말마다 산과 들을 찾아다니는 신혼부부라면 EX30CC의 장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영유아 자녀가 있는 3인 가족까지는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가격은 경쟁력 있다. EX30CC 울트라 트윈 모터 퍼포먼스의 국내 판매가격은 친환경 세제 혜택 후 4812만원이다. 볼보자동차코리아가 올해 가격을 700만원 낮추면서 기존 5512만원에서 4000만원대로 내려왔다. 가격도 중요하지만, 안전의 대명사 볼보의 품에도 ‘모험 DNA’는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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